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

생애 잊지 못할 첫 경험의 기억

by 선인장


Photo by 선인장



'형아. 저게 뱅기야??'


'응. 저게 비행기야.'


'우리 이제 저거 타고 날아가는 거야??'


'응. 하늘 높이 높이 날아갈 거야.'



내가 형 꼬마의 나이일 때, 그리고 내 동생이 동생 꼬마의 나이일 때, 처음 타보았던 비행기 여행은 지금까지도 내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미국으로의 장단기 출장이 많으셨던 아버지를 배웅하느라 한두 달에 한 번꼴로 김포공항으로 출퇴근을 했다. 나는 아버지께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밝은 회녹색의 그 큰 자동문 뒤의 세상이 한결같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버지는 허락되지만 남은 식구들 모두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곳, 그리고 그 문이 닫히기 전 언제나 슬쩍 어렴풋이 보이던 딱딱하고 감정 없는 얼굴로 그 문 뒤의 세상을 지키고 있었던 경찰 아저씨들까지... 마치 아버지께서는 아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어떤 무서운 어른들만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배웅’보다 ‘마중’을 가는 시간이 더 반가웠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게 그 밝은 회녹색의 금단의 문을 넘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모님께서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께서 업무를 진행하시는 LA로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하신 것이었다.

금단의 문 뒤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그 문 바로 뒤에 큰 비행기들이 쉬고 있는 비행장이 연결된 것으로 상상했는데, 멋진 비행장 대신 옷이며 가방이며 향수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마치 공항에서 백화점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았다. 어른들에게나 제법 흥미 있을 것 같은 그 가게들은 동생과 나에게는 관심 밖이라 비행기에 탈 차례가 올 때까지 우리는 게이트 근처의 푹신한 척하는 의자에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공항에는 적어도 2시간은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부모님 덕분에, 워낙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책이나 보면서 어서 빨리 비행기를 탈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자주 출장을 가실 때마다 매번 이렇게 여기에 혼자 앉아서 탑승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심심하실까... 하는 마음에 무지갯빛 가득하던 아버지의 출장이 갑자기 조금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들떴지만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어색함과 두려움에 어머니 아버지 옆에 껌딱지마냥 꼭 붙어 따라서 입장하였다. 아버지께서 맨 앞에 서서 표 네 장과 여권 네 개를 건네었고, 승무원 언니는 방긋 웃으며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설레고 신나는 마음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지만 나는 촌스럽지 않기로 했다. 나는 누나이고 곧 중학생이 되므로 동생에게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자리를 찾아서 얌전히 착석했다. 대신 참을 수 없이 계속해서 비죽비죽 머금어지는 웃음은 온 얼굴에 한가득 감출 수가 없었다.


LA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12시간여 동안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가득 차 있는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나는 단 1분도 잠이 들 수 없었다. 오히려 불이 꺼지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잠으로 낭비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처럼 스크린이 자리마다 하나씩 달려있지는 않았지만, 맨 앞줄 중간에 앉아서 여행한 덕에 작은 스크린이 가깝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스크린에 어떻게 집중을 하고 영화를 몇 시간이고 계속 볼 수 있는지 큰 의문이지만, 그때 내게는 그 작은 스크린이 마치 몇십 인치나 되는 큰 평면 스크린만 같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승무원 언니가 나누어 준 이어폰을 의자 손잡이 옆에 꽂으니 한국말로 더빙이 된 대사들이 들렸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비디오 렌트 대여소에 가서 꼭 두 개만 골라서 볼 수 있었던 ‘어니스트 캠핑장에 가다’ 같은 아이들용 영화들이 아닌 일반 영화를 엄마 눈치 없이 마음껏 비행하는 내내 계속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중에 알게 된 더 신기했던 사실은, 내가 기내에서 본 영화들이 2달 즈음 지난 후에 한국 극장에서 상영을 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갔다가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친절하고 예쁜 승무원 언니들이 내 자리로 음식도 가져다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도 언제든지 마시고 싶으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이다, 콜라, 주스 등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먹었던 따끈따끈한 기내식은 너무 맛있어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어버렸다. 한동안 나는 기내식 상사병에 걸려서 여행을 가고 싶은 기분보다 기내식이 또 먹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어린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짜였고 나는 심지어 손도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이 모든 일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왕으로 태어나면 이런 기분일까?

잠시 기분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돌아보려 고개를 돌려보니, 건너편 좌석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창문 너머에는 꿈으로만 상상해보던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정말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분명, 구름은 수증기가 뭉쳐 생긴 만질 수도 없고 형태도 있지 않은 현상이라고 배워서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본 뭉글뭉글한 창밖의 구름은, 마치 창문에서 휙 하고 몸을 던지면 너무나 부드럽게 살포시 그 구름 위에 앉아서 동동 떠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신나는 여행을 자주 하는 아버지가 너무나 부러웠지만, 아버지는 출장 준비하실 때마다 썩 내키지 않으시는 표정이셨다. 게다가 출장이 너무 피곤하고 재미없어서 가고 싶지 않다고 종종 말씀하셨고, 나는 첫 비행 경험 후로 그런 아버지가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았더랬다.

시간이 지난 후 서른 중반에 잦은 출장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출장이 잦은 나를 아버지를 바라보던 반짝이던 어릴 적 나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내 친구 앞에서 나는, 그때의 아버지께서 하시던 표정으로 한숨을 나지막이 쉬며 출장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한동안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버렸다. 그 순간은 마치 피터팬이 금기를 깨고 마법이 풀려 어른이 되어버린 순간과도 같았다. 마침내 어른이 되었다는 성취감과 함께 손에 꼭 쥐고 있던 소중한 보물을 평생 잃어버린 안타깝고 허무했던... 한편으로는 평생 갖고 싶지 않았던 그런 순간이었다.



어느 날, 문득 여행길에서 만난 창문에서 비행기를 보며 신나던 저 아이들이 오랜만에 내게 그 어릴 적 가슴 설레던 그때의 기분을 흐뭇하게 떠올리게 해 주었다.

형 꼬마도, 그리고 동생 꼬마도 그날 하루가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를... 그리고 먼 훗날 돌이켜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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