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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Apr 04. 2018

만약은 .. 없다!

4기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일상 복귀 세번째 이야기-다음 스토리 펀딩중입

암이 의심되니 조직 검사를 더 해보자는 말을 들는 순간, 멍울은 멍울일 뿐 암은 아닐 거야, 아니면 초기여서 금방 쉽게 나을 거야, 하고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하지만 저는 불행히도 유방암 간전이 4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디지털 유방촬영기계

검진 결과를 말하면서 의사는 종양이 크고 간에도 조금 퍼졌으니 먼저 선항암으로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수술하면 예후도 좋다, 간에 보이는 것도 그때 같이 떼어내면 좋을 것 같다,라고 하시기에 절망적이었지만 이렇게 치료도 할 수 있구나, 하고 한편으론 안심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준비하세요, 6개월입니다,라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요.

unsplash

저도 암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약이라고, 4기임에도 그 병기의 심각함을 몰랐습니다. 그냥 그렇게 치료하면 다 낫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암진단은 처음 받아서요. 치료를 거듭하고 이것저것 알게 되어 4기는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돌고돌아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된 상태라 예후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에 그리 심각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게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란 듯이 암을 떨쳐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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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을 진단받기 전 매일매일이 너무도 바빴습니다. 종일 외부에서 일을 하고 끼니도 이동중에 김밥으로 떼우기 일쑤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는 폭풍 밥을 입에 쑤셔넣고 쓰러져 자거나 새벽까지 다음 날을 위해 컴퓨터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땐 잠시나마 짬을 내서, 내가 왜 이러구 살지? 하는 생각을 해볼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냥 벌여 놓은 일이니 습관적으로 일을 해치운다고나 할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건 사치 같았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 같던 내 삶은 유방암 진단으로써 강제로 정지되었습니다. 브레이크가 걸린 뒤에도 제동거리만큼은 달려야 해서 급하게 항암가발을 쓴 채로 폭주 인생을 정리하고, 외부와 격리된 채 간절한 투병을 시작하였습니다.

unsplash

너무나 갑작스레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그동안 잘 해온 일도 접어야 했고, 항암 치료에 수반되는 탈모로 인해 외출도 못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내가 꿈꿀 미래가 과연 있기나 한 건가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약정하면서, 내가 이 기간 동안 폰을 다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서러움이 밀려오고. 하필이면 왜 나지? 하는 원망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곤두박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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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만 집중하자

물론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긴급 수술을 요하는 상황도 아니고, 수술 방사 회복을 거치는 데 일 년 여가 기본인 길고 긴 치료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야채 많이 먹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지 않았더라면......

무척 피곤하다고 몸이 아우성칠 때 그때 제대로 검사를 했었더라면......

너무 무리해서 밤새며 일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만약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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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 없습니다!

유방암을 진단 받았다는 사실은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자랐다는 사실만큼 바꿀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암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생활 패턴을 바꾸고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해서 암에 걸리지 않고, 걸렸더라도 아주 초기에 발견해서 종양을 살짝 떼어내고 계속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은...... 없습니다.

지금의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뿐입니다. 물론 밤마다 자고 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지만요.

죽음을 경험한 마음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덮쳐오는 운명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힘차게 나가 내가 만드는 하루하루를 만나고 싶습니다. 암 극복 이후에도 전이와 재발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눈치를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자신있게 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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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에 갇힌 마음

몸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생생합니다. 머리로는 온갖 것을 해보려 욕심 내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알을 세는 것처럼 지루하게 끝없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던 치료 기간의 나날들.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건강한 회복을 위해 힘쓰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건강에 무심했던 제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기 위하여 이겨 내겠습니다.

내 몸의 완전함을 믿습니다.

--펀딩으로 후원하면서 보내온 위로의 말씀

펀딩으로 후원해 주시면서 전해온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런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혼자서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가족들 지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도가 있었는지, 그분들의 기도와 위로로 암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아침마다 일어나 맨처음 기도로 시작합니다. 오늘도 치료 중에 있는 환우와 보호자분들께 평화와 위로를 전합니다. 기운내시고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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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상처를 직시하는 데까지 16개월이 걸렸습니다. 현실을 회피하고픈 마음이 눈으로 확인하는 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복원 안 한 가슴은 흉하게 쭉 째져 있습니다. 용기내어 들여다본 제 상처, 그것은 훈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잊지 말자는 경고입니다. 힘든 싸움을 잘 이겨내고 앞으로도 사랑하는 가족과 늘 함께하라는 메시지를 제 몸 안에 새겼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암 따위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루도 제 몸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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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는 
잠을 맞을 준비하세요

저녁 10시가 되면 핸드폰을 비행 모드로 바꿉니다. 10시 전에 잘 준비를 해야 11시에 무사히 꿈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10시 드라마 보신다구요? 암 진단 받은 내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이 있을라구요. 떨치기 어려운 유혹 중 하나가 핸드폰입니다. 카톡 등 메신저로 오는 소식도 그렇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도 많이 궁금해서 쉽게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면역력을 위해 과감하게 비행모드로 바꾸고, 오늘 하루 나를 위해 고생해준 육신을 돌아보며 다이어리 체크를 합니다. 약, 물, 걷기 그리고 자는 시간, 장순환 잠깐 생각하고 기록하는 데 4분이면 충분합니다.

원데이원힐링 다이어리 건강 아이콘

핸드폰 비행모드

암을 만난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곤 합니다.

더 건강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더 비우며 즐기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라

습성과 안목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나 안으로만 시선을 두고는

그 변화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김수 교수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줄 모르고 산다

첫 진단시의 절망감, 죽을 것 같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항암의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물가물합니다. 다이어리에 매일 기록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건강은 회복되고 일상으로의 복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런 일상이 됩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줄 모르고 산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게 제일 좋습니다.

다이어리 기록을 보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5월중에 서울 시내에서 건강강좌를 겸한 항암가발 기증환우와의 모임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제게 연락주세요. 항암가발은 가발전문업체 하이모와 제휴하여 맞춤가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정된 환우분께서 하이모에서 맞춤가발 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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