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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1. 2021

『하룻밤 미술관』 : 맛보기용 샘플 꺼내 먹어요

미공개 원고 : 모비딕이 왜 거기서 나와…?

   책 『하룻밤 미술관』 출판 기념으로, 책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미공개의 짧은 쪽글을 날것 그대로 꺼내 봅니다. 


   책 속 15번째 코너,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1775~1851)를 다룬 글의 연장선입니다. 아래 소개할 이야기는 윌리엄 터너의 그림 <눈보라>를 보고, 허먼 멜빌의 장편 소설  <모비딕(Moby-Dick)>의 한 장면을 상상한 것입니다. 다만, 책 속 터너의 작품 <노예선>과 함께 담긴 단편 소설 <한없이 잔인하게, 한없이 아름답게>와 달리, 이번 브런치에 담긴 글에는 역사적 사실이 1g도 없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팬심이 담긴, 오직 제 상상을 기반으로 한 스핀오프(spin-off) 격이라는 점을 재차 말씀 드립니다. 원작을 인상 깊게 보신 분이라면 책 속 분위기대로, 원작을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거대 고래라는 숙적을 마주한 뱃사람의 이야기'를 뼈대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터너가 어떤 화가였는지, 그가 세상 예쁜 것들 중 왜 굳이 바다 위 아슬하게 뜬 배를 그렸는지 흥미가 생기신다면, 오늘 밤에도 문을 여는 『하룻밤 미술관』이 충격적인 이유를 알려드립니다(두둥!).  아울러 평소 미술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품으셨다면- 이토록 외출이 꺼려지는 나날, 안전한 이불 속에 누워 마음껏 미술관을 둘러보세요.




윌리엄 터너, 눈보라

   성난 파도가 뱃머리를 두들겼다.


   겨우 눈을 뜬 스타벅은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세찬 물 폭탄에 또 눈을 감아야 했다. 하나, 둘, 셋. 다시 눈을 떠도 똑같았다. 악마의 목구멍이 달을 통째로 삼킨 듯했다. 희미한 빛을 내던 별조차도 모두 도망쳤다. 오직 암흑뿐이었다. 스타벅은 노련한 일등 항해사였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사람의 공포감을 몇 배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아는 베테랑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맥박은 도저히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경험이 가르쳐준 생존술이었다. 물리적 통증으로 심리적 통증을 잊는 것이다. 그는 단검을 꺼내 팔꿈치에 댔다. 인제야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스타벅의 머리 위로 몇 차례 번개가 쳤다. 아주 잠깐, 망망대해를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가 그때 본 것은 하늘 같은 바다, 바다 같은 하늘이었다.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천장은 바닥이 됐고, 바닥은 천장이 됐다. 양쪽 뺨을 때려대는 이 물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지, 바다에서 솟구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심판…. 늙다리 퇴직 선원들에게나 듣던 그 말이 퍼뜩 떠올랐다.


   이는 신이 자연의 경이에 도전하려고 한 인간에게 내리는 심판이리라. 힘이 탁 풀렸다. 저항은 더는 의미가 없다. 꽉 쥐었던 단검이 갑판 위에 떨어졌다. 그 소리는 이내 파도의 비명도 묻히고 말았다.


   "에이해브!"


   스타벅이 소리쳤다. 악마와 계약한 게 틀림없을 흰머리 향유고래- 모비딕에 맞서려고 한 외발 선장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한쪽 다리, 그다음에는 자신의 몸, 마지막에는 고결하다는 그 영혼과 동료들을 모비딕에 바친 지독한 선장이었다.


   그는 뱃머리를 애써 파도 쪽으로 돌리는 일도 그만뒀다. 배는 파도 쪽을 향해야 뒤집히지 않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지막 남은 몇몇 선원들도 힘줄을 감추고 고개를 떨궜다. 이 와중에 파도가 또 배를 덮쳤다. 신의 손바닥으로 따귀를 맞은 듯했다. 스타벅은 파도 속에서 모비딕이 가진 흰 갈래의 주름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소."


   스타벅은 주저앉았다. 그렇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칼에 찔려 죽든, 총알에 심장이 뚫려 죽든, 모두 세상을 떠난다. 몹쓸 병에 걸려 다 쓴 휴짓조각처럼 쪼그라든 채 죽기도 하고, 음식을 잘못 먹어 푸르뎅뎅한 상태에서 죽기도 한다. '그 틈에서 나는, 모비딕에 맞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죽는다.' 세상 어느 항해사가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겠는가. 스타벅은 생각했다. 모비딕이 찢어놓을 그의 사지는 누구도 찾을 수 없겠지만, 그의 영광스러운 죽음만은 후세에도 길이 전해질 것이다. 스타벅은 배를 지탱하던 나무판자들의 마지막 신음을 들었다. 배는 다음 파도에서 무조건 뒤집힌다. 그가 바닷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는 이 파도 안에 흰색 폭군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때, 스타벅은 그 물기둥 틈에서 분명 모비딕의 지느러미를 봤다.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었다.



   맛보기용 샘플에 이어 포스터와 링크도 슬쩍.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링크>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30639895&orderClick=LEa&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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