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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Feb 14. 2018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 1

<병(病)>


#1.


 여느 날과 같이 런닝화를 신고 공원을 뛸 때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에서 온갖 색이 뒤엉킨 물감들이 바닥에 뿌려졌다. 쉴새 없이 비집고 나오는 그 색은 10㎞ 안팎 거리를 흥건하게 물들였다. 토하듯이 쏟아내도 내 몸속에는 여전히 가득했다. 모두 내 생각이고 내 파편들이다. 지친 상태였다. 마지막 남은 알갱이마저 쏙 빠져버린 치약처럼 축 늘어졌다. 평일 교회 안을 밝혀주는 촛불같이, 무(無)로 있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휴가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기간이 민망하다. 단지 지난해에 매듭지었어야 할, 못 꺼낸 쉼표를 이제야 들춰본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사람의 몸이란 게 얼마나 나약한지, 나는 나흘간의 휴식 내내 악몽(惡夢)에 시달렸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짙은 오한과 복통에 몸을 내주기도 했다. 전화와 문자들은 나를 밤낮없이 괴롭혔다. 아팠다. 몸과 정신 모두 삐걱대버리니 홀로 있는 틈을 즐길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런데도 기록한다. 통증은 잠깐 찾아오는 손님이다. 몸이 나으면 정신도 회복된다. 숨구멍이 떡 벌어진 정신머리에서 글을 쓰는 순간은 많지 않다. 쓰다 보면 그간 찾지 못한 광맥을 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내 태엽은 다시 감길 것이다.


 나는 착 가라앉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글들은 다소 내려앉는 분위기에 돌돌 말릴 수 있다고 본다.


 이건 3박 4일 제주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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