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읽는 대한민국 교육여정(6)

전시연합대학을 아시나요?

by 김재훈


전시연합대학을 아시나요?


전쟁의 와중에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백낙준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표한 것이 '전시하 교육 특별요강'이었다. 이 요강에 근거하여 51년 5월 4일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조치령'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전시 하에서도 고등교육을 계속 이어가는 전시연합대학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흩어진 교수와 학생들을 모아 부산 광주 대전 전주 등 4개 지역에서 대학을 운영하였는데 당시 학생 수를 보니 부산이 4268명 대전 377명 전주 1283명 광주 527명으로 총 6455명이나 되었다.


한국전쟁은 해방 후 분출된 우리 민족의 교육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고등교육의 경우는 중대한 변화에 직면하였다. 바로 대부분 학생들이 군대에 가야 했던 것이죠.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시연합대학이라는 체제를 만들어 전쟁 이후에도 고등교육이 이어지도록 한 정부의 조치이긴 하다.

당시 전시연합대학의 운영 요강을 보면 관계대학이 합의하여 운영위원과 학장을 선출하고 그 운영을 담당하며, 소요경비는 관계대학이 공동부담하고, 교수들은 의무적으로 출강하도록 하였으며, 학생이 취득한 학점은 각 대학에서 취득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전시연합대학은 약 1년간 운영되다가 52년 5월 말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전시연합대학은 후에 지방국립대학을 출범시키는 바탕이 된다. 전시연합대학의 운영경험이 지방국립대의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한국 고등교육 발전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또한, 당시 문교부는 1도 1 국립대학을 구상하여 당시에 서울에만 모여있는 대학들로 인해 지방이 고등교육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였다.


그런 노력으로 1952년 10월에 경북대학교, 전남대학교, 전북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53년에 부산대학교, 충남대학교 이어서 충북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955년에는 제주대학교가 창설되었다. 또한, 이 당시에 병역법상 보장되어 있던 대학생 징집 유예제도가 정착되면서 대학교육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진학률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된다.


여기까지는 전시연합대학의 좋은 면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전시연합대학 설립은 그 이면에 안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시연합대학은 그야말로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의 기능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계명대학교 한국학 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시연합대학이 민주주의와 반공기능만을 강조하여 교과수업으로는 무의미하고 대학자체가 목적 없는 학습 장소였다고 한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당시의 대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로써만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격변의 전쟁 통에 대학이 사회적 지위 상승의 도구로써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전시연합대학은 사회의 엘리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이 있었다. 왜냐하면 전시연합대학에 다니면서 일정 부분의 군사훈련만 받으면 병역을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받으면 '전시학생증'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병역을 연기한 것이다. 1951년 11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군사훈련에는 2만 4천7백여 명이 참가하여 병역 의무를 연기받았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재학생의 수업계속에 관한 특별조치 요강'을 정부 측에 계속 건의하여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전시연합대학이 고등교육의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명분 이외에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연기나 기피의 수단이 되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다음 글은 한국전쟁당시 미국 군사고문관이었던 짐 하우스맨의 회고록 중 일부이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지도층들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하버드대학의 고풍 어린 교내 벽에는 한국전에 목숨을 바친 20여 명의 하버드생 병사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한 도시에서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이 한국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학도병을 기리는 동판이나 표지는 없다. 수많은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입으로만 전해질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쟁 후에 팔을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찾을 수 없다. 지도층들이 모이는 연회장이나 행사장에서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전상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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