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없음이 있음 속에 있고 있음이 없음 속에 있다.
마음이 많이 아팠던 시절, 사람에게 깊게 상처를 받은 마음은 그 생채기가 쉬이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그 상처가 다시 덧나 다시 아프곤 했다. 몇 번의 반복 후에 나는 더는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워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마치 거북이처럼 한번 그 단단한 껍질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곤 했다.
이십 대 시절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리고 내가 존중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비슷한 기대를 하곤 했었다. 저 친구도 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저 사람도 내가 존중하는 만큼 나를 존중해주겠지...
그런데 만남에는 모두 그들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었고, 나의 기대와 그들의 기대에 차이가 있음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차이가 조금씩 더해갔고, 허하고 조금은 실망스러운 기분이 생기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예전같이 마냥 재미있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나 혼자 껍질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시간이 늘어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혼자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점점 익숙해졌고, 바에 혼자 가서 칵테일을 마시기도 했고, 여행을 혼자 훌쩍 떠나는 빈도도 높아졌다.
누군가 시킨 매운 음식을 쩔쩔매며 나누어 먹을 필요도 없었고, 당일이 되어 상대방이 갑자기 바꾼 일정에 맞춰 내 일정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고, 책방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가 머무르고 싶은 만큼 오래고 머물 수 있었고, 또 진지한 관계가 될 것도 아닌데 괜한 설렘과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썸 따위에 내 시간과 기운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온전하게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가서는, 내가 즐기고 싶은 방법대로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내가 내 일상의 주인이 되어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늘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지금 이 생활이 좋은 거라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또 너만 손해 보고 서운할 테니 아예 궁금해하지도 말라면서 자꾸만 흠칫흠칫 발걸음을 늦추고 뒤를 돌아보는 나를 일부러 누가 계속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날도 시간을 달래려 들린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불교 신자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원체 많이 들어왔던지라, 한편으로는 ‘또 무슨 가르침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불교의 가르침은 늘 뭔가 차분하고 나 본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게 하니 혹시 지금 왠지 필요한 글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스르륵 자석에 끌린 듯이 그 책을 집어 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훑어 읽어보았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가지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있는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책 한 장 한 장에 적힌 글들이 눈을 거쳐 내 마음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단숨에 그 책을 다 삼켜 읽어버리고는 다시 첫 장부터 펴서 또 읽어 내려갔다.
내가 힘든 마음은 내가 그 마음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겪는 상대방에 대한 실망은 상대방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나만의 상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상대방은 그 기대에 대해 알 수도 없고, 또 그곳에 당연히 미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번뇌와 고통은 내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것을 놓아버리고 마음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내야만 나 자신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내가 만들었던 기대를 없애고 나니 더 이상 상처가 날까 봐 단단한 껍질 안으로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일부러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온전히 자유가 되었다.
그 이후, 약속이 있으면 늘 책 한 권을 들고 약속 장소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상대방이 늦을 경우 오히려 그 덕분에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좋았다. 상대방이 언제 올 것에 대한 기대 대신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쓰니 오히려 내가 먼저 도착해서 그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여유까지 생겼다.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비워놓은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어서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가보고 싶은 전시를 보러 가도 좋겠다 하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나를 비우니 그 비움이 오히려 나로 채워졌다.
무소유의 역리(逆理)였다.
책 속의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많은 이야기가 나의 어리석음과 많이 닮았기에 스님의 잔잔하고 또 뼈 있는 말씀들 하나하나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날,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마치 큰 스승님을 잃어버린 듯 커다란 슬픔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모든 것들은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그 인연이 여기까지였음에 그 슬픔마저 놓아주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배움의 길이 멀어 평범한 일상에서 숨이 턱에 차기도 하고, 지구의 중심까지 기분이 툭 떨어지기도 하고, 또 마음이 쪼그라들어 다시 딱딱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그때마다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려 그 집착과 어리석은 마음을 비워내려 노력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시간의 노력과 인내를 겪으면 스님처럼 온전히 마음을 비우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 Photo by 선인장. 시골 어딘가,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