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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의 부고를 접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by 아마토

설 연휴 마지막 날. 성당 구역 반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느 형제님의 부고(訃告) 소식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선종 소식을 보면 마음속으로 형제님의 영혼을 기억하고 안식을 기도했다. 다만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유족에 대한 내용을 보니 아는 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국 아내 역시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확신하게 됐다.


대화를 한번 해본 게 전부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분이었다. 반려자분이 아프셨는데 정성껏 보살펴주셨던 분이셨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세상을 떠나시니 나부터도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성당에서 '죽음'은 인간의 삶을 완성하고 구원으로 이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둡고 두려울 뿐이다.


'시대의 지성' 고(故) 이어령 선생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책에서 죽음을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소리라고 했다. 동시에 '동물원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는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강조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그처럼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두려워할 거다. 나 역시도 한 달 전쯤 이유 없이 갑자기 쓰러져 얼굴을 크게 다쳤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선명한 얼굴의 흉터는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지만 더 큰 트라우마는 예기치 못한 죽음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였다. 그뿐이겠는가.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마주한 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아내는 오늘 저녁 빈소에 가 조문할 예정이다. 나는 국화 알레르기가 심해 가지 못한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함께해 응원하는 것만큼 힘들고 슬플 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작은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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