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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2. 2021

『하룻밤 미술관』 : 교보문고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술관이 될 수 있기를”

Photo by HM:)


『하룻밤 미술관』이원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술관이 될 수 있기를”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든 무더운 날씨에,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가 제안한 방법은 바로 이불 속 미술관 산책. 침대에 엎드려 책 한 권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환상적인 미술 여행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직업이 정치사회부 기자……? 마치 취재하듯이 낱낱이 화가와 명화를 파헤쳐 독자에게 신선한 재미를 전달하겠다는 《헤럴드 경제》의 기자이자 『하룻밤 미술관』의 저자인 이원율 작가를 만나봤다.


<내 생애 첫 미술책>이라는 연재글이 제8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하룻밤 미술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기까지,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고백하자면, 책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가족과 같은 정말 가까운 사이를 빼고는 출간 소식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무척 감사한 일이었는데도, 알릴 수 없었어요. 정말 내 글들이 책으로 출간되는 게 맞을까.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을 수십 번을 읽고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내 생애 첫 미술책>의 브런치북 대상 수상과 책 출간은 저에게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때가 있었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버킷리스트」가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를 본 후, 18살짜리 소년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로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놀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기’ 등과 함께 노트 한쪽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책 쓰기. 가급적이면, 30살 안에.’ 책을 좋아하던 소년의 밑도 끝도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책 출간의 기회를 안겨주는 수상 소식을 들은 그때가 바로 만 29세, 맞아요, 저도 제가 유리할 때만 만 나이를 씁니다. 여튼 만 30살이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성장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소년 시절의 바람을 이룬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드라마 같은 일이었습니다. 


2020년 한 해는 제 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였습니다.


“나는 2020년을 한 번 더 겪으라고 하면, 차라리 군대에 다시 가겠다고 할 거야. 정말로.” 그래도 군대에서 축구하던 때보다는 낫지 않았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만큼, 긴 터널의 시간이었지요. 브런치와 저를 출판의 세계로 이끌어준 다산북스 덕분에 2020년의 끝자락쯤 터널에서 벗어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정치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미술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궁금하고요.


첫 미술 글을 8년 전에 썼습니다.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여덟 단락짜리 메모였습니다.


그 당시 반쯤 백수였던 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와 피터 웨버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연달아 감상했습니다. ‘나도 이 그림을 놓고 글 하나 정도는 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미술 작품 해설에 대한 첫 글을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꼈지요.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 생각보다 더 즐겁고, 그 그림을 촘촘히 글로 묘사하는 일 또한 상당히 재밌다는 점에 대해서요. 감사히도 읽는 분들의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미술 비전공자였기에 더 엉뚱히 해석하곤 했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적어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미술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현재는 사회부 기자로 3년, 정치부 기자로 3년째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 네가 쓴 거 맞아?”라는 질문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마에 ‘내가 쓴 것 맞음’이라고 붙이고 다닐까 고민했습니다. 유력 정치인의 행보를 쫓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줄 법안을 취재해 기사를 쓰는 게 공식적인 제 일입니다. 그렇게 또 기삿거리를 찾고 있던 시절,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만약 ‘기자’라는 명함을 떼면 나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었지요. 탁구 마니아나 달리기 애호가 정도로는 부족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익숙한 일은 글쓰기였고, 가장 신나게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문화 예술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자가 아닌 또 다른 명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새로운 계획을 짜게 됐지요.  


‘내 생애 첫 미술책’이 이 책을 관통하는 컨셉이라고 알고 있는데, 특별히 미술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글이 쉽고 재밌어요. 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분을 대상으로 쓴 책이 가져야 할 핵심 조건이겠지요.


제 직업병입니다. 몰티즈는 짜증을 참지 않고, 저는 어려운 표현을 참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은 어떻게든 잡아내 책 밖으로 훠이훠이 쫓아냈습니다. 그들만이 아는 전문 용어들도 최대한 기를 죽였습니다. 이불 속에서 막힘없이, 하룻밤 동안 미술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으로 만들고자 힘을 쏟았습니다. 


글은 쉽지만, 내용은 풍부합니다. 미술에 일단 발만 살짝 담그고 싶었는데, 읽다 보면 어느새 미술에 진심이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사람들이 고생했다더라, 빈센트 반 고흐와 이중섭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더라, 폴 세잔은 정물화를 기가 막히게 그렸다더라…… 다른 미술 교양 서적이 다루는 이야기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더해, 다빈치가 실은 요리에 대한 샘솟는 자신감을 내뿜어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것, 반 고흐와 이중섭은 불행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이어갔다는 것, 세잔은 그만의 ‘비법’을 갈고 닦은 끝에 ‘금손’을 얻게 됐다는 것 등 다른 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취재를 해 건져냈고, 여러 차례 검증하며 풀어낸 내용입니다.

 

아울러 이 책은 옴니버스(omnibus)식 문학의 느낌도 갖고 있습니다. 이 또한 다른 책과 차별화된 점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이 아니라, 즐기는 마음으로 책 속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엮어내고 싶었습니다. 아예 어떤 에피소드는 작정하고 단편소설처럼 꾸미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생한 기사를 쓸 때 활용하는 네러티브(narrative)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방식을 차용한 결과입니다.  


Photo by HM:)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화가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특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있다면 더욱 궁금합니다.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프랑스 파리 그림들을 각별히 봅니다. 사실 나이와 기분, 상황에 따라 애정하는 화가와 작품이 휙휙 바뀌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위트릴로가 워낙 순수하게 붓질을 해서인지, 그의 작품만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위트릴로의 그림에는 자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잘 그려야겠다’라는 조바심도 묻어나질 않습니다. 그저 좋아서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위트릴로는 빈센트 반 고흐만큼이나 절박한 삶을 산 화가였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기쁠 때는 차분함을 떠올리게 하고, 슬플 때는 이를 견딜 힘을 전해줍니다. 


