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까지 속이며 갔던 학원의 정체는?
오늘은 소품이 없습니다. 사실 있었는데 글의 양이 너무 비대해짐에 따라 글을 게시글 두 개로 나누기로 했고 그 결과 나눠진 앞부분엔 상징할만한 소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옛날에 입 안에서 쥐가 살고 있었다. (비유적 표현입니다) 나 대신 발언을 담당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나는 어디서든 말하는 방식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쥐 한 마리가 나인 척 내 행세를 하고 다니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내게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기 목소리 같다고 칭찬이 아닌 핀잔을 주었다. (넌~ 목소리가 너무 아기 같아. 원래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아기도 아니고 애기라고 불렀다.) 중학생 때 녹음기로 목소리를 처음 들어본 뒤로 나는 내 목소리가 싫어졌다. 쥐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바이올린의 현을 쥐어뜯는 소리로 느낄 때도 있었다. 또 이걸 고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애기 목소리 평가는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퇴사 후 COVID-19가 찾아오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 자리가 반토막 났다. 쾌적한 공기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없었을 때도 취업 성공을 향한 틈 사이에 비집어 들어가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그야말로 청년들은 마음이 질식해갔다. 초기에는 확진의 예방을 위해 고용의 기회를 줄인 사회의 사정을 알고 모두가 힘들 것을 알아서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을 쉽게 해선 안된다.) 희망을 가졌지만 취업 실패를 빈번히 겪을 때 즈음 코로나 때문이라는 이유는 핑계가 먼지처럼 바스러져서 마스크를 뚫고 코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우울증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것만은 절대 막아야겠다는 간절함과 자기애가 자기 계발로 이어지게 한다. (취업을 향한 시도에만 2년을 허비했다.) 내가 한 것은 일단 다이어트, 라섹 , 머리 스타일링, 맞춤정장 쇼핑을 진전하며 외적인 면을 꾸몄고. 자격증 취득과 웅변학원(자신감은 길렀지만 쥐 같은 목소리는 안 고쳐졌다.)을 다니며 자신감을 길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 자리에서는 준비된 모든 계발은 압박면접 앞에서 개발새발 사라졌다.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지금도 그 면접 자리에서 나는 고약한 향수 냄새가 잊히지 않는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이게 뭐야? 결국 자기애와 절박함은 부족한 도약이었는지 추락해서 침대 위로 매가리 없이 떨어졌다. 종일 집안일과 구직사이트 침대만 진전하며 하루하루를 집순이로 포장한 폐인이 되었다. 바람을 쐬야 우울증이 안 온다고 해서 운동도 했다. 실내 헬스장에서. 부모님이 퇴사 후 종종 권장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른 길을 찾아가라고 권유해주신 직업이 간호조무사와 사회복지사였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듣자마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돕는 훌륭한 직업이지만 희망이 없을 때 선택하는 최후의 직업 같아서 마치 그동안 배운 노력을 모두 버리고 허탈감이 시작될 것 같아 절대 전공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그렇게 2년을 버린 것이다. (사실 그 전공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로 아직도 사람 많은 특정 장소에 가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럼에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는 뻔한 착각을 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부모님의 현명한 제안을 거절하고 애써 웃으며 희망을 갖는 길이 사실은 바늘을 끌어안는 절망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일상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알고리즘의 신이 방향을 잡아주기 위한 관심을 휴대폰 화면에 비춰준다. 성우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녹화본을 아무 생각 없이 눌렀다. 아는 성우들이었다 어릴 때 즐겨보던 아따맘마의 동동이 성우랑 명탐정 코난의 괴도 키드 성우가 진행하는 비공식 라디오였다. 만화를 통해 이미 인지도를 높여 누군지 알고 있었던 나는 묵묵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누워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안 나지만 다 들었을 즈음엔 성우학원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날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마 소리가 화려한 사람과 제 목소리를 비교해 들어보고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나 보다. 