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모습에 불편한 감정이 든다.
어느 정도의 죄책감과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경우도 많다.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심리에 분명히 그것에 대한 정의가 있다고 들었다.
타인이 처한 어려움을 위로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안위를 쓸어내린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이라니깐 죄책감은 잠시 미뤄두고 감정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나고 알게 된 지는 결혼할 때쯤이니깐 햇수로 15년 정도 되었다.
눈은 작았지만 얼굴도 작아 인물은 그냥저냥 나쁘지 않고 키는 평균 몸무게는 조금 마른 편이었다.
실물보다는 사진이 잘 나오는 편인 것 같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회경험이 적었고 이 좋은 세상과는 조금 단절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한 발짝만 걸어 나가면 맛있는 음식점과 소비할 수 있는 쇼핑몰이 잔뜩인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알뜰한 것도 좋고 소비가 적은 것도 좋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영원히 젊지 않고 주변 가족들도 영원히 옆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순간을 즐겨야 한다.
꼭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 먹고 쇼핑하는 것만이 필요한 필수 행복은 아니지만 외식은 분명 기분전환이 되고 식전이나 식후 일거리가 없어 몸이 편하다.
먹거리는 안 먹고 지나가면 좋겠지만 때가 되면 먹어야 하므로 커피와는 다른 필수 선택이다.
그리고 쇼핑을 했을 때 느끼는 기대감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도 외식과 쇼핑을 좋아하는 성향은 아닌 집순이에 가깝지만
나가면 누릴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돈이 들어서 문제인것데 돈이 들면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돈 버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반문한다면
이 좋은 세상을 누리고 싶어서라도 경제활동의 노력은 해야 된다고 본다.
또 그래야 부모님에게 용돈 만원이라도 더 드리고
아이들 학원 한 개라도 더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경제활동은 전혀 생각이 없어 보이고 좋은 세상도 누릴 관심 없어 보인다.
오로지 가는 곳은 교회이다.
가난한 자들이 모여 내 탓이라는 원죄를 속죄하고 조금은 닫힌 사고를 하게 되는 교회.
교회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종교인과의 융화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나와는 밀접한 관계로 묶여 안 볼 수는 없는 사이이고 1년에 적어도 세 번은 보게 되며 그 마저도 앞으로 길게 잡아 15년 정도 되는 시한부 만남이다.
서로의 위치가 달라 절대로 같은 마음 같은 방향일 수 없는 관계를 처음부터 너무 확실하게 선 그어 버렸다.
어딘가 모르게 오묘하게 부딪히는 성격 때문에
잘 지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같은 곳을 보기보다는 서로를 자기 자리에서 응원하는 쪽을 택했다.
꼭 함께 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 함께가 안 된다면 각자가 신경 쓰이지 않게 따로따로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다만 그렇게 지내는 것뿐이지 잘 되라고 기도하고 응원까지는 못 하겠다.
그 말은 심리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나눠갖기도
기쁨을 함께 하기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뭉근하게 무르익는 김치찜처럼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인간관계를 늘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