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영업 같은데
에덴 홀의 긴 바 안에는 서너 명의 바텐더들이 일하고 있었다. 주문 들어온 칵테일을 만드는 민첩한 손놀림에 먼저 눈길이 갔다. 나는 처음 보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채 친구에게 이끌려 한 무리의 손님들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오빠! 여긴 내가 말했던 같은 학교 나온 아윤이"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도 잠시 우리는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 어울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에덴 홀로 초대한 사람은 우리보다 한 살 많은 남자였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오빠는 낯을 가리지 않는 유쾌한 성격에 무례하지 않았다. 좋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이 바의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형! 우리 맛있는 칵테일 두 잔 주세요!”
뒤늦게 온 우리를 위해 주문을 넣어준 오빠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일행을 소개해주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적당히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칵테일이 왔다. 칵테일을 마시며 무심코 다시 바를 바라보았다. 한쪽 끝에 손님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여자 바텐더가 보였다. 중간엔 키가 큰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고 반대쪽 바 밖의 의자에 바텐더로 보이는 남자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귀로는 나누는 대화에 집중했지만 나도 모르게 바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의 깊게 보며 한 모금씩 술을 마셨다. 칵테일이 바닥을 보일 즘에 우리는 테이블을 벗어나서 가게 안에 있는 다트 머신 앞에 모두 서있었다.
자고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술을 마시거나 편을 나눠 게임을 하는 것이 최고인데,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곳이 바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무작위로 팀을 짜고, 경기의 결과에 따라 게임을 한 사람들에게 술을 사는 간단한 내기가 동반되는 게임은 어색한 사이를 가깝게 하고 술만 마시면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유일한 문제는 머리수가 맞지 않아 팀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형 많이 바쁘세요? 잠시 한판만 같이 해요!”
“어어.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금세 갈게”
단골이라던 오빠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바 밖에 앉아있던 바텐더가 하던 일을 정리하고 우리와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바텐더였다. 적당한 키에 까만 셔츠와 바지가 잘 어울리는 체격이었다. 수염이 취향이 아닌 내 눈에 중동 남자들처럼 기른 수염보다 깨끗한 얼굴선이 먼저 들어와 내심 신기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 비해 나이가 있었고 붙임성 좋은 목소리로 손님인 우리가 즐겁게 놀 수 있게 어울려주었다.
가위 바위 보로 팀을 나눈 결과는 내 친구와 오빠, 오빠의 일행 두 명, 그리고 나와 바텐더, 세 팀이었다. 처음 경기를 해보는 나와 친구를 경험이 많은 두 사람이 한 명씩 팀원으로 뽑았다. 뭐라 해도 이 경기는 제법 비싼 내기가 걸린 게임이니 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처음 다트를 던져보는 우리에게 오빠와 바텐더가 번갈아 속성 레슨을 해주었다. 다리는 이렇게, 그립은 저렇게 하라는 내용보다 연습 삼아 던진 다트가 맥없이 이리저리 떨어지는 모습에 우리는 집중했고 크게 웃었다.
꽤나 유쾌한 게임이 몇 판 진행되고 나와 바텐더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점수를 내면서도 묘하게 게임을 지지 않았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채 시작한 게임이지만 예의를 갖춰 서로의 순서를 말해주거나, 잘 던졌을 때는 예의 바른 거리를 유지하되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하며 따낸 공짜 술에 즐거워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때에는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매일 같이 다트를 던지는 그가 손님들이 내는 점수와 비슷하게 다트를 던지면서도 웬만하면 지지 않는 것이 그의 노련미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제법 나중의 일이다.
게임이 끝나자 친구와 나는 서로 눈짓한 후 들어가 보겠다고 말을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자리에 시간이 늦었던지라 함께 놀았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엔 점점 밝아지는 하늘이 보였다. 네온사인 때문인지 날이 밝아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 저 들어가 볼게요!”
“어 그래, 어? 잠깐만! 친구도 들어가?”
그는 황급히 나가는 우리를 멈춰 세웠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나는 성큼 내게 다가오는 그를 보고 움찔했다.
“아. 친구는 다음에 꼭 또 놀러 와. 그리고 연락해, 알았지?”
이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쥐어주었다. 하태환 팀장. 물끄러미 명함을 바라보며 그 ‘친구’가 나를 말하는 것인지 명함을 건네받기 직전까지 몰랐던 나는 방어적인 기색과 어색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 기회 되면 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친구가 말했다.
“이거 영업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