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핥기가 유일하게 반긴 미래

햛이 아니고 햝이었구나

by 얼세이

그럴싸한 글 하나 완성하는데 5시간이 걸리는데 나는 황소고집이라 글을 다 쓸 때까지 자리에서 안 일어나서 햇살 가득한 오전이나 고요한 저녁 하루를 그냥 홀랑 버리는 일을 몇 번 겪었다. 그래서 허무하게 버린 시간들이 아까워서 글 쓸 때가 되면 앉기가 망설여진다. 창작이란 게 원래 단시간 안에 태어나진 않지만 5시간 중 절반은 아무것도 안 쓰고 머릿속을 헤집기만 하는 시간이라서 어떻게 보면 앉아있기만 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진전이 안되면 그냥 저장하고 일어섰다가 다시 생각이 나면 앉으면 될걸 다 쓸 때까지 의자에 뿌리내리거나 아예 안 쓰거나 모 아니면 도 생활이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도 길들여야지 겨우 세 개 썼잖아 뭐든 야생마 시절이 있다고 그랬다. 누군가 (그게 누군데) (있어 책 속의 인물)



20221107_114942.jpg 노란 얼룩이 신경 쓰이지만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이 작고 귀여운 거 뭐야"


이 녀석은 도자기 군으로 인사동에서 사 왔다. 인사동의 아이디어스에서 사 왔는데 거기서 만든 게 아니라 작가로부터 납품한 물건이라 디자이너의 정보는 모른다! (이래야 내 글의 정체성 답지) 인사동을 시골 할머니 집처럼 드나들었던 때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왜 시골 할머니 집이냐면 내 집처럼 드나들기엔 너무 먼 곳이었다. 홍대에 가서 길만 잃고 다시 돌아왔다는 새가슴 이야기와는 다르게 인사동은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국적인 것들을 모아서 한국적으로 만든 안국역 앞의 인사동 거리를 걷고 반해버렸다고 해야 한다.



20221107_114956.jpg 말똥말똥



"겨울 참새목"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시내에 나를 자주 데려가 주셨다. 초등학생일 때는 집 근처 로데오 거리를 밤에 손 잡고 걸었었는데 전광판이 알로록달로록 빛나는 것을 어린이 시선으로 올려다봤었다. 마치 놀이공원의 퍼레이드처럼 반짝이는 전구들이 대다수가 술집이나 노래방 당구장 간판이었지만 글 대신 빛을 보며 부모님 손을 잡고 지나간 풍경이 소품 하나 없이 기억에 남았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우연인지 부모님과 같이 시내에 간 추억은 대부분이 겨울날이었다. 아마 춥다고 집에만 콕 박혀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겨울 외출을 자주 나가셨거나 아님 추위가 기억을 강하게 남겼거나 겨울에 항상 외출할 때마다 부모님이 참새목 하지 말라고 (추워서 목을 잔뜩 움츠린 자세) 말해주셨던 게 생각난다. 그 참새목 상태로 갔던 시내 중에는 인사동도 있었다.



20221107_115012.jpg 사고 친 강아지 눈빛



"인사동 정말 좋아 나 여기서 살래"


고등학생 겨울방학일 때 부모님이랑 또 아침부터 시내 나들이를 나갔다. 인사동과 남산타워 명동을 하루 만에 다 둘러보기로 했다. 명동과 남산타워는 몇 번 데려가 주신 적이 있어서 눈에 익었지만 인사동은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어떤 곳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 채 가는 아름다운 거리를 마주하는 것은 거의 사랑에 빠지기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예술가들의 로드였다. 골동품을 파는 가게부터 직접 그린 붓글씨나 수묵화를 파는 장인 거리에서 실시간으로 그린 그림을 파는 화가 필리핀에서 수입한 조각상을 파는 집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는 수많은 전시회 1층엔 장인과 상인들의 구제식이고 전통적인 색채를 보존한 거리라면 2층엔 젊은 친구들을 위한 다채로운 가게의 건물들이 거리의 색을 꾸며주고 있었다. (마치 매일이 가을 거리 같은 느낌) 이국적인 가게들도 섞인 거리를 한국적이라고 표현하게 된 결정적인 것은 모든 외국 브랜드 가게들의 간판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 영어로 꾸미는 시대에 아직까지 큰 글자로 한글이 표기되어있는 세상이 있음을 영어의 곡선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20221107_115022.jpg 고양이 소년 피겨를 바라보고 있다.



