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성장 : 6·13 지방선거
7. 성장 : 6·13 지방선거 (2018. 6~)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줘야 한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리더의 유일한 정의, 그것은 추종자를 거느린 사람이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도덕·종교에서 독립된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책을 통해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덕·종교에 반한다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는 자연스레 마키아벨리스트라고 칭해진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먼저 뺏지 않으면 빼앗긴다. 6·13 지방선거에 앞서 취재 현장에 나서면서 느꼈다. 정치판이 이러한 마키아벨리스트의 집결지다.
많은 이가 이미 지방선거 한참 전부터 박원순 시장의 승리를 점쳤다. 또다시 당선될 시 연달아 3번이나 서울시장에 오르는 형태였다. 4년씩 3번. 역대 최장기간이다. 박원순 시장은 직전까지 말을 아꼈지만 그가 3선에 나서는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시민 지지도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에겐 본선보다 되레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나선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競選)이 더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원순 시장에게 지방선거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 무대였다.
무조건 이긴다. 문제는 얼마나 피를 덜 흘린 채 이기느냐였다. 돌려 말하면 얼마나 큰 폭으로 승리하느냐가 관건인 싸움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마지막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정치 내공, 확실한 이미지를 다진 그의 마지막 아킬레스건은 당내 박원순계 사람이 적다는 점이었다.
친박, 진박, 비박, 반박.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만으로도 수많은 말이 나올 만큼 정치란 계파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 정치인 중 상당수는 대형 종교시설을 간다. 조기축구회와 경로당 잔치에 출석하고, 총동창회 직을 맡아 영향력 있는 회원들을 관리한다. 모두 자기 계파를 신설·유지하기 위해서다. 내공이 높다 한들, 이미지가 확실하다 한들 자기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 1인 1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선 결국 자기편을 만드는 것만큼 정치에서 중요한 건 없다.
박원순 시장은 그런 면에서 취약했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슈퍼스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더불어민주당 내 인사들과는 크게 인연이 없는 상태였다. 당내에선 박원순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건재하던 시절, 말 그대로 국회에서 바짝 엎드린 채 생활하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인사들의 서러움을 모른다는 평가만 오갔다. 대선을 염두에 두던 때 당시 문재인 전 대표를 적폐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며 문재인계, 즉 당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친문(親文)에게 미운털만 박힌 상태였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참전하지 않는, 그보다는 도령으로 서울시청에만 머무는 이미지였다.
반면 당원 입장에선 경선 맞수인 박영선·우상호 의원은 평가야 어떻든 적어도 힘든 순간을 함께 지낸 동료이긴 했다. 박원순 시장도 어느 파에 속해 있느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나는 시민파'라고 대답했다. 시민이란 정치 아닌 비(非)정치의 세계다. 그 자신도 정치판에서는 기댈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농이었다.
올 초부터 박원순 시장이 분주히 당원을 만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디서든 아웃사이더 선에 있던 이다. 기여한 바 없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그간 당에 이렇다 할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문재인 전 대표를 (적폐라고 칭한) 내 말은 내 오판이었다"며 오직 당 입지를 다지고자 자존심을 접어두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치인이 다 된 박원순 시장 또한 영락없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박원순 시장의 노력이 먹힌 것은 경선 결과로 알 수 있다.
당시 기자들은 우상호 의원을 주목했다. 차기 서울시장으로 청와대가 점쳤다는 소문이 퍼진 데 따라서다. 많은 이가 이변은 없었다고 보는 경선 결과에 기자들이 유독 놀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박원순 시장 66.26%, 박영선 의원 19.59%, 우상호 의원 14.14%였다. 박 시장은 그 자신도 희망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던 지지율 60%를 넘겼다. 3선 피로감, 대선 불출마 요구, 미세먼지ㆍ부동산 책임론 등 논란을 이긴 압승이다.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궁여지책(窮餘之策) 끝에 미세먼지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며 내건 '마스크 시장'이란 별명도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기자 입장에서 올해 6·13 지방선거는 선거 역사상 손꼽을 만큼 재미없는 경기였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 박원순 시장의 적수는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 등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압도적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승리를 점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선에서 당원 지지도를 확인했다. 66.26%의 높은 득표율이 알려주듯, 당원들은 그를 최소한 상종조차 하지 않을 관계로 보는 건 아니었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 있게 당내 기반 굳히기에 돌입한다.
그가 전쟁터에 나서기 전 준비한 건 역대급 규모의 선거 캠프였다.
지난 2014년 재선 도전 당시 '나홀로·조용한·소규모'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더불어·대규모·압도적'이 키워드로 180도 달라졌다. 선거 핵심 슬로건은 '시대와 나란히·시민과 나란히'였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지금 그 시대에 발맞춰 자신을 뽑아달라는 뜻이었다. 경선 맞수였던 박영선·우상호 의원 등 국회의원 40여 명도 캠프 주요 직책을 도맡았다. 웬만한 대선후보 캠프 급으로 460여 명 규모 조직을 창설했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을 더불어민주당의 야전 사령관으로 칭하며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2014년을 떠올리면 상상 못 할 행보다. 그는 당시 홀로 배낭을 메고 골목을 누비며 시민을 만났다. 선거대책위원장도 따로 두지 않던 상태였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평소 당과 동떨어진 자기 이미지를 벗고자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유세 일정도 독특했다. 더불어 승리라는 주제 아래 서울 25곳 자치구청장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과 함께 서울 곳곳을 다녔다. 오전 정순균 강남구청장 후보와 강남구를 돈다면 오후에는 유성훈 금천구청장 후보와 함께 금천구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이다. 이런 포맷으로 서울 25곳 자치구를 수차례 돌았다. 선거 활동, 여유 있는 중진급 당 인사가 즐기는 지원 유세를 함께 펼칠 수 있으니 지지력 상승, 당 기반 확장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형태였다. 지금 그가 행하기에 최적의 전략으로 평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쟁에서 사라졌다 한들, 당시 박원순 시장 인기는 무슨 수를 써도 지지율 5%가 안 된 2016년 말과 지난해 초와는 비교가 안 되는 상태였다. 경기지사를 지낸 김문수,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등 정치경력에선 박원순 시장보다 못할 게 없는 두 후보가 점차 2등 싸움으로 내몰리는 듯했다.
이변은 없었다.
결국 경선만큼 본선도 압승으로 마무리를 했다. 지지율은 52.8%다. 김문수·안철수 후보 지지율을 더한 값보다 크다. 서울 25곳 자치구 중 서초구를 뺀 24곳 구청장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그의 당선을 두고 460여 명 규모 선거캠프가 들썩였다. 박원순 시장은 당선만큼 아킬레스건인 박원순계가 없다는 말에서 벗어나게 될 기회를 얻었다는 데 기뻐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