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걱정하며
'자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장엄한 찬가'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을 찬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상의 등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 기본이란 무엇인가?
바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로울 권리’다.
밀은
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원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꿰뚫었다.
인간은 태초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
구석기시대의 불빛 아래, 인간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유를 옥죄는 수많은 굴레들이 생겨났다.
법과 제도, 규범과 통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이
인간의 영혼을 서서히 묶어버렸다.
무제한의 자유는 방종이 된다.
방종은 타인의 고통을 낳는다.
그러나 방종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유 자체를 억압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력을 질식시키는 일이다.
밀은 말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유만이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순간
사회는 썩기 시작한다.
생각의 숨통이 막히면 문화는 시들고
사상의 논의가 멈추면 역사는 거꾸로 흐른다.
정체된 사회는 반드시 붕괴한다.
정체된 인간 역시
발전이 아닌 퇴보만을 거듭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살리는 숨결이며
진보의 원천이다.
자유가 꽃피는 곳에서 개성이 자란다.
개성이 살아 있는 사회는 생태계와도 같다.
만약 누군가가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획일화한다면
그 생태계는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서로 부딪히고 섞이고 논쟁하며 진화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 사회의 진보 또한 그러하다.
『자유론』의 위대함은 이론의 정교함에 있지 않다.
그 핵심은 ‘토론’이라는 인간적 행위에 있다.
토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문명의 불꽃이다.
밀은 말했다.
“인간은 토론하다가 꼬리뼈를 잃은 동물이다.”
그만큼 토론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사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한 사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들이 열띤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른다면
그 결정에는 생명력이 깃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결과이기에
그 결정은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본이자 자유의 실천이다.
밀은 경고했다.
“어떤 한 사람이 나머지 99명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그의 입을 막는 것은,
한 독재자가 99명의 입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독재자의 폭압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자신과 다른 한 사람의 의견에는 돌을 던진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의 사회는
그 한 사람의 목소리마저 품을 수 있는 사회다.
밀은 『자유론』에서 토론 없는 결정의 위험을 역사의 사례로 보여준다.
로마의 현명한 황제 아우렐리우스!
그는 사려 깊고 덕망 있는 통치자였으나
기독교 탄압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이 혼자 판단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들이 사자굴에 던져졌다.
밀은 그것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독단의 결정”
이라 평했다.
이처럼 토론이 사라진 곳에서
자유는 죽고
이성은 잠들며
역사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진다.
『자유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유로운가?
당신은 타인의 자유를 지켜주고 있는가?”
진정한 자유는 외침이 아니라 태도다.
그것은 타인의 입을 막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토론 속에서 더 나은 진리를 찾아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그것이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자유의 위대함’이며,
인류가 끝내 놓쳐서는 안 될
정신의 등불이다.
ps 이 글을 쓰고 나서 나를 돌아보니 내가 문제네. 이런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