"틈만 나면 그 먼 거리를 혼자 지하철까지 타고"


혼자 지하철 타는 걸 무서워했는데 인사동에 놀러 가고자 하는 바람은 이를 극복시켰다. 인사동 가는 길을 부모님께 물어봐서 가장 빠른 정거장도 알아보고 1년 동안은 인사동에 혼자 놀러 가는걸 낙으로 삼았다. (왜 혼자 놀러 갔냐면 공부 안 하는 고삼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정신이 나갔군) 안국역에 내려서 4번 출구로 나가면 가장 먼저 다양한 가방들이 빼곡히 진열된 가방 집을 지나 트여있는 길로 바로 들어가면 인사동 문화의 거리가 내 눈에 보이는데 건물 앞의 나무들이 높기도 높아 탁 트인 경치를 보는 기분이 들어 나무조차도 마음에 드는 이 거리를 생각날 때마다 안 올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노는 루트는 똑같았다.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은 고양이라는 조각품 상점이었는데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만든 다양한 조각품들을 구경하다가 한 마리에 2천 원 하는 손가락만 한 고양이 조각을 갈 때마다 하나씩 사 오곤 했다. (정말 많이 샀는데 현재는 지인에게 다 무료로 나눠줬다.) 고양이 한 마리 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골동품 가게나 소품샵을 구경하면서 눈에 잔뜩 제 취향 거리만 가득 담았는데 다른 시내의 문구점이나 장난감 가게에서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소품샵의 개념을 인사동에서 처음 접했다. 그 뒤로 실패했던 홍대 투어를 갔을 때나 다른 곳에 놀러 갔을 때 소품샵을 꼭 들러봐도 인사동만의 색깔 있는 거리는 드믈었다. 무척 대중화된 소품샵 혹은 잡화상점인 플라잉 타이거나 버터 샵 같은 곳에서 자신만의 상품으로 승부를 보거나 혹은 산리오 짱구 같은 다른 캐릭터 상품을 납품한 편의점 같은 소품샵들도 (이런 건 주로 홍대와 수원에 있다.) 좋지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둔 곳은 인사동이 유일했다. (제가 간 곳 한정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모든 곳을 지나칠 수 없었다.



20221107_115037.jpg 흘겨보는 고양이 소년을 흘겨보는 도자기군



"아주 큰 변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인사동에서 놀면서 보내다가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강원도에서 3년 정도 혼자 살면서 인사동을 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1년에 두 번 정도밖에 갈 수 없게 되자 그곳의 거리가 너무 그리웠고 휴가를 낼 때마다 꼭 한 번은 인사동에 들러 변한 게 없는 거리와 변한 게 있는 거리의 탐색을 즐겼다. 오랜만에 갈 때마다 내가 자주 가는 가게는 여전한지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슬퍼 섭섭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퇴사 후 다시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인사동 투어를 나섰다. 근데 오랜만에 온 곳에 못 보던 커다랗고 새것 같은 건물이 이목을 잡았다. 문화 복합몰 안녕 인사동이라는 건물이, 헌 건물 사이에 새 건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공사 중 간판이 있었다. 건물 자체가 은으로 지은 것처럼 반짝였고 앞에는 커다란 정자 포토존이 서있고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었고 건물 1층엔 라인 프렌즈 스토어가 입점해있었다. (간판은 영어였다.) 외국사람들의 라인 인지도는 매우 높아서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에는 어딜 가나 있었는데. 인사동도 같은 곳이 되었다. (네이버에서 만들었지만 일본에서 흥해서 라인이 일본 쪽인지 한국 쪽인지는 정말 60년 토론 주제라 굳이 그걸 파헤치지는 않겠다.) 아무튼 그 복합건물은 나에겐 나쁘지 않은 오히려 좋은 변화였다. 변화에 섭섭해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반대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20221107_115051.jpg 옆모습



"안녕 인사동"


