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가벼움과 무거움≫ #9.

⑨회기 : 강북구 옥탑방

by 이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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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기 : 강북구 옥탑방 (2018. 7~)


좋은 계획에서 군주의 분별이 나오지 않는다. 군주의 분별에서 좋은 계획이 나온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또 서민 행보. 박원순 시장이 강북구 삼양동의 한 옥탑방에 한 달간 산다는 이야기가 퍼졌을 때 나온 목소리다.

그 나름대로는 파격적인 일로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한계도 뚜렷한 행보였다. 고생 끝에 알린 '일 중독자'란 중립적인 이미지를 팽개치고 또다시 서민 흉내라는 일차원적 이미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박원순 시장과 강난희 여사는 지난 7월 22일 옥탑방살이에 돌입했다. 강남·북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껴보겠다는 취지였다. 기록적인 폭염 속 그는 부채와 선풍기로 한 달을 꼬박 살았다. 박원순 시장은 옥좌에서 내려온 유력자의 가슴 따뜻한 인간극장 여정이 그려지길 기대했던 것 같다.


효과가 없었다곤 할 수 없다. 그의 행보는 찬성, 반대 측의 팽팽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진정 서민 체험을 하고 싶다면 한 달 아닌 임기 내내 옥탑방에서 살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 박원순 시장은 "코스프레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발 벗고 나선 단체장은 없었다"고 되받아치는 형태였다. 언론은 연일 그를 주목했다. 박원순 시장이 슈즈트리 건을 두고 밝힌 '어쨌든, 대중에게 알려지진 않았느냐'는 철학과도 맞는 형태였다.


그의 행보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그는 잘해봐야 본전인 싸움을 하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한 달간 행보를 택하면서 그 스스로 이미지의 확장을 포기했다. 물론 그는 옥탑방살이로 인해 '일 많이 하는' 이미지를 굳히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그리 고차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여론은 단순한 생명체다. 여론은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만 바라본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키워드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이다.


박원순 시장은 ▷청렴한 서민이자 ▷문제해결을 위해 현장으로 직접 뛰어드는 일 열심히 행정가이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을 한 혁신가 등 이미지를 선명히 만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달 뒤 그에게 남은 선명한 이미지는 서민 행세뿐이었다.


이마저도 온전하지 않다.


이를 위해 자기 돈이 아닌 예산으로 278여만 원을 쓴 점, 비서관 두어 명이 옆 방에 기거한 점, 공무원이 그가 먹기 위한 식사를 직접 배달한 점, 한 달간 16회에 걸쳐 경찰 528명(중복 포함)이 옥탑방이 배치된 점 등이 줄줄이 확인되면서다. 반발을 무릅쓰고 승부를 던졌다면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는 기자들도 두 손 들 정도로 섬세함에 승부를 걸어야만 했다. 이를 제대로 챙겼다곤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진 구두, 문짝 테이블 등 서민 이미지가 생길 무렵 논란이 된 역사도 함께 조명되는 등 난처한 일도 발생했다.


박원순 시장이 강북구의 전통시장을 둘러볼 때, 끝까지 따라붙으면서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재밌는 내용을 많이 보고 있다고만 할 뿐 구체적인 말은 생략했다.


그런 뒤 일주일 후 그가 내놓은 계획에는 온갖 인프라 구축안이 가득했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딜레마에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온갖 논란 속에서 한 달을 살았다.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후기를 내놓아야 한다. 결국 피부에 와닿는 건 철도 조기 착공,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급 등 개발 정책밖에 없다. 이는 개발을 멀리하겠다는 평소 그의 철학을 밀어두는 행보기도 하다.


최악의 경우 어설픈 서민행세 끝 어설픈 개발계획을 내놓은 모습으로 비친다. 서민도, 소위 말하는 개발론자도 감동하게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놓일 가능성도 컸다. 파격적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기자들은 예산 조달 방법, 사업 착공 시기 등 일부 미심쩍은 부분들을 후벼팠다. 또 이 계획은 그의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과 함께 이번에는 강북 부동산을 들썩이는 재료가 돼버렸다.


로마 군단병이 적의 기습에 허가 찔리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적지로 들어갈 때 그들은 가장 먼저 맞서 싸우지 않고 견고한 숙영지를 건설했다. 병사들은 여차해도 도망칠 곳이 있다는 데 안심했다. 용맹히 싸우고 지더라도 숙영지로 피해 공포에서 해방된 상태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차라리 숨을 더 골랐다면 어땠을까.


3선 기반을 다지면서 숨을 고르면서, 준비 기간을 더 길게 두는 등 다른 접근법을 택했으면 상황도 달라졌을까.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 당시 박원순 시장의 행보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핵심은 진정성이다.


그의 행보가 논란이 된 근본 이유였다. 진정성은 한 번에 빚어지지 않는다. 먼 미래를 보고 차곡차곡 그려가야만 형태가 갖춰지는 부분이다. 휠체어 체험을 한다 해도 고작 하루, 옥탑방에 산다 해도 고작 한 달이다. 박원순 시장이 짧은 기간 벼락치기를 선택하지 않고 틈틈이, 하지만 꾸준히 이 일을 행했다면 지금과는 평가가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민되는 까닭이다. 물론 언론에는 한참 후에 조명되며, 성과 또한 한참 뒤에 윤곽이 드러났을 테다. 하지만 이런 일이 조금 늦지만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알려졌을 때 이를 두고 서민 행세라고 비판할 이가 있을까. 서민 마음을 아는, 일 열심히 하는 시장이란 이미지 앞에 '진정성이 담긴'이란 키워드도 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은 모든 현실을 보지 않는다. 주로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박원순 시장은 올 겨울로 예상됐던 금천구 한 달살이를 미루기로 했다.


이 또한 강북구 한 달살이 이후 현안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데 따른 후유증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측근은 "박 시장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쇼'라는 비판이 많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의도가 곧이곧대로 전달될 수 있는 시점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에 이은 두 번째 번복이다.


또다시 이미지 쇄신에도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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