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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28. 2022

오랜만에 맡아보는 수영장 냄새, 그 특유의 락스 냄새

두시부터 다섯시간, 열아홉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어제 수영 첫 수업으로 밤을 수 놓고 와서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정신 차려보니 일주일의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네요. 수요일은 왠지 모르게 억지로라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신나는 재즈풍의 노래를 선곡하고 에어팟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켜줍니다. 오늘의 곡은 Pink Martini의 Joi garcon입니다. 경쾌한 노래에 맞춰 어깨가 자꾸만 들썩거립니다. 세상에, 눈을 감으면 프랑스 한복판에 누워있는 것 같아요. 특유의 찌린내도 막 맡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럼 다들 기다렸을 어젯밤 수영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새 공간, 새 시간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저에게는 특히 더 취약한 조건입니다. 사실 저는 적응을 굉장히 잘 하는 편이라 낯 가리는 그 시기가 타인에겐 굉장히 찰나처럼 느껴져서 낯을 안 가리는 것처럼 비춰지겠죠. 그치만 1인칭 저의 시점에서 낯선 환경에 낯가리는 그 찰나가 너무 두려운걸요. 막상 그 시간이 오면 잘 스며들 수 있지만, 정작 그 시작이 되기 직전까지도 사시나무처럼 벌벌 떤다는 게 제 특징이죠. 


어제는 눈치를 살피며 정각보다 10분 이르게 퇴근을 했어요. 매번 정각칼퇴를 유지하다가, 수영 첫날의 여유로운 준비를 위하여 십분쯤 철판 깔고 일찍이 나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 되었고, 후다닥 엄마가 준비해 놓은 샐러드를 와구와구 먹었습니다. 오이, 버섯, 닭가슴살, 상추가 버무러져 땅콩소스와 함께 입안에서 춤췄는데 허기진 직장인의 저녁 배를 달래기에 최고엿습니다. 다만 저녁수영에겐 이마저도 헤비하다는 걸 깨달은 건 불과 세시간 뒤의 일이죠. 


수영수업은 9시고 저희 집에서 체육센터까진 걸어서 20분입니다. 설렁설렁 가서 등록하고 안내 들을 생각으로 헤드셋을 챙겨 밖으로 향했습니다. 이젠 제법 가을입니다. 밤 공기도 서늘하고 찬바람이 콧등위로 스쳐가는게 영락없이 겨울냄새가 벌써 맡아지는 느낌입니다. 센터에 도착해서는 누가봐도 뉴비 신분의 자세를 유지했어요. 경직된 표정과 웃음으로 대기실에 앉아있고, 회원카드를 등록하고, 40분부터 샤워실 입장 가능이라길래 미어캣처럼 앉아있다가 주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가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는 것도, 샤워실에서 씻는 것도 이 모든걸 전부 자연스런 곁눈질로 따라하며 나름 오늘 처음인 사람 치곤 자연스럽게 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처음의 제가 뚝딱거리는 그 모습을 못 견뎌합니다. 처음부터 자연스럽고 프로다운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란 건 아는데, 너무도 당연한 그 뚝딱거림을 차마 못 버티겠습니다. 그래서 두뇌를 풀 가동해서 원래 그래왔던 ’척’을 해냅니다. 어제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처음 온 분이 제게 질문들을 하더라고요. “아 ㅎㅎ 저도 처음왔어요” 하며 묘한 승자의 기분을 느꼈답니다. “아싸, 나 .. 잘 녹아들었나봐!” 


수영 전 샤워를 마치고 수영복을 챙겨입고, 수영모자도 고생끝에 성공적으로 착용하고. 샤워실이 꽤 협소해서 뒷타임 사람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눈치껏 서둘러 비켜줘야 합니다. 그렇게 갈 곳이 없어 등 떠밀리듯이 일찍이 수영장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이미 자기들끼리 친분이 두터워보이는 고인물 팟과, 나처럼 눈알 굴리며 벙쪄있는 어린 영혼들. 머쓱해하다가 벽에 붙어 서있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길래요.. 


