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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Jul 02. 2024

내가 만난 뉴욕의 그림 TOP 10

실물로 본 작품 1위는 바로…


10.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Soir Bleu)> 휘트니 미술관


호퍼는 파리에 오롯이 녹아들지 못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을 피에로에게 빗대 이 그림을 그렸다. 담배를 문 그는 쓸쓸한 듯 자유롭게, 처연한 듯 감미로운 감정에 젖어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피에로뿐 아니라 화폭 속 모든 인물의 눈동자도 빨려 들어갈 것처럼 까맸다. 표정도 어색하고, 동작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호퍼는 개인의 고독을 표현하는 일을 넘어, 모두가 각자의 외딴섬을 갖는다는 걸 되새기게끔 한 게 아닐까. 나도 외롭지만, 너도 외롭지? 사실 우리 모두가 다 그래. 이런 식으로.

9. 오귀스트 르누아르, <여인과 잉꼬(Woman with Parakeet)> 구겐하임 미술관


여인의 이름은 리즈 트레오. 1866년, 르누아르가 스물다섯 살을 맞은 해부터 6년간 그의 그림 20여점에 등장하는 모델이었다. 르누아르의 첫 동거인이었기도 한 트레오는 그가 예술적 지향점을 정립하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국적 외모의 트레오가 이 화가에게 아름다운 인물화를 그리는 데 따른 즐거움을 알려준 것이다. 여담으로 그 시절에는 여성과 잉꼬(앵무새), 새장을 함께 그리는 게 유행이었다. 그것은 여성, 그리고 새장을 벗어날 수 없는 새를 연결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당시 사회적 풍경을 담은 단순한 기록, 나아가 이에 대한 은근한 고발로 읽히곤 했다. 트레오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르누아르와 결별했다. 그녀는 죽기 전 르누아르와 관련한 많은 기록을 직접 파기했으며, 인터뷰 등에도 그를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연예인을 본 기분.

8. 조지아 오키프, <여름날(Summer Days)> 휘트니 미술관


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조지아 오키프는 때때로 사막을 횡단하고, 아예 사막에서 은둔하며 지내기도 했다. 오키프가 사막에서 수집한 물건 중에는 동물 뼈도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꿋꿋한 사이프러스를 보고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했듯, 그녀는 이 뼈를 보고 삶과 죽음을 동시에 떠올렸다. 하얗게 문드러진, 그럼에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뼛조각을 보고 더욱 그런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들꽃. 작열하는 햇빛 아래 꿋꿋이 고개를 든 형형색색의 꽃들 또한 생에 대한 의지 내지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혹자는 동물 뼈와 야생화를 놓고 관계없는 요소의 병치라고 했지만(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보니 두 사물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 짧고도 강렬한 말. 뜨겁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


7.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MoMA


그림 속 크리스티나 올슨은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했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그런 올슨은 어쩌다 들판 위에 있을까. 그녀 의지인지, 누군가의 고약한 악행인지 알 수 없다. 헝클어진 머리, 앙상한 팔, 뒤틀린 두 다리의 올슨은 고개 들어 멀리 집을 보고 있다. 그녀는 그곳으로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실제로 보니 올슨과 집 사이 거리가 훨씬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골 풍경이 강제로 안겨주는 평화감, 무엇보다도 호소력 짙은 올슨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우울 등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 이 모든 게 결과적으로는, 이 그림을 잊지 않게 만든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의도를 두고두고 고민하게 이끈다. "이 그림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 생생함과 통렬함이 같이 버무려져 있다." 미술사가 D. 파이퍼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6.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MoMA


파리로 유학 온 젊은 마르크 샤갈은 그곳에서 수시로 고향 비테프스크를 추억했다. 청어 장수의 아들로 그다지 윤택한 일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고향에선 늘 예술을 볼 수 있었다. 가령 일요일 아침의 노곤한 햇살부터 유대교 예배당 안 사람들, 푸른 채소밭과 근처를 거닐던 야생동물 등 모두 시와 소설의 한 문장 같았다. 샤갈을 들불처럼 번지는 그리움을 품고 이 그림을 작업했다. 화폭 위로 고향의 모든 풍경을 흩뿌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인간과 동물, 즉 샤갈과 비테프스크 사이에 이어지는 얇고도 진한 선이었다. 언뜻 봐선 알아차릴 수 없는 이 실은, 알아차린 순간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마법을 부리는 듯했다. 그것은 언제까지고 그곳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으리라.