인사동의 거리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사람이 있는 곳엔 변화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낡고 낮은 건물과 기와건물 사이에 나타난 새하얀 메탈 빛 건물을 보면 이질감을 느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이 건물을 세우면서 인사동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입구에 세운 기와 정자랑 한국식 간판 그리고 한복을 입은 라인 프렌즈 캐릭터들을 보면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새 건물이 생기는 것은 새로 지었기 때문에 당연하다. 인사동의 모든 건물은 처음엔 다 새 건물이었다. 내부를 들어가 보니 정말 생소한 상점이 많았다. 직접 만든 사탕을 미술작품처럼 전시해 파는 사탕가게부터 동그란 원통 공간에서 나무와 책으로 꾸민 북 카페 그리고 청년 작가들의 문구류를 파는 큰 문방구가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만든 스티커와 다이어리가 모여있었다. 작가분들은 대중화된 캐릭터들보다는 인지도가 낮더라도 상품을 만들어 팔기까지의 노력은 어느 기업이나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런 작가분들의 물건을 진열해놓은 문방구가 있다는 것은 되게 반가운 부분이다. 그곳에 진열된 물건들이 모두 기회 같았다. 상가의 있는 모든 생소한 콘셉트의 가게들도 기회들로 가득 찬 그야말로 미래였다. 성공할 기회 인지도를 넓힐 기회 인사동에선 과거와 미래가 모두 공존하는 흔치 않은 거리로 변화하는구나. 그곳에서 사람들은 현재 역할을 맡는다.



20221107_115104.jpg 약간 꾸깃한 모습 귀여워



"그래서 이건 어디서 샀냐."


인사동 쌈지길이라는 같은 복합 문화공간이 있다. 안녕 인사동보다 더 오래된 같은 상가식 가게였다. 공예전문 쇼핑몰로 인사동의 대표 건물이었고 고등학생부 때 자주 왔던 곳이었다. 각종 공예에 참가할 수 있고 직접 손으로 만든 수공예나 그림 등을 팔았다. 안녕 인사동에 비교하면 이쪽은 나에게 과거였다. 상가 안쪽에는 유일하다 싶은 한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남자랑 밥을 먹었다. (고삼 때였다. 심지어 남자 사람 친구도 아님) 그 식당과 상가는 내가 퇴사하고 인사동을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큰 변화가 없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변하지 않는 과거의 공간에서 어느 날 미래가 입점했다. 시점은 안녕 인사동이 생긴 후였다. 그 쌈지길 건물 안에 아이디어스 몰이 입점했다. 똑같이 작가들의 수작업품을 납품하는 가게였다. 그 문방구처럼 기회의 상점이 또 생긴 것이다. (이런 의미부여를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문방구와 다르게 이쪽은 장식품이나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진열해두었다. 마치 액세서리 가게 같았다. 놀랍게도 작가들마다 강한 개성이 진열장 하나하나에 강하게 빛이 나서 내 취향들이 많았다. 인터넷으로만 보다가 실물로 보니 구매욕구가 가득 차올라서 그중 제일 이목을 이끈 저 도자기 군을 집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근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DP상품인 줄 알았는데 물건 개수가 진열된 한 개 그게 전부였다는 것 (진열대 밑 서랍에서 상자에 담긴 물건을 꺼내 줄 줄 알았는데) 사진 속 조화는 이미 널브러질 대로 널브러진 힘없이 꺾인 상태였으나 어디서 새 조화를 구할 방법이 없어 그냥 같이 포장해달라 했다. 그래서 비닐포장지에 저 모습 그대로 포장됐다. 행여나 줄기 부러질까 봐 가방에 조심조심 넣어 가져왔는데도 집에 와서 꺼내보니 원래 달려있었을 꽃송이가 똑하고 참수당해있었다.



20221107_115130.jpg ◐◐



"결론"


과거만 있는 곳은 없고 과거만 보고 살 수도 없다. 우린 경쟁을 위해 변화하고 사람의 신체 조차도 변화를 거듭난다. 그래서 과거는 추억의 보물상자처럼 가끔 열어보는 작은 상자 같아야 하고 현재와 미래로 많은 것을 가득 채우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인사동처럼 과거의 지분이 많고 가끔 미래에 기울여보는 쉬어가는 이색적인 사고를 가진 거리를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더 다양하고 미래적인 시장이 나타나도 한국의 문화와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가 있다면 그 거리가 본질을 잃지 않는다면 나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추억이 가득한 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곳 자체가 커다란 사진첩이다. 사진 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추억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글 쓰는데 2시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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