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망지 Oct 28. 2022

저의 느린 권태를 빌어주세요

두시부터 다섯시간, 스물다섯번째와 스물여섯번째 편지

스물다섯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Hola 


제가 좋아하는 가수 jawny utah의 신곡이 따끈따끈 나왔어요. 

제목은 wide eyed 입니다. 이 신나는 곡을 들으시면서 이 오후에 박차를 가해봅시다. 이 죠니는 참 또라이 같은 매력이 있어요. 일단 본업인 노래를 기깔나게 잘 뽑아내고요. 하고싶은건 정말 다 하는 것 같아요. 매번 거지같은 머리들을 꼭 한번씩 도전해내는데, 잘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서 본인이 그걸 해본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더라고요. 참 맘에 드는 마인드에요. 죠니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로 머릿속에 꽃밭이 펼쳐져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것도 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달까요. 그냥 빨-간색 오픈 카 하나타고 미국 서부를 마구 달리고 싶은 욕망이 들어요.  생각만으로도 끝내주네요. 전 이런 류의 또라이 같은 아티스트를 발견하면 미친듯이 동경하면서 닮고 싶어해요. 쉽사리 팬이 되기도 하고요. 


작년쯤이었나,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못 간지 오래 되어서 너무 답답하던 찰나에 죠니가 북미 클럽 순회공연을 돈다는 공지가 떴고, 때마침 코로나가 한창이라 그런지 미국 왕복 비행기권이 60도 안되는거에요. 공연장도 소규모 클럽이라 티켓값도 3만원꼴이면 되었구요. 진짜 앞뒤 안재고 미국으로 튀고싶었는데, 그땐 재학생 신분이라 제 발목을 잡는 현실들이 왕왕 있었네요. 그때 우발적으로 미국에 다녀왔어도 참 재밌었겠단 생각은 들어요. 그치만 인생은 나비효과니까, 미국 못 간 덕분에 올해 영국을 다녀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저는 몇시간전에 아이폰14 레드를 지르고 왔어요. 원래는 아이폰 XS를 19년도부터 잘 써오고 있었는데, 용량초과로 과부하가 오더니 비 오는 날의 약간의 침수로 맛이 완전히 갔고, 지난 4월부턴 예전에 쓰던 아이폰8로 버텨왔어요. 이정도면 폰을 그래도 애지중지 오래 쓰는 편 아닌가요? 아무튼 그런데 최근엔 지금 쓰고 잇는 아이폰8이 점점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대길래,, 슬슬 작별의 시간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았어요. 벼르고 벼르다가 결국 이번에 나온 14를 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는 원래 애플의 실버제품을 사랑해요. 쓰던 XS도 실버였고, 아이패드도 실버, 애플워치도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가 인기가 많다지만 전 그냥 본연 그대로의 메탈 느낌나는 실버가 너무 좋더라구요. 그치만 비소식. X이후의 기종부터는 기본라인에 실버색상이 없어요. 뭐 스타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하얀색이 있긴 하지만 전 실버가 좋지 하얀색은 싫거든요. 미묘한 차이지만 실버가 좋아요. 실버를 사려면 프로라인을 사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이폰14랑 아이폰13프로랑 내부 하드웨어?가 똑같다 길래, 칩도 같고, 사실상 성능에 차이가 없대요. 그래서 그러면 실버색도 있고, 이왕이면 카메라도 좋은 13프로로 가야겠다! 싶어서 찾아보았는데, 일단 지난 제품이라 모델이 잘 없고, 프로라서 그런지 중고로 찾아봐도 가격대가 좀 세더라고요. 뭔가 폰만은 중고로 쓰고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너무 비산 폰은 쓰고싶지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하다 일반라인으로 내려왔죠. 


일반 라인업의 색상 5개 중에 고민을하다가 그냥 제 끌림을 따르기로 했어요. 바로바로 레드! 마치 백설공주의 홍옥사과마냥 쨍한 컬러감이더라고요. 뭐 유채색의 색상을 사면 금방 질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고싶은거 사고 질려보는 건 어떨지,,, 라는 객기로 질러버렸네요. 그리고 뭐랄까 요즘 다들 핸드폰 사면 전부 아이폰에, 전부 하얀색이나 까만색의 무채색으로 사곤 하니까, 다같이 식당을 가도 폰을 헷갈릴 일이 왕왕 있잖아요. 내꺼만 튄다면 꽤나 멋질 것 같다는 관종 욕구도 치솟아서, 생각 깊게 안하고 바로 질렀네요. 질려도 제가 질릴테니,,, 어떤 말도 얹지 말아줘요.. 제가 한번,,, 어디 잘 질려보겠습니다! 



그런데 큰일이에요. 이 편지를 적어내리며 위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jawny의 wide eyed를 한 곡 반복재생 중이었는데, 지금 4번째 재생이 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미 벌써 질린 거 같아요. 빨리 다른 곡을 선곡해야겠어요. 큰일이네요 이렇게 쉽게 질려하는 마음으로 전 아이폰 레드를 무사히 오랫동안 품을 수 있을까요?  


