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변화 1 : 슈즈 트리 논란
4. 변화 1 : 슈즈 트리 논란 (2017. 5~)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한 일도, 더할 나위 없이 혐오스러운 대상도, 나는 이에 대해 즐거움의 동기를 찾기 위해 나 자신을 능란히 강제했다. 예견 못한 절망적인 상태, 적의 매복, 바다 위 폭풍우 등 나는 돌발상황을 환대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예기치 못한 일을 즐기는 데 전념했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정치가 생명체란 말은 민심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경고를 담는다.
하지만 정치는 다른 의미에서 생명체기도 하다. '살아 있어야'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정치 논리 때문이다. 글로, 입으로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려야 그 정치인도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은 부고 기사 말곤 무조건 실려야 좋다란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박원순 시장은 "정치를 잘 몰랐다"는 그 말처럼 무엇보다 정치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달라진 화법만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지금까진 일차원적 문학적인 어투가 그의 말에 대부분을 차지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때의 명예기관사 발언, 추후 더 다뤄질 이른바 옥바라지 사건 때의 '내가 소송을 당해도 좋다'는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알맹이가 없다. 모두 거부하는 명예기관사를 해서 뭘할 것이며, 소송을 당해도 세금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큰데 이 또한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은 그럴듯해도 이는 정치적 계산이 아닌 즉흥적인 토로라는 성격이 강했다. 몇 번이고 그의 시그니처처럼 다시 쓸 수 없는 말이었다. 손무(?~?)가 쓴 손자병법에 따르면 감정적에 앞선 말을 받는 상대방은 처음에는 겁을 먹고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향후에는 그가 이성을 잃을 생각에 불안해하며 원한을 품게 된다. 좋을 게 없는 특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원순 시장은 차츰 말에 세련됨을 더해갔다.
2017년 5월 슈즈트리 비판에 따른 그의 대응과 발언도 인상적이다.
슈즈트리는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높이 17m, 길이 100m의 대형 설치미술 작품으로 넓이 1000㎡에 무게만 15t에 달했다. 서울로 7017 개장에 맞춰 서울역 광장에 전시됐다. 폐신발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킨 업사이클링 작품이라는 게 취지였다.
박원순 시장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거대한 폭포수를 떠올리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일 뿐이었다. 슈즈트리는 순식간에 냄새나는 흉물로 자리매김했다. 기자들은 물론, 서울시 공무원마저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작비만 1억4000만원에, 9일 뒤 철거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비판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슈즈트리 건은 그간 박원순 시장을 둘러싸던 논란과는 구분된다.
그는 무수한 논란에 마주했지만 아군·적군 비율을 얼추 맞는 편이었다. 10명 가운데 5명이 비판했다면 5명은 옹호를 했다는 뜻이다. 뜯어진 구두, 문짝 책상, 목에 건 운동화 등 서민행보가 그랬고 청년수당·친환경급식 등 무상정책들도 그랬다. 한쪽에서 목소리를 내면 최소한 반대편에서도 어떻게든 반박 논리는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슈즈트리의 경우 9명이 비판한다면 겨우 1명이 옹호를 할까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슈즈트리는 명백한 오점이었다. 하지만 이때 박원순 시장 모습은 평소와 반대였다.
그는 외모와 말투, 풍겨나오는 분위기에 따라 첫인상으로 온화함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와 엉겨사는 다수 공무원도 증언하듯, 자기가 옳다는 일이 어긋나는 데 참을 수 없는 불같은 면이 다분하다. 대표적인 게 2016년 5월17일 옥바라지 사건이다. 박원순 시장은 정당 방식으로 재개발 절차가 이뤄지던 무악2구역 옥바라지 골목을 찾아 조합 측이 진행하던 강제퇴거 절차를 막았다. 그는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자를 위한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법 위로 군림한 사례다.
그런 박원순 시장이 이번 건은 참았다. 작가를 기자실에 불러 작품 설명회만 짧게 가졌을 뿐이다. 할 말이 있으면 주말주중 오전오후 상관없이 기자회견도 마다않던 그는 이번 건에 침묵했다. 반박하지 않고 달려들지 않으면서 일을 더 키우지 않으려고 했다. 언론이 연일 박원순 시장과 슈즈트리를 연관시켜 '혈세 낭비' 프레임을 이끌며 그를 공격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입을 떼지 않았다.
스틸리코는 때를 기다렸다. 그의 뒤를 따라 40만명 야만족이 북이탈리아를 메뚜기가 지나간 것처럼 참혹한 꼴로 만드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오직 때를 기다린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 침착성이 그를 로마제국의 마지막 존경받는 장군으로 만들었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저도 놀랐죠. 할 말 따박따박하는 평소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되레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어요."
그의 측근이 한 말이다. 박원순 시장은 할 말이 없어 침묵한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사석에선 슈즈트리를 두고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그 나름대로 바짝 엎드린 채 '노이즈 마케팅'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박원순 시장은 사태가 잠잠해진 후에야 "좋든 싫든 슈즈트리덕에 서울로 7017 홍보가 엄청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맞다. 그 점에 대해선 딱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다.
고건 전 서울시장(1988~1990, 1998~2002년 역임)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2002~2006년 역임)은 아직도 극과 극 서울시장으로 꼽힌다.
고건 전 서울시장의 별명은 행정의 달인이다. 그는 결재문서 하나하나를 세밀히 살펴봤다. 작은 오류, 소소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다. 결백은 행정가의 자존심이었다.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행정보단 정치에 어울리는 행보를 내보였다. 다수의 서울시 고위 공무원에 따르면, 그는 기사에 어떻게든 자기 이름만 나오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아픈 기사라고 해도 "팩트가 70%쯤 되면 그냥 넘어가세요"라며 쿨하게 넘어가는 사람이다. 정말 아픈 기사를 마주한 땐 그 기자를 만나 '살살 좀 해달라'고 장난어린 말을 흘린 이였다.
길 위 보도블럭 깨진 것 하나도 넘어가지 않던 박원순 시장은 그간 고건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명박이었다. 정치 문법을 이해하고 내공을 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의 길을 걷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였다. 정치인 다 됐다는 말이 이어진 것 또한 이런 모습을 본 측근들에게서 흘러나왔다.
그가 상당수 기자·공무원 예상대로 참지 않고 할 말을 여과없이 쏟아냈으면 어땠을까.
초점부터 서울로 7017이 아닌 박원순 시장에게 넘어간다. 그의 야심작에 홍보 효과는 못 거두고 지금보다 그만 더 비판에 두들겨 맞았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