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한 주제로 2600장을 쓰고 얻은 것들

강박증을 얻었...이건 아닌가

by 이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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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면서 나는 잃은 무언가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먼저 출판 이야기를 해야겠다. 감사히도 좋은 출판사 2곳과 연을 맺었다. 한 출판사와는 후암동 미술관 '이론편', 또 다른 출판사와는 '인물편'에 대해 함께 출간 작업을 하기로 계약했다. 탄탄한 출판사 2곳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전후 과정은 곧 다른 글을 통해 남기고자 한다. 이번 기사 연재물은 쓸 때부터 출판을 염두에 뒀었기에, 이 일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과였다. 당장 지금도 너무나 좋은 기사들이 글의 무덤으로 끌려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운을 어떻게 잡을 수 있었는지도 곧 다른 글을 통해 기록할 생각이다. '이론편'을 다룬 책은 이르면 오는 6~7월, '인물편'을 담은 책은 내년 3~4월쯤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하나만 더하자면, 행운이 고개를 든 건 전적으로 독자분들 덕이었다.


"주말 첫날인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항상 읽는다."

"그림에 대한 견해가 없는데도 글 읽는 내내 좋은 시간이었다."

"늘 감사하며 잘 읽고 있다."


이어 더해


"소장하고 싶다."

"종이책으로 내주면 꼭 사서 읽겠다."


놀랐다. 고마운 댓글, 감사한 댓글, 설레는 댓글 등을 이렇게나 많이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회부, 정치부 생활만 7년 넘게 하면서 많은 악플을 받았다. 직업 생리상 한쪽 진영을 전담마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반대편 진영분들 중 상당수는 늘 내게 화가 나있었다. (물론 내가 마크하는 진영의 사람들 중에서도 내게 화가 나있는 분들이 많았다….특히 정치부 기자들 중 악플로 인해 전문기관에서 심리 치료를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독자분들의 응원 덕에 더 힘이 났다. 1년간의 우여곡절에도 밀고 나갈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소중한 격려 덕이었다.


쓰다보니 글 스타일도 새롭게 잡혀갔다.


나는 글에 대해 꽤나 강박이 있다. 우선 앞선 글과 이 글에 모두 '것'이 없다. '됐다'는 식의 노골적인 수동태도 없다. 종결어미는 두 글자, 네 글자 등 짝수로 끝내는 일을 좋아한다. 가급적 풀어쓰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썼다.


시도 끝에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중간쯤부터는 'Z-A-B-C' 구조의 반복으로 글을 썼다. 이건 내가 마음대로 만든 말이다. 강조하고 싶은 생각 덩어리를 꿀꺽 삼켜 한 문장으로 토해냈다. 그게 Z. 이를 풀어서 앞으로 쭉쭉 밀어 글을 붙여썼다. 그게 A-B-C 등. 뜯어보면 이번 글 또한 'Z-A-B-C' 구조로 쓰고 있다.


도를 닦은 적은 없지만, 이렇게 지긋이 글을 쓰는 게 도를 닦는 일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글을 쓰는 건 유리창을 닦는 일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해보였다. 그런 글을 어느 정도 묵혀두고 다시 보면 어느새 먼지가 가득 내려 앉아있었다. 투덜대며 다시 먼지를 닦다보면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로 다시 태어났다.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달 전에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고쳐야 할 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뻐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한 달 전과 견줘 글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음을 알고 반성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행히 고쳐야 할 게 계속 보였다. 먼저 작업하고 있는 '이론편'을 다시 손보면서 참 많은 부분을 다시 썼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덕에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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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 중 또 하나 얻은 건 경험이었다.


아스팔트보다 단단해보이던 언론 지형에 약간의 생채기는 내보려고 했다. 첫 시도였던 이 연재물이 궤도에 오르자 다른 큰 매체들도 비슷한 주제(문화예술), 비슷한 형식(시의성·기사체·분량제한 없음), 비슷한 출고 시기(매주 토요일 오전)의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과거라면 이런 걸 낼 수 있겠느냐며 지적받을 만한 형식의 기사들이 고개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런 일은 좀 그렇지 않아?" 누군가가 물었다.


"나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 내가 대답했다. 실제로 변화의 바람을 맞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기자협회 또한 이런 흐름을 예의주시한 듯했다. 기자협회보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정성껏 쓰셨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기사가 <헤경·한경·매경, 토요일마다 온라인서 '문화 콘텐츠 대전>이었다. 감사히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중 한 명이 돼 <하룻밤 미술관> 관련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 인터뷰였다. 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었다. 몇 군데에서 강연 요청도 받았다. 다만 아직은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정중히 거절했다.


잠깐 쉼표를 찍는 동안 할 일.


더 나은 길을 고민해야 한다. 신선한 주제, 자금과는 아예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생각해야 한다. 언론판에는 다양한 기자들이 있다. 특종, 기획, 취재원과의 원활한 관계 등 각자가 특화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몇 기자들은 영화 감독 같은 롤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눈길 끄는 영화를 설계하고, 뛰어난 배우들을 뽑고, 잠깐의 텀을 둔 후 흥미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일. 기자 또한 기사의 세계에선 영화 감독처럼 기획과 섭외, 모험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잘되면 흥행이고, 안 되면 심기일전해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인사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면 영화 감독도 탄탄한 마니아가 생기듯, 기자 또한 각 특성에 맞는 탄탄한 마니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드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후암동 미술관 시즌 1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달 뒤부터는 더 풍성한 콘텐츠로 인사 드리겠습니다./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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