9시 정각이 딱 되기 전까진 정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멋쩍게 서있으면서 시계만 바라보다가, 9시가 딱 되자 미친듯이 흥겨운 코요태의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반은 헐벗고 반은 선수용 스윔스튜를 장착한 남자 선생님이 저벅저벅 걸어나왔습니다. 제 건너편 쪽에 자리를 잡더니 코요태 노래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시작하더군요. 그러자 수영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묘하게 국민체조 같기도 하면서 배경음악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저를 웃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진지하게 코요태 노래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했다구요. 어떠한 멘트나 설명도 없이 말이죠. 그 흔한 구령붙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게 코로나 시대의 수영이라 그런 걸까요? 


준비운동을 마치니까,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을 부르더니 각자의 진도를 물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10여년 전에 영법을 다 배워놓은 몸뚱아리라 상급반으로 배정이 되었답니다. 비록 제가 10년 만에 수영장에 돌아온 중고신인일지언정 말이죠. 상급반은 인원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많이들 고여있을 거라 생각한 제 예상이 틀려 먹은 거죠. 단 6명의 선택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상급반은 수영장의 정 가운데 레인을 쓰게 되었습니다.초장부터 자유형 5바퀴를 주문하는 선생님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이게,, 상급반이구나,, 맞아,, 나,, 이미 이 모든 패턴을 알고 있었지,,, 


그 뒤로도 꾸준히 저희를 돌리셨고… 정말 오랜만에 운동을, 그리고 수영을 하려다보니 체력이 말이 아니더군요. 선생님께서도 “여러분의 체력이 어느정도인지를” 본인이 모르시니 알아서 쉬엄쉬엄 하라고 하셨고. 저는 야무지게 한바퀴 돌고 한숨 돌리고 한바퀴 돌고 한숨 돌리고를 반복했습니다. 웃긴 건 저말고도 오늘 처음인 상급반 사람들 전부가 휴식을 절실히 이용했다는 것이에요. 역시 수영은 전신운동이고,, 에너지 소비, 칼로리 소비가 엄청납니다. 30분쯤 하니까 열이 나고 얼굴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한마디로 “하얗게 태웠다…” 


그러다 막판 수업종료 15분을 남기고 제겐 사건이 발생합니다. 접영 2바퀴를 주문 받았고, 저는 3번째 차례였는데, 헤엄을 딱 치면서 손 동작을 시도하려고 하는 바로 그 때. 왼쪽 종아리에 거대하게 쥐가 났습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오른쪽 발바닥에도 아주 강력한 쥐가 찾아왔죠. 뒷 사람들을 전부 먼저 보내고 저는 수영장 윗쪽 턱에 걸터앉았습니다. 양 다리가 사용이 불가능해졌거든요. 발 쪽엔 힘을 풀고 수영해야하는데, 오랜만이라 애꿎은 곳에 힘을 주며 운동했던 것 같습니다. 10분을 내리 마사지를 해주어도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다리의 상황이 영 나아지지를 않더군요. 그렇게 머쓱하게 다른 이들의 수영을 구경하다 첫 수업이 끝났습니다. 모두의 걱정도 사고요,


뭔가 꼴이 부끄러웠던게, 제일 빡센 접영 시키니까 갑자기 쥐나서 내리 쉬고 있는 제 처지가, 마치 하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것처럼 비춰지면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마사지를 열심히 하며 인상도 더욱이 찌푸려주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픈거야,,,,” 그래도 다 큰 성인인데, 제가 꾀병을 부린거라고 믿진 않으시겠죠?

 

그렇게 막판에 거하게 양다리에 일이 생겼지만, 부랴부랴 첫 수업을 마치고 샤워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정말 상쾌했습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수영장 냄새, 그 특유의 락스냄새도 정겨웠고, 가을겨울 이 시즌 즈음 밤에 수영 마치고 나올 때 느껴지는 그 찬 바람과 시원한 공기. 모든 게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귀가는 따릉이 타고 9분만에 마쳤고요. 이런 루틴이 자리 잡힌다면 저는 금방 아주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걷기 20분-수영50분-자전거10분 저의 화목 철인 3종경기 루틴입니다 :) 


벌써부터 다음자 목요일 수영이 기다려지네요. 매주 목요일은 오리발 수업이 있는 날이랍니다. 

그럼, 일주일의 가운데에서 건강을 용케 챙겨가며 인사 드리겠습니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5일 PM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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