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여행 - 여름의 지리산

지리산의 숨은 맛집과 상림공원 꽃무릇, 서암정사

by 이상호

아내와 살아서 가볼 100곳 네 번째 여행은 지리산이었다. 붉은 꽃무릇 구경도 갈 겸 해서 누나와 동행하여 먼 길을 다녀왔다. 단풍이 들면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2019년 9월 23일


누나와 함께 떠나는 지리산 여행

아내와 오전 9시 40분경 가게를 출발해 삼산강변에서 누나를 태웠다. 내비를 켜고 실상사를 목적지로 입력하니 거리가 230km로 나와 숨을 크게 들이쉰다. 경부고속도로를 주행하다 서대구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구름 가득하던 하늘이 청푸른 얼굴을 내밀었다. 남원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인월을 달리니 지리산 자락의 맑은 강물과 녹음의 숲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실상사 가든에서의 특별한 다슬기탕

실상사 입구에 있는 실상사 가든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40분. 꼬박 세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는데, 입구는 허름했고 가게 내부엔 커다란 테이블 4개와 효소 담은 병, 술 담은 병들이 아주 자유분방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솔직히 지인의 강력 추천이 없었다면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새였다. 메뉴도 다슬기탕과 다슬기 수제비 두 가지뿐이어서 우리는 추천받은 다슬기탕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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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별로 탕그릇에 나오지 않고 냄비에 3인분이 버너 위에 올려졌다. 그런데 다슬기탕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 이것이 진짜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이 맛을 우리만 알 수는 없기에 주변에 나누기 위해 추가로 5인분을 포장하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인사드렸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는 이렇듯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려면 편견을 꾹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상림공원의 붉은 꽃무릇 향연

상림공원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우리를 맞이했고, 가까이 다가가니 꽃무릇이 나무 아래의 지면을 붉게 덮고 있었다. "우~와 이쁘다"라는 감탄사가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이 순간 이 장면을 소유하느라 바빴다.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약 1200미터 길이로 꽃무릇이 만개해 있었다.


숲의 옆길을 걸으며 되돌아오니 연꽃은 지고 없었지만 잎은 논을 뒤덮고 있었다. 만개했을 풍광을 상상하며 돌아오는 길에 연못의 세계 각국 다양한 수련들이 아름다운 미소로 내 걸음을 멈추게 해 나도 함께 웃었다. 다슬기탕을 맛있게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내는 오색밥을 먹어보자고 해서 늘봄가든을 찾았다. 음식탐방 차원으로 먹어봤지만 역시나 배가 부르니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역시 시장만 한 반찬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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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서암정사

그림같이 굽이진 지안재에서 사진을 찍고, 지리산의 칠성골에 있는 서암정사로 향했다. 산 중턱에 자리해 멀리 산능선이 아름답게 보였다. 콘크리트가 아닌 바위 터널로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대문이 감동을 주었고, 동굴 내의 벽과 천장에 조각된 불상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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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를 마치고 경내를 돌아보니 연못과 누각이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경이로운 산수화를 이루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수많은 생각들을 칠성골의 계곡물에 전부 흘려보내고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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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먼저 떠난 후배를 그리며


우리는 마당바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보고 싶은 곳 네 번째'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순의 나이에 아내와 누님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여유와 풍요로움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행복이란 늘 곁에 있음에도 내가 챙기지 못해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가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그때 다시 아내와 지리산 단풍나들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위치가 같더라도 때가 다르다면 산은 완전히 다른 곳을 보여준다. 이것이 금강산이 계절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이유이며, 우리나라의 다른 산들 또한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산청을 지나며 진주에 살았던 산악회 후배가 그리워졌다. 산지기로 히말라야의 고산도 함께 오르내리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고, 내가 지리산 자락에 오면 언제든 달려와 술 한잔 나누었던 후배였는데, 사고로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멀어져 가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단풍이 들면 우리 다시 만나자고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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