그런가 하면, 제 마음의 문을 처음 연 그림은 앞서 언급한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습니다. 소녀의 표정과 자세부터 귀에 박힌 진주까지, 모든 게 수수께끼처럼 다가왔습니다. 제가 휙 넘기지 않은 첫 그림이었지요. 한때 휴대폰의 배경화면으로 둘 만큼 푹 빠졌습니다. 저에게 ‘미술 글을 쓰고 싶다’란 생각을 들게 한 첫 그림이었지요.  


모네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그의 사연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더 멋진 그림을, 온전히, 그려내고 싶어 성치 않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을 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져오는 것도 같고요. 모네가 앓은 그 병 때문에, 그의 작품이 추상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에게 백내장이라는 병은 결국 그의 작품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될까요? 


클로드 모네는 평생 빛을 연구했습니다. 젊었을 땐 자연의 변화에 따른 빛을 연구했고, 늙었을 땐 그의 뜻과 상관없이 망막의 변화에 따른 빛을 연구한 삶을 살았지요. 평생을 우직하게 빛과 그림을 탐구했던 사람이었기에, 백내장이라는 병마저도 그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모네를 다룬 코너에서 쓴 '백내장이여, 너 또한 축복이었구나'라는 제목처럼요. 결과적으로 그는 이 덕분에,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미술계에서 신항로를 열었으니까요. 


모네의 정확한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때로는 자신의 흐려지는 망막을 즐기기도 했다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가 백내장에 걸린 상태에서 그린 몇몇 작품에는 그가 전에 그린 그림보다 더욱 강한 ‘들뜸’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네가 자신에게 드리워진 백내장을 오롯이 인정하기까지는 알게 모르게 깊은 속앓이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념의 화신이던 그의 의지가 결국 백내장마저 무릎 꿇게 했다고 봅니다. 더 정확히는, 되레 탄복을 시켰다고 봅니다.  


이 책에서 특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다른 데서는 잘 듣거나 볼 수 없었던 화가나 명화 이야기가 있다면요? 


윌리엄 터너의 작품 「노예선」을 다룬 코너도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얼핏 보면 그저 아름답게 비치는 이 작품의 반전 이야기를 품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영국의 국민 화가가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평소 여러 일상에 밀린 탓에 깊게 사유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울러 이 코너는 그림을 더 선명하게, 내막을 보다 충격적으로 전해드리고자 처음부터 끝까지 단편소설로 풀어냈습니다.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도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여긴 진짜 첫 작품, 폴 고갱의 실체(?), 나치의 이인자를 속여먹은 위작 화가의 정체 등을 다룬 글도 흥미롭습니다. 또 영화와 CF 등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감성을 품은 분이 있다면, 빌헬름 하메르스회를 다룬 코너를 더욱 인상 깊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인 아내와 두 형제를 일본으로 보낸 뒤 매일을 외로움으로 보냈던 이중섭 화가의 생을 그려보면 너무나 애절하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평론가들로부터 받은 악평, 후배의 배신과 늘어난 빚 등……. 우리가 이 화가에 대해 좀 더 주목해보면 좋을 지점이 있을까요? 


이중섭을 좋아하신다면, 언젠가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볼 기회를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살뜰히 편지를 썼지요. 우리나라 화가 이중섭은 가족에게 웬만한 문학보다 더 절절한 편지를 다수 남겼습니다. 진지하게 이중섭의 편지를 뼈대로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 적 있습니다.


이중섭은 숱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가족에게 쓴 편지에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아내 남덕을 향해선 다시 만나길 기다리겠다고, 두 아들을 놓고는 꼭 자전거를 사줄 것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그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가 생을 버텨온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시기에 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욕심 같아선, 분량만 허락이 됐다면 제 책에도 이중섭의 편지를 더 많이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Photo by HM:)


이 책에서 미처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또 소개하고 싶은 화가나 작품이 있으신지요? 


기회가 된다면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의 불꽃 튀는 라이벌전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고상했던 마티스와 자유분방했던 피카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랐습니다. 그런 두 거장이 평생 서로를 질투하고, 뒤돌아선 흠모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예술계 거물의 총애를 받기 위한 경쟁, 한 여인을 놓고 벌인 신경전 등 일화도 넘칩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주의 깊게 마티스의 그림을 봤고, 마티스는 누구보다 더 주의 깊게 내 작품을 봤다”라는 피카소의 말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 같습니다.


작품으로는 에드워드 호퍼의 「자동판매기 식당」, 「밤샘하는 사람들」, 「창밖을 보는 여인」 등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오면 좋겠습니다. 호퍼는 무거운 추가 가슴을 여러 번 쓸고 내려갈 때,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나 아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이 위에 그려냈습니다. 이에 따라 각 그림은 저마다의 노래 한 곡, 소설 한 권, 영화 한 편을 품게 됐지요. 기회가 되면 그런 밀도 높은 그림들도 찬찬히 알려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 책의 쓰임이나 바람이 있다면 함께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이 책을 펼쳐보시는 분께 ‘제대로 된’ 진짜 생애 첫 미술책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아울러 더운 날씨와 꺾일 줄 모르는 코로나19로 인해 미술관은커녕 집 밖을 나가기도 부담스러운 분이 있다면, 이 책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술관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하룻밤 미술관』은 오늘 밤도 문을 활짝 열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제 이불 속에서 미술 작품을 마음껏 둘러보셔요.


<원문 링크>

http://news.kyobobook.co.kr/people/interviewView.ink?sntn_id=15444&orderclick=Q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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