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원순, 가벼움과 무거움≫ #10.

⑩ 한계? 발판? : 고용세습

by 이원율
고용세습.jpg


10. 한계? 발판? : 고용세습 (2018. 10~)


사람이란 한순간 모이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무도 없기도 하다. 마치 약속 주기가 없는 밀물과 썰물 같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정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덕 중 하나는 우정이다.


6·13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박원순계를 다진 듯 보였지만, 박원순 시장이 아직 그들을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된 데는 실패한 것 아니냐는 말이 차츰 돌고 있다.


리더십이 한 철에 불과했느냐는 지적이다.


아직 표면상 확실히 드러난 점은 없다.


하지만 이번 고용세습 국정조사 건은 그가 공들여 맞섰던 ▷박원순계가 없다는 말을 다시 새어 나오게 할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여의도·용산 통개발 번복으로 정치력 부재를 되살린 점 ▷강북 한 달살이 후유증으로 이미지 입체화에 또다시 암초를 만난 점 등보다 더 치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야(野) 4당이 요구한 고용세습 국정조사를 전격 수용했다.


국정감사 도중 서울교통공사에서 고용세습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인 데 따른 조치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감독 태만, 묵인 의혹 등 십자포화를 맞아야만 했다. 이번 국정조사가 박원순 청문회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국회 난맥상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같은 당 소속인 박원순 시장을 보다 강도 높게 보호할 수 있다. 이들은 그 대신 그를 정글 속에 풀어두는 방안을 선택했다.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이 좀 더 버텨주길 바랐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당연히 그래 줄 것을 기대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6·13 지방선거 이후 당내 그의 입지가 탄탄해진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정조사 승인 직전 민주당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 측이 최고위원 회의 때 (고용세습) 국정조사를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말해줄 지도부를 찾는다"며 "요청 사항도 박 시장 측이 직접 만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박원순 시장 측이 최근 당 지도부 의원실로 이 내용을 전달했지만, 대부분이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시장의 최측근인 박홍근 의원은 국정조사가 이뤄지는 데 대해 "참으로 유감이고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대선 박원순을 외치던 이들 상당수는 왜 불과 5개월도 안 돼 고개를 돌렸을까.


박원순 시장 측은 "괜한 정치적 공방이 만들어지는 것을 우려, 우리가 느낀 문제의식을 당내 의원에게 설명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지도부 상당수가 그의 요청을 직·간접적으로 거부했다는 데는 달라지는 바가 없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분석만 이뤄질 뿐이다.


가장 유력한 안은 박원순 시장이 최근 정부·여당이 노동계를 멀리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한국노총 행사에 나서 '나는 노동 친화적인 인물'이라고 말한 데 따른 괘씸죄라는 설이다. 당원들은 지금 상황에 맞춰 정부와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등 말을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나는 노동 존중 특별시장"이라는 정부·여당과는 차별되는 말과 함께 "오늘 정치인이 아무도 안 보인다"는 면박성 발언을 던질 뿐이었다. 당원들은 한순간에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이로 전락했다. 박원순 시장이 그런 당원들을 밟고 차별화를 시도하며 지지율을 올리려는 모습으로 보여, 마냥 좋게 평가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당내에서 한솥밥 프레임에 속할까 싶더니, 스스로 기회를 외면하는 모습이다.


기자들은 그런 그를 두고 대권을 노린 자기 정치 혹은 홀로서기에 나섰다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다시 지지층 확장을 시도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기로에 서 있다. 더 이상 뒷걸음질은 전진의 동력마저 잃게 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가 무리하지 않고 지지층을 확장할 기회를 얼마든지 마주했다.


지난 9월 재발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그랬다.


박원순 시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 메르스 방역대책본부장을 자청하며 1등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경험을 한 바 있다. 그 경험을 되살려 차분히 수습에 나섰다면 그는 지지율이 반등하는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요일인 늦은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정부 대응 방안에 대해 답답함을 표하는 등 물 만난 고기처럼 힘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지적을 못 피했다. 의욕에 넘쳐 정부와 충분히 논의 없이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며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박원순 시장의 활약은 이런 논란 속에 빛이 바래졌다.


그에게 필요한 건 조바심이 아닌 차분함이다. 가벼움이 아닌 무거움을 키워 정치·행정판의 어른으로 자리매김할 때다. 목적 없이 진심 어린 마음에서 서울시정을 이끌어갈 때, 여론은 그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다.


이번 국정조사 과정이 마지막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 당시 '뭘 해도 안 되던' 때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치밀히 고민해야 할 때다.


박원순 시장이 실언 없이 차분히 대처에 성공하면, 야당은 물론 이를 예산심사와 거래한 여당 내 목소리도 약해진다. 대권 주자로 맷집을 키우는 건 물론 또다시 당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원순, 가벼움과 무거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