5. 아놀드 뵈클린, <죽음의 섬(Isle of the Dead)> MET


뵈클린은 젊은 나이에 자식을 여럿 잃었다. 이 때문에 사신과 자기 모습이 함께 있는 자화상을 그릴 만큼 죽음에 천착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을 안고 살던 뵈클린은 디프테리아로 남편을 잃은 여인의 요청을 받고 죽음의 섬을 그렸다. 사이프러스 숲, 돌무덤이 가득 올라선 섬,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배. 배 위에는 흰 옷을 입은 여인과 흰 포로 덮인 관이 있다. 뒤에선 사자를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뱃사공 카론이 노를 젓는 모습이다. 뵈클린은 이 그림을 그리며 은연 중에 세상을 등진 자식을 또 되새겼을 터였다. 그 사연을 생각하고 그림을 보니 갑자기 주변이 온통 어둠에 내리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가장 처절한 감정에 공감할수 있다는 것. 이 그림, 그리고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지.

4. 빈센트 반 고흐, <룰랭 부인과 그녀의 아기(Madame Roulin and Her Baby)> MET


고흐는 매번 편지를 부쳤다. 그렇기에 우체국장 조셉 룰랭과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고흐와 룰랭은 어느덧 술친구가 될 만큼 친해졌다. 언젠가 고흐는 모델을 뽑을 돈조차 없다고 털어놨고, 룰랭은 기꺼이 온가족이 나서 이젤 앞에 서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고흐가 가장 애착을 갖고 그린 게 '룰랭 부인과 그녀의 아기(마르셀)'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티없이 맑은 눈을 갖는 모든 아기를 사랑했다. 아이들이 갖는 오염되지 않은 일생을 동경했다. 고흐는 하루에도 그럴듯한 그림 몇 점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마르셀의 동그란 토끼눈, 살 오른 고구마처럼 통통한 두 팔을 표현하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이것은 고흐판 대공의 성모였다.

3.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Broadway Boogie-Woogie)> MoMA


엄금진의 몬드리안 교주님도 뉴욕의 주체할 수 없는 활기만큼은 신선했나보다. 검정색 선이 아니면 온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양 호통 쳤던 몬드리안이 노란색 선을 잔뜩 그었다. 그뿐인가. 빨간색, 파란색, 흰색…. 그의 엄격함은 어디 가고, 들뜸을 넘어 경박함까지 느껴질 만큼 작품은 통통 튀었다. 뉴욕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사진은 너무도 많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을까. 상상하게끔 이끄는 힘. 추상화의 매력.   

2. 아그네스 마틴, <산 I(Mountain I)> MoMA


"수도승도 울고 가겠다"는 말을 들을 만큼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마틴은 자기 뜻과 상관없이 침묵과 금욕, 통제를 배워야 했다. 마틴은 언젠가부터 수행하듯 선 한 줄을 그을 때도 가진 모든 힘을 다했고, 또 다른 선 하나를 그을 때도 죽을 힘을 쏟아부었다. 인간의 모든 관념을 모아 약분하면 끝내 남는 건 점과 선밖에 없다는 양, 반복되는 격자무늬 패턴에 일생을 내던졌다. 어느덧 마틴은 백 번 넘는 전기 충격 치료를 받을 만큼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그러고도 선과 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림 그리기만은 놓지 않았다. 이 그림은 마틴이 실종되기 딱 1년 전에 그린 그림이었다. 그녀는 얼마 뒤 사막 한가운데서 사실상 노숙자의 모습으로 발견됐다. 그때도 여전히,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마크 로스코보다도 마틴을 통해 오묘한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1.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The Portrait of Juan de Pareja)> MET


파레하는 세습 노예였다. 어쩌다보니 너무도 유명했던 궁정 화가 밑으로 들어간다. 그의 이름이 벨라스케스였다. 파레하는 얼마 안 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예술이었다. 파레하는 목숨을 걸기로 한다. 그는 어머니 유품을 팔아 화구를 샀다. 주인 몰래 물감을 야금야금 훔쳤다. 그 시절 흑인 노예가 붓질을 하는 건 중죄였다.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파레하는 벨라스케스에게 그의 습작을 들키고 만다. 이제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겠구나…. 눈을 감은 순간, 그림을 뚫어지게 보던 벨라스케스는 종이 위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노예 파레하를 그 신분에서 해방한다. 이제부터는, 나의 정식 조수로 함께 일한다." 그런 벨라스케스가 그린 파레하의 초상화. 그 시절 최고로 잘 나가던 궁정 화가가 기꺼이 그려준, 노예의 초상화였다. 흑인도, 종도, 노예도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옹골찬 긍지를 느낄 수 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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