그리고 자기 계발 대상이 더 남았다고 판단했는지 성우학원에서 성우만 키우는 게 아니라 발성 훈련과 자신감도 도맡아준다고 하기에 나는 성우학원을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학원을 알아보면서 결심한 게 뭐냐면 절대로 성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지 않고 ( 성우 역량은 충분히 알고 있어서 아기 같은 목소리로 무슨 ㅋㅋ 하고 포기했다.) 가서 목소리를 기르자는 다짐만 했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새로 바꾼 웅변학원이라고 거짓말했다. 너 성우 될 거야?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받기 싫어서 부모님한테도 비밀로 했다. 그 후 모니터링을 통해 결정한 어느 성우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림 같은 집에 학원을 차리셨다.) 학원 상담은 개인이 아닌 두 달에 한번 무료 설명회를 열어 등록 희망생들을 모아서 학원 소개를 하는데 이때 처음 만난 원장님이 내가 처음으로 만난 성우의 실물이었다. 아는 목소리였다! 티브이에서 목소리만 들어본 사람을 실체로 보게 되다니. 연예인을 보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 원장님의 대표작을 알게 되고 집에 가서 그 대표작들을 다 돌려봤다. 성우에 대한 장점 10분과 단점 60분을 들으면서 속으로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다. 나는 성우가 될 재목이 아니다. 듣기 싫은 이 목소리가 전 국민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바뀌는데 드는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도 안 가고 나는 그냥 이 목소리를 주변에서만 듣기 좋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기의식을 멈추지 않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이 끝나고 마지막에는 발성을 직접 들어서 등급을 매기는 시간이었는데 생초짜 생목 쥐어짜기로 지문을 읽은 후 원장님의 평가는 없었다. 말 그대로 없었다 기본기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없듯이 내 목소리에는 성우로서의 등급을 새길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학원 등록 후 기초반에 들어가야 할 수준이었다. (새로운 학원생 대다수가 그렇다.) 원장님은 나에게만 일단 학원을 등록한다면 그때 평가해야 할 거 같다는 말을 하셨다. 기초 초급 중급 이렇게 등급이 매겨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등급을 받지 못하니 뭔가 오기가 생겼다. 물론 학원은 등록할 마음이 있었지만 그 학원에는 발성 훈련이 되는 동일한 조건에 성우가 되려는 훈련반과 취미로 더빙을 해보고 싶은 취미반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훈련반은 갈수록 스파르타가 되어간다는 것) 취미반을 생각하려고 했던 내가 지문을 쥐고 읽었을 즈음엔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그럼 나는 바로 성우학원에 등록해서 목구멍 속의 쥐를 쫓아냈느냐? 아니었다. 큰 난관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학원비였다. 웅변학원은 부모님의 재력으로 도와주셔서 갈 수 있었지만 성우학원은 비밀리에 다녔어야 했다. 그래서 그 막대한 학원비를 나 혼자 충당해야 했다. 다행히 모아둔 돈과 퇴직금이 그득해서 (강원도에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으길 잘했다.) 당장의 한두 달 치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학원비로만 탕진하라고 모아둔 돈이 아니기 때문에 학원은 취직한 후에 등록하기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목표 덕분에 더 적극적으로 취직활동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초라함이었다. 학원에 등록하러 온 사람들은 오래 연습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다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커다란 목소리로 지문을 읽었는데 눈을 감으면 티브이에서 성우가 활동하는 것 같은 재능 있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럴수록 내 평가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이곳에 오려면 적어도 기초를 다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원 등록을 미루기로 했다. 등록을 미루는 이유를 물어보자 여기 오기엔 발성이 너무 기초가 없어서 연습해서 오겠다고 하자 여기서 그 기초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도 왠지 성우에 진심인 사람들 사이에서 쥐 한 마리가 벌벌 떠는 배경이 상상돼서 꼭 꼭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른 발성 학원을 찾았다. 성우학원이 아닌 발성 학원도 분명 있었지만 마음은 성우학원에 뺏겨있어서 이 사실을 숨기는데 애먹었다. 그렇게 1개월 동안 강남의 유명하다는 발성 학원에 가서 기초를 배웠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면 소리는 배에서 나온다는 점. 그 뒤로 유산소 운동에서 코어운동으로 바꿨고 호흡은 오직 복식호흡만 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기초를 배우고 자신감이 생기자 이제 성우학원을 향한 목표가 한 가지 남았다. 취직하기! (돈이 바닥나는 게 제일 무서운 사람)
