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에루 Feb 28. 2019

그가 꿈에 나왔다 05

조정석, 성식이형, 그리고 크리스탈이 일하는 곳


에덴 홀은 참 특별한 바다. 대부분 바라고 생각하면 여성 바텐더가 많고 대화를 주로 하는 모던바를 생각하거나 화려한 칵테일 쇼를 보여주는 플레어 바를 떠올린다. 그러나 에덴 홀은 이 모든 걸 합친 듯 하지만 고유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바텐더라는 말은 bar와 tend의 합성어에 뭐뭐 하는 사람의 er를 붙인 단어로 바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바를 이루는 것은 술이기도 하지만 80 퍼센트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에덴 홀의 바텐더들은 그런 의미에서 참 매력쟁이들이다.


그들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에덴 홀의 바텐더들이 좋은 대화 상대라는 것이다. 핑퐁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센스가 탁월하며 상대방을 위하거나 서비스 마인드가 뚜렷한 프로들이다. 게다가 빵 터지는 입담도 가지고 있어 술맛이 배가 된다. 바텐더 경력이 상당한 멤버들로 이뤄져 있는 에덴 홀의 칵테일도 큰 매력이다. 바텐더마다 각자 잘하는 칵테일이 다르고, 매번 어울리는 체이서(Chaser) 음료나 안주를 권해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술을 즐길 수 있다. 웨스턴 바와 같은 화려한 칵테일 제조 기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칵테일에 따라 불쇼를 보여주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눈 앞에서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런 매력만으로도 충분한데 신기하게도 에덴 홀의 바텐더들은 다 선남선녀들이었다. 조정석을 닮은 시니어 바텐더, 이름이 수정이라 크리스탈이라고 불리던 여자 바텐더, 그리고 큰 키가 성시경과 비슷해서 성식이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바텐더까지 모두 근사하다. 이따금 어린 손님들이 오면 그들과 어울리다 꺅꺅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니 너무 예뻐요,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자주 올게요’를 외치는 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수긍했다.


내가 에덴 홀을 혼자서도 자주 찾게 되자 이 바텐더들 사이에서 재미난 현상이 생겼다. 에덴 홀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칵테일을 주문하고 두 번 세 번씩 또 주문했다. 반면 나는 자주 이곳을 찾게 되면서 술 한 병을 주문하여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대게 손님들이 에덴 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자신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 반면 나는 새롭게 물어볼 것이 없으니 말하기보다는 바텐더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응대하게 되는 바텐더는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 시간을 보내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미묘한 신경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주로 나를 응대해주었기에 찾아주는 손님이 상대적으로 적은 성식이형이 주로 나와 술잔을 기울였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터라 성식이형과는 대화가 곧잘 통했다. 내가 술에 대한 설명을 좋아하는 것을 알자 이런저런 술을 맛볼 수 있게 조금씩 나눠주거나 곁들여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주곤 했다. 그렇게 한두 잔 술을 마시고 있다 보면 이내 아저씨가 왔다.


“아윤! 왔어?” 


팀장인 그는 바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으로 항상 이런저런 사무를 봤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서는 나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제야 내게 말을 건넬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아저씨가 내게 오면 아저씨, 성식이형, 그리고 나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대화의 주도권이 아저씨로 넘어갈 즘 성식이형은 사라져 있었다. 이 별 것 아닌듯한 역학 관계는 계속 이상해졌다.


크리스탈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던 수정 언니는 시원한 이목구비가 예쁜 사람이었다. 허스키한 하이톤 목소리로 “왔어!”라고 반겨주면 마음이 금세 따뜻해지는 에너제틱한 바텐더였다. 남자 바텐더가 더 많았던 에덴 홀에서 그녀는 엄청난 존재감으로 그 누구보다 많은 여자 손님들을 단골로 갖고 있었다. 


“어휴, 이 아저씨들하고 이야기해서 뭐가 재밌어 아윤아!”

“그러니까요 언니, 너무 재미없어요.” 


“재미없긴 무슨? 너 방금 전까지 웃었잖아” 


“팀장님은 진짜! 팀장님이 애기 앞에서 재롱떠는데 얘가 웃지 그럼 안 웃어요? 노인 공경도 몰라요?” 


아저씨가 나이 공격에 이은 노잼 공격의 2 연타에 울컥하면 언니는 한방에 그를 굴복시켰다. 언니는 아저씨와 다른 남자 바텐더들을 비집고 내게 다가와선 저녁은 잘 먹었는지 별일 없는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모든 바텐더들이 바빠 혼자서 조용히 멍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는 내게 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했다.


대부분의 바텐더들과는 나름의 관계를 형성한 반면 조정석을 닮은 시니어 바텐더와는 인사 이상의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 항상 다른 손님들로 바쁘기도 했고 내 앞을 지키는 다른 바텐더들 때문에 굳이 다가올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어려 보이는 내가 점점 에덴 홀을 자주 찾는 모습에 부모를 잘 만난 속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의 일이지만 내가 갓 졸업하여 일을 하고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안 조정석 바텐더는 나를 날라리라고 부르다 ‘놀 줄 아는 멋을 아는 친구’라고 했다는 걸 성식이형이 알려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퍽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그가 에덴 홀을 그만둘 때 까지도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이별했다.


조정석, 성식이형, 그리고 크리스탈이 일하던 에덴 홀은 계속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비워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서 에덴 홀을 지켰다. 떠나간 바텐더들이 그를 다시 찾아와 상담을 하기도 하고 업무가 아닌 여가로 에덴 홀을 즐기는 모습도 때때로 보였다. 항상 어렵고 고된 마음으로 에덴 홀의 아저씨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가 건네는 담백한 위로나 한잔의 술이 사람들에게 에덴 홀로 다시 돌아오고 싶게 하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 시절 뚜렷한 방향 없이 열심히 매일을 살아내던 사람들이 모여 불안한 마음과 외로움을 함께 달랜 에덴 홀을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될 수 있게 빛내준 수많은 바텐더들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그가 꿈에 나왔다 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