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후기1
직장에서 도서비가 지원돼 선택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도전해 봤다. 일하랴, 집에서 3명 육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준을 세웠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4페이지씩 읽기로.
하지만 현실의 바쁨과 게으름으로 책을 받기만 하고 고이 모셔뒀었다. 미루고 미루다 읽기 시작한 계기는 12월 3일 다음날인 4일부터였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 사람'이 계엄 선포하면서 책을 읽게 된 동기가 부쩍 생기게 된 거다. 그리고 하루 약 4페이지 씩 읽기 시작했고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나서야 완독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민주항쟁에 관한 책이다. 슬픈 내용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진실.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도 난 정의가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서사를 지향했다. 그래서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영화 <서울의 봄>은 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내란을 일으키면서 과거 아닌 현실이 되버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 슬펐다. 책 내용에 몰입하다 보면 당시 상황이 그려져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잘 써진 책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잘 쓴 책이었다. 광주민주항쟁에 관한 건 책이나 뉴스 같은 각종 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년이 온다>가 가지는 장점은 '감정'이다. 광주민중항쟁을 일반적으로 사실 전달에 중점을 뒀다면 <소년이 온다>는 당시 참여자들의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의 감정을 표현했다. 우리는 각각의 인물이 되어 광주 민주화운동을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1장은 동호의 시선, 2장은 동호의 친구 정대의 시선, 3장 역시 5.18 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은숙의 혼이 되어 여러 시선으로 다가간다.
여기서 6장까지 나오는 인물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머릿 속 깊숙이 들어온 인물이 있었는데 5장에 나오는 '임선주'였다. 특별했던 이유는 그에게서 7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볼 수 있어서다.
"성희 언니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은 그때였다. 옷을 벗어. 우리 다 같이 옷을 벗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잡아가지 마요, 소리치며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그녀들이 지닌 가장 은밀한 것, 모든 사람들이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 처녀들의 벗은 몸을 그들이 만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브래지어 차림의 여자애들을 흙바닥에 끌고 갔다. 등허리의 맨살이 모래에 긁혀 피가 흘렀다."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옷을 벗으며 저항했던 일이 있었다. 1976년 인천 만석동에 있는 '동일방직'공장에서 말이다. <소년이 온다>에 등장하는 선주는 동일방직 노동자였다.
1972년 한국노총 전국섬유노조 동일방직지부는 노동운동사를 넘어 대한민국 역사에도 남는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후 결성된 청계피복노조는 동일방직 투쟁, YH무역노동자 투쟁, 부마항쟁 그리고 10.26 박정희 암살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