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매주, 계속…"100살까지 꼭 쓰셔야합니다!"
에드바르 뭉크는 사랑에 서툴렀다.
뭉크의 첫사랑은 사교계의 유명 인사 헤이베르그 부인이었다. 그녀는 해군 장교를 남편으로 둔 유부녀였다. 즉, 애초부터 열매가 맺어지면 안 될 사이였다. 순진한 뭉크는 그럼에도 바보처럼 헤이베르그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멀어지기만 했다. 촌스러운 이 사내에게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그런 뭉크에게 곧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소꿉친구 당뉘 유엘이었다. 뭉크는 언젠가부터 유엘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길게 내려오는 눈매부터 웃을 때마다 코를 찡긋하는 습관까지 모든 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유엘 또한 뭉크를 택하지 않았다. 유엘이 교제 상대로 정한 이는 뭉크와 유엘, 모두와 가까웠던 친구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였다. 1893년, 서른 살이 된 그해 뭉크는 둘의 결혼 소식까지 듣고 만다. 더는, 더는 사랑 따위 감정에 놀아나지 않겠다…. 그래서 다짐했다. 결혼 따위도 평생 하지 않겠다고.
뭉크는 프시비셰프스키와 유엘이 결혼식을 올린 다음 해 〈마돈나〉를 완성했다. 원래 서양 미술에서 마돈나는 성모 마리아의 별칭이었다. 즉, 순결과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뭉크가 그린 마돈나는 어떤가. 머리 위 붉은 후광부터 심상찮다. 머리칼을 길게 풀어헤친, 상체를 훤히 내보인 그녀는 외려 죽음의 여신 내지 사자처럼 보인다.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끝내 파멸시키고 마는 요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그림은 동시대 사람들은 물론, 지금도 노르웨이 국립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뭉크의 삶, 〈마돈나〉를 그릴 당시 '결정적' 순간을 보면 그 감정은 충격에서 멈추지 않는다. 뜻밖의 여운도 피어난다. 그것은 서글픔 내지 절절함이다. 그 시절 뭉크가 품은 분노와 실망, 좌절과 질투를 오롯이 묻어난다. 이제 〈마돈나〉는 파격적 그림에서 눈물겨운 그림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대가가 그린 명화란 대개 이런 식이다. 그저 볼 때도 강렬하지만, 탄생의 이야기를 알고 보면 여운은 더욱 강하게 전달된다. "알고 보면 명화로 칭해지는 그림은 저마다 밀도 있는 사연을 갖는다. 사랑과 열정, 아니면 희망과 의지, 이 또한 아니라면 광기와 역경으로 빚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명화란 이러한 삶과 순간을 남기고 싶어 만들어진 일종의 결과물인 셈이다." 책 속 문구다.
헤럴드경제 기자인 저자의 책 〈결정적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 몰입감이다.
저자는 뭉크를 포함, 가장 치열하게 세상과 맞선 스물두 명 예술가의 이야기를 각각의 단편 문학처럼 구성했다. 이들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이들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결정적 순간을 특유의 문학적 표현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예술가가 ▷고개 빳빳이 들고 맞선 순간 ▷마음 열어 세상과 마주한 순간 ▷나만의 색깔을 발견한 순간 ▷내일이 없는 듯 사랑에 빠진 순간 ▷삶이 때론 고통임을 받아들인 순간 ▷그럼에도, 힘껏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조명한다. 읽는 것을 넘어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는 듯, 책을 펼치는 일 이상으로 이들의 여정에 발맞춰 걷는 듯한 감정이 들게끔 한다. 이런 가운데 왜 이토록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책은 장편 미술 연재물의 선도물이자 '원조 맛집'으로 통하는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을 뼈대로 삼는다. 아울러 등장하는 예술가의 프로필과 평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넣어 풍부함을 더한 식이다.
구독자 4만여명, 누적 조회수 1500만회 이상의 이 연재물은 2022년 4월부터 2년 넘게 매주 토요일 모습을 보인다. 이후 여러 언론사에서 비슷한 포맷의 연재물을 쏟아내게 된 계기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는다.
기자 생활 중 대부분 기간을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보낸 저자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사건 사고와 선거 등으로 여러 현장을 다녔다. 그 경험을 살려 집요하게 고증하고, 촘촘하게 사실 관계를 따진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의 풍부한 독서량과 문학과 역사, 과학 등 다양한 관심사 또한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독자들 사이에선 200매 원고지 기준 50매를 넘는 글 한 편을 놓고도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건강 관리 잘해서 100살까지 써달라", "길어서 좋다. 다음에는 더 길게 써달라"는 등 반응도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예술가의 삶을 알고, 이들의 결정적 순간까지 알아야 하는가.
저자는 공감을 거론한다. 이들의 각양각색 생생한 삶, 더욱더 생생한 그림을 통해 공감하고, 감동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 (…) 이들의 치열한 삶에 지금 내 삶을 겹쳐보고, 이들의 결정적 순간에 지금 처한 내 순간을 대입할 수도 있다. (…) 이로써 독자분들에게 한층 더 깊은 기쁨과 슬픔, 한 뼘 더 큰 폭의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드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 경험을 연료 삼아 지금의 세상 또한 보다 아름답게, 조금 더 눈물겹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문영규 기자
좋은 글, 좋은 그림을 향해 치열히 항해하겠습니다.
<결정적 그림>의 뼈대가 된 <후암동 미술관> 칼럼은 매주 토요일 오전,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사이트와 '헤럴드경제' 홈페이지를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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