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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esar Choi Dec 28. 2016

프롤로그 - 철인 33호가 되고 싶은 이유

철인 33호가 되고 싶은 이유

나는 2004년 8월에 마라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마라톤 중계 보기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오만 표정을 지으면 비슷한 배경을 계속 달리는 선수들을 보여주는 그 중계를 2시간여 동안 나는 흥미진진하게 본다.
 
 사실, 그때 그 마라톤은 크게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25KM인가 30KM인가 지점에서 일찌감치 치고 나온 선수는 그때부터 오랫동안 계속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2위 그룹과는 300M나 앞서고 있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선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른 것은 결정된 일이었다.
중계방송도 1위 선수보다는 2위가 누가 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는 흥미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잠자코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이 벌어졌다.
 

출처 : 네이버

 
37KM 지점에서 군중 속에 숨어있던 한 남자가 선두 선수에게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 남자는 선수를 붙잡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마라톤 경기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경찰이 투입되었다.
그 남자는 연행되었다.
경기는 곧 속개되었다.
그 선두 선수는 다시 뛰었다.
그러나 페이스를 잃은 탓인지 그는 곧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도 아닌 3위로 스타디움에 들어왔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저 선수는 얼마나 '우거지상'을 하고 들어올까.
몇 년을 준비한 올림픽 마라톤인데,
우승을 거의 결정지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 한' 일로 2등도 아닌 3등이 되다니.
얼마나 울고 싶을까.
나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고 결승점을 향한 마지막 직선 트랙을 뛰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때 그 시절 버스 여행 중

 
내 인생에 여러 반전이 있었지만 그의 행복한 웃음은 기억될만한 큰 반전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뇌, 억울함을 담은 표정으로 들어와 세상의 동정과 위로를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웃었었다.
 
나는 그의 웃음의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는 왜 웃었을까?
그의 웃음은 그 이후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나를 고민하게 했다.
그는 왜 웃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웃음을 보고 나서 12년이 지나갔다.
 
계획은 예상치도 못 한 변수에 어이없이 어긋나고,
관계와 사랑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 또한 여전히 서투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체득한 '진리'라고 믿은 것들이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했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의 웃음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뛰어보기로 했다.

뛰어본다면, 

헤엄쳐 본다면,

자전거를 저어가 본다면 

그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20살에 본 기억 때문에 나는,

32살에 연습을 시작해서

33살에 철인이 되어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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