이제 면접에서도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됐고 자신감도 얻었으니 다시 취직하러 가볼까 하고 힘차게 어깨를 부풀리고 다시 면접의 바다에 빠졌다가 그대로 침몰해버린다. (꼬륵꼬륵)
오랜만에 맛본 취업 실패의 쓴맛은 뱉다가 오장육부도 같이 토해버린 느낌이었다. 심지어 자기 계발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되는 퇴짜에 나는 무엇이 부족한지 이제 알 수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자격증을 더 따야 할지 몰라서 다음 자격증을 목표로 특정 교재도 사놨다. 그리고 외모를 더 가꿔야 할지 굶어서라도 면접관의 틀에 몸을 접어 넣을지 또 침대 위에 누워서 우울에 빠졌지만 바다에 빠져서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 우울감을 즐기고 있을 즈음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구조선이 왔다) 부모님은 또 간호조무사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주제에 화가 나서 전화로 싸우기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게 보기 싫다는 부모님의 말에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안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발성 학원에서 배운 걸 잊어먹기라도 하듯 배가 아닌 생목을 쥐어짜며 울었고 다음날 목이 부었다. 결국 부모님께 홧김에 다 털어놓았다. 지금 취직하지 않으면 다니고 싶었던 성우학원에 갈 자금을 마련 못한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더니 부모님의 반응이 어이없어서 허탈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변화가 있어야 너를 새롭게 보는데 변화도 없으면서 널 새롭게 봐주길 원하는 사람이 어딨니? 학원을 꾸준히 다녀야 진짜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되는 거지 돈 걱정하지 말고 당장 다녀 돈에 얽매이지 마, 너 가고 싶은 데를 가서 마음껏 배우고 와." 예상치 못한 허락과 응원에 나는 뭔가 허무했다. 재능이 없을 거라고 반대하는 예상을 뒤집고 당장 학원에 가는 것을 적극 지지해준 사실이 마치 구조선에 탑승한 게 아니라 바닷물을 모두 비워서 나를 구한 느낌이 들었다. (예상 못했다는 뜻)
통장에서 학원비가 빠져나갔다. 큰돈이 주기적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당분간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학원에서 배우는 훈련은 손에 쥐어지지 않아도 몸속에 기억되는 값진 것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열정적이었고 동급생들과는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에게 학원에 온 계기를 설명했을 때 해주신 말이 떠오른다.
"성우가 되려고 오는 것도 좋지만 훈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나는 지난 1년 중 4개월을 성우학원을 다니면서 간호학원에 다녔다. 취업계획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무기한 보류 실습이 겹쳐서 성우학원은 실습이 끝나면 다시 다니기로 했으나 시험공부 때문에 끝난 후에도 다시 등록할 여유가 나지 않아 현재는 학원을 그리워하고 있다. 여름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곳을 한 겨울에 패딩을 입고 뒤뚱거리며 학원을 갔던 추억 거기서 배운 모든 값진 훈련은 이제 일상이 되어서 무엇을 읽든 소리 내서 읽고 배에 힘을 주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보니 다시 녹음해서 들어본 목소리에는 더 이상 쥐도 아기도 없고 오로지 내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12년 만에 내가 직접 소리를 내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처음에 들렸던 아기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하셨다. 처음 들었을 때 성대에 근육이 없어 힘이 없다는 말에 좌절하기 무섭게 굳세어나간 흔적에 성취감이 목을 타고 들렸다. 드라마 대사를 읽기도 하고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하며 연극을 하고 원장님이 출연하신 작품을 모아 대본 리딩을 하며 성우 훈련으로 정신적 안정도 받았다. 나에겐 정신치료도 된 셈이었다. 짧은 학원생활이었지만 그 사이에 나는 심신안정과 함께 취업에 대한 성급함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연습해 성우 데뷔를 목표로 남은 여생을 보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학원을 쉬어도 배웠던 수업을 혼자서라도 이어나가고 있다. 아직까진 부모님 말고는 성우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어리석다는 평가에 묻힐까 봐 비밀로 해둔 채 다시 학원에 갈 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책을 모은다. 그리고 녹음기에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목소리들을 모아두면서 그렇게 한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발성연습에 무한한 계획을 세우고 삶의 목표를 정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전공을 살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려 했던 사람에서 프리랜서 성우가 되고자 하는 바람까지 다시 다닐 수 있는 날이 있음을 믿는다면 나에게 아직 남은 파도가 그저 기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