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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가벼움과 무거움≫ #6.

⑥활용 : 미세먼지 저감조치

by 이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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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활용 : 미세먼지 저감조치 (2018. 1~)


단 한 번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만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큰 충격이 우리를 늘 전진하게 하게 한다.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박원순 시장에게 슈즈트리 사건, 공무원 자살 후 국정감사는 각각 내공 쌓기와 입체적 이미지 쌓기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논란은 그가 모은 두 무기를 시험하던 때로 정리 가능하다.


서울시장 재출마를 기정사실로 한 박원순 시장은 6·13 지방선거가 예정된 해가 밝자마자 논란에 휩싸인다. 지금도 150억 원 혈세 낭비로 언급되는 그 기간이다.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서울시내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고자 서울시가 시행하는 조치다.


차량 2부제 권장, 사업·공사장 단축운영 등 내용이 많지만 그 중 핵심은 출·퇴근 시간 서울 대중교통 이용요금 면제였다. 승용차 이용자를 대중교통으로 끌어들여 오염물질 발생량을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그 금액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밝힌 하루 충당 비용은 50억 원 정도였다. 세금을 쏟아붓는 선심성 정책으로 비판받기 딱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 그간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어 기자들도 묻어두고 있던 건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15일 첫 저감조치가 발령되고 만다. 짙은 먼지가 하늘을 뒤덮을 때였다. 이날 출·퇴근 시간 서울 대중교통 이용요금 면제도 처음 시행됐다.


선심성 정책이란 말이 기다렸다는 듯 터졌다. 6·13 지방선거가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기 끌기 용 모략이 아니냐는 지적이 거셌다. 혈세 낭비 말곤 달라진 게 없다는 항의도 이어졌다. 15일에 이어 17·18일에도 저감조치가 발령됐다. 박원순 시장이 본 한 해 발령 횟수는 7회였다. 그중 절반 가까운 횟수가 일주일 만에 터지면서 불안감은 높아졌다. 아직 미세먼지 절정기로 칭해지는 3·4월은 오지도 않은 시기였다.


그 기간 서울시는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현황 통계를 기자에게 알리는 등 조치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걸 서울시가 인증한 꼴밖에 되지 못했다. 실제로 이에 따른 감소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승용차 이용자를 대중교통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사실상 실패했다. 나흘 만에 혈세 150억 원을 날렸다는 말만 나돌았다.


칼끝은 박원순 시장을 향해 움직였다.


박원순 시장은 논란이 거센 시간에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슈즈트리 때와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50억 원을 날렸다는 비판 기사를 접한 그 날 TV, 라디오와 현장을 넘나들며 유·무효 한 말로 정책을 대변했을 사람이다. 그간 수많은 행정가가 논란 직후 홧김에 뱉은 말로 궁지에 내몰렸다. 대개 행정가는 일종의 결벽증이 있어 작은 흠집을 내기도 못 견디는 법이다. 그 또한 이 공식에 따랐다면 누군가가 그 말을 되받아 논란을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반대 진영에선 박원순 시장의 실언을 고대했다. 제대로 붙었다면 신문 1면을 장식했을 사안이다. 물론 박원순 시장 입장에서 유쾌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슈즈트리 사건에서 보여줬듯, 이젠 정치인을 흉내 내는 행정가에서 한 단계 성장한 상태였다. 그는 또 참았다. 움직임을 최대한 줄였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켜지 않았다. 본부장급 고위 공무원을 기자회견에 대신 보내면서 천천히 논리를 연구하고 가다듬었다.


그는 일 많이 하는 리더라는 이미지를 십분 되살린다.


결과야 어찌 됐든 미세먼지 사태를 대비해 일한 선구자란 인상을 낚아채기 위해서다. 당시로는 그 길 말곤 재기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박원순 시장은 1월 21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던 어느 휴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일 좀 하게 놔둬라'로 풀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일요일인 이날 기다렸다는 듯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도 모른 예정 없던 공지였다. 이 일정은 당일 오전에야 전해졌다. 이런 행동부터 '휴일에도 일한다'는 뜻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듯했다.


그는 서울시가 이런 조치라도 만들 동안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뭘 했느냐는 식의 말을 꺼냈다. 이런 논란 덕에 미세먼지의 심각성도 더욱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또 저감조치로 150억 원이 아닌 200억~300억 원도 쓸 수 있다며 시민 건강을 위해 일하는 이미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차량 강제 2부제를 서울 전역 민간차량으로 넓힌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고민을 멈추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내보였다.


그러고는 다음 달인 2월 28일 화룡점정을 찍는다.


끝없이 대변하고 옹호하던 저감조치에 따른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삭제하면서다.


대부분 기자는 3~4월 미세먼지가 짙어지기 전 논란이 있기에 앞서 스리슬쩍 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봤다. 이때 나온 표현이 압권이다. 박원순 시장은 '마중물' 역할을 다했다는 말로 이 정책을 철회한다. 마중물이란 '물을 끌어 올리고자 위에서 붓는 물'을 말한다. 대중교통 무료정책은 애초 미세먼지 문제 공론화를 끌어내려는 의도도 있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했기에 철회한다는 말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이런 화법에선 숱한 고민 흔적이 보인다.


그는 '-100보다는 -20이 낫지 않느냐'는 식의 말로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칭찬할 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것 또한 딱히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사실 박원순 시장의 '이렇게 하진 않았지만, 저렇게 되진 않았지 않느냐'는 '-100보다는 -20' 화법은 과거에도 그를 수차례 살린 기술이다. 서울시장으로 성과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이 화법을 통해 상황을 빠져나간 적이 많다. 청계천 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소 등 큰 업적은 없지만 우면산 산사태 등 일은 재발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질문자가 그건 맞는 말이지만…이라고 하는 순간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의미 있는' 일로 포장한 수많은 성과를 읊는 식이다. 다만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에서, 가장 많은 이가 관심 두는 논란에서 이 화법을 통해 정면돌파를 시도한 적은 거의 없었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저감조치는 큰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는 미세먼지가 짙어지기에 앞서 '어떤 일이든' 한 것은 맞다. 측정할 수 있지는 않지만 150억 원 혈세 논란으로 인해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더 알려진 것 또한 어느 정도 사실이다. 공론화에 성공했으니 그가 말한 마중물 역할을 해낸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 참다 적당한 때 그의 이미지에 맞는 화법으로 정면돌파에 나선다. 궁지에 몰렸다고 평가받던 그는 마중물이란 말을 나름대로 히트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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