저의 느린 권태를 빌어주세요

제 레드 아이폰처럼 붉은 금요일 보내시길 바라며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14일 PM 4:47









스물여섯번째 편지


KIa Ora 


부쩍 오랜만이네요. 

주말은 마치 차원의 벽과도 같아서 저번주와 이번주를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한번씩 머리를 비우고, 다시 월요일의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현실 감각이 아직 둔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오늘의 낮도 어제의 밤도 분명 연속적인 순간들의 장면일텐데, 어느 것이 꿈이라고 명확히 짚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저는 아직 몽롱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무신론자인 편입니다. 가끔 간절히 바라는 게 있거나 일이 너무 안될대로 안 되어버려서 심술이 날 때 누군가를 거세게 비판하고 탓해야겠을 때, 그럴 땐 얌체같이 신을 믿습니다. 차라리 있다고 믿고 욕이나 실컷하는게 덜 억울한 것 같달까요. 



그렇지만 요즘들어선 이유없이 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자꾸 모험에 들게하고 또 역경을 이겨내고 버텨내는 저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만 같아요. 왜냐면 오늘 아침에도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거든요. 제가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직전까지도 아마 교환학생 관련된 사안들은 저를 끝없이 괴롭힐 것 같네요. 장학금 신청을 했는데, 서류에서 제 증명사진이 오류가 떠서 재제출해달라는 연락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왜 때문인지 국제처의 답변메일이 스팸메일함에 보관되어 있더라고요. 원래대로면 공시된 신청기간은 엄연히 지난 날이라, 오전의 한시간동안 많이도 숨죽여 긴장했습니다. 장학금은 언제나 절실하니까요. 일은 그래도 겨우 풀려서 무사히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왜 자꾸 누군가 위에서 절 지켜보며 실실 웃고 있는 것만 같을까요? 뭐 이런 고생을 다 겪게 한 후에 어마어마한 포상으로 달랠 생각이라면 모르는 척 다 넘어갈 자신이 있긴 합니다. 



지난 주말에도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더욱 의식적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접하는 근무시간에서의 ‘무의 상태’를 상쇄시키고 싶달까요. 



토요일 오후엔 <에브리띵 에브리타임 올앳원스> 를 에무시네마에서 보았습니다. 에무시네마는 상영관이 매우 작습니다 A열부터 G열까지?가 전부이고 옆으로는 1번부터 19번까지? 있습니다. 조그맣고 옹기종기 모여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저는 집중이 더 잘되더라고요. 웃픈 점은 정말 상영관이 좁다보니까 맨 뒷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자리를 이동하려 맨 뒷자리로 가다보면 영사기에 그 모습이 전부 비추어져 화면에 그림자가 커다랗게 등장한다는 점이에요. 처음엔 화면을 검게 물들인 정체에 놀랐으나 이윽고 이 모든게 에무시네마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영화는 제가 올해 본 작품중에서 가히 가장 좋았던 작품이라 꼽을 수 있겠고, 영화 이야기를 더 떠들어대고 싶지만,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 채 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겠습니다. 



일요일날 저녁엔 부모님과 함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독히도 한국스러운 영화인데 특이한 것은 뮤지컬 영화라는 것입니다. 서양의 뮤지컬영화와 어떤 식으로 다른 지를 스스로 비교해보면서 보니 재밌더라고요. 대한민국의 한의 정서를 톡톡히 느꼈습니다. 아예 대놓고 울어! 라고 만든 영화였는데, 제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게도 제대로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유치한 부분이 많아서 “흥 우습고 유치해” 마인드로 나는 눈물을 안 흘리겠지 생각했는데, 우습고 유치한게 또 우리 대한민국 정서를 얼큰하게 울리지 않습니까. 부모님 세대는 특히나 더 공감할 세대의 이야기들이라 부모님은 연신 눈물폭탄을…. 

본인의 가오(?)를 죽이고 싶지 않은 분들은 가족과 보지 마십시오. 



슬슬 권태라는 것이 온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취미인 스페인어 배우기가 생겨서일까요, 이 편지를 적는 것에 조금은 매너리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글을 쓰는데에 거침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엔 문장을 자꾸 닦아내고 치장하느라 그 무게가 무거워져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이 되었다면, 지금은 주르르륵 소나기보다도 가볍게, 편하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점은 그만큼 양질의 글을 못 뽑아내고 있을까봐, 조바심이 나네요. 공을 들이면 분명 더 나은 결과를 뽑을 수 있겠지만, 왠지 요즘은 한번 시작하면 손가락이 자판위에서 절로 마구 놀아버리는 모양이라, 지체가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 한 켠엔 얼른 편지를 발송시키고 스페인어 공부를 착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편지와의 권태를 지나가고 있는 걸까요, 이게 제게 의무처럼 느껴지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또 월요일입니다.

일주일은 괴상하게도 느리고도 빠릅니다

이번 주에 이루고 싶은 목표와 해야할 일들은 뭐가 있는지 새마음 새뜻으로 상기시켜봅시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17일 P< 3:14















이전 15화 연애는 괄호와 같아서 열림이 있었으면 꼭 닫힘 기호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