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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Nov 17. 2021

수능에 관한 단상

좋은 냄새 

 수능을 주제로 짧은 글을 써보고자 한다. 무슨 사진을 넣을까 하다가 성적표를 첨부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능 성적표를 조회할 수 있으나 18년도 이전의 성적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곧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서비스 종료를 한다니 혹 18년도 이전에 수능 성적표를 보관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수능 성적표를 검색하시어 미리 받아보시기 바란다. 이렇게 보니 내가 수능을 본지도 퍽 오래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능에 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거 같아 이렇게 기억에 남겨두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일이 수능이다. 내가 칠 때에는 11월 둘째 주 목요일로 고정이었는데 18학년도 대학수능시험은 지진으로 1주일 미뤄줬었고 작년 코로나 수능도 좀 미뤄진 걸로 안다. 자주 미뤄지다 보니 이제 아예 셋째 주 목요일로 고정된 거 같아 보인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나는 2015년도 11월 둘째 주 목요일에 수능을 보았다. 사실 수능으로 온 나라가 요란을 떨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입시전형의 다양화로 인해서 실제로 수능과 입시가 직결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 내 학창 시절에도 그런 친구들이 꽤 있었던 거 같고 수능과 상관있는 학생들도 최저 맞출 용도로 몇 과목 공부하는 거지 수능 전과목을 인생 걸고 치는 학생들은 좀 적었던 거 같다. 나는 좀 적었던 후자에 속했다. 


정시, 오직 수능점수로 승부하는 그 공평함의 매력에 빠졌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퍽 신중한 편이라 학교장 추천으로 쓸 수 있는 수시는 다 써놨다. 혹여나 수시 납치를 우려하여 면접이 다 수능 이후, 혹은 너무 노골적이지만 자소서 입력도 수능 이후인 학교도 있었다. 그렇게만 수시를 썼기 때문에 최저를 맞추어 수시로 갈 수도 있었고 정시가 잘 나온다면 수시 면접을 안 가거나 자소서를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수시를 고의로 다 떨어진 다음에 정시로 쓸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내게 수능은 정말 중요한 시험이었다. 수능은 점점 올드해져서 많은 학생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올드가 아이덴티티인 내게는 여전히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편의를 봐준 거 같은데 수시 원서를 쓰고 수능 한두 달 전에 부장 선생님은 내가 교실에 가지 않고 바로 우정학사라는 교내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도 된다고 하셨다. 아침 조회는 하고 가라고는 하셨는데 그냥 내가 바로 우정학사로 갔고 착하디 착하셨던 담임 선생님은 전혀 문제 삼지 않으셨다. 수험생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방법인데, 물론 학교에서 편의를 봐줘야겠지만 한 달 전부터 나는 온갖 모의고사를 왕창 구해서 매일매일 수능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체 모의고사를 봤다. 그렇게 일관성을 유지하다 보니 수능 때 긴장을 하거나 실수가 적었던 거 같다. 


수능 전날에는 친구 김 모 군과 예비소집 겸 학교에 들렀다. 운 좋게도 나는 모교에서 수능을 치게 되어 장소가 어색하거나 하진 않았다. 교실도 들어가 봤는데 그걸 발견한 교감선생님이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으나 우리 학교 학생인 것을 아시고는 웃으면서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였다. 수능 전날에는 혹시 잠이 안 올까 싶어서 카페인을 입에도 안 대려고 퍽 조심했던 거 같다. 저녁 먹고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차 했으나 잠은 정말 푹 잤다. 


수능날에는 부모님이 학교까지 태워주셨다. 1교시가 국어인데, 역대 수능을 보면 국어가 어려웠던 적이 참 많다. 그래서인지 1교시를 치르고 멘탈이 터져 나머지 과목도 망치는 수험생이 적잖게 보이는데 항상 내가 어려웠으면 남들도 다 어려웠을 것이란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15학년도 국어가 역대급으로 어려웠어서 국어는 어려울 것이라는 각오를 항상 했기에 국어에서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수학은 평이했던 거 같고 수학을 치고 화장실을 가는데 양모 군이라는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는 수학 답을 물어보려 하길래 바로 쌍욕을 해주고 지나갔다. 뭐 모의고사 때야 상관없지만 수능 같은 시험에서 답을 서로 맞혀보다가 내가 틀린 것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계속 머리에 맴돌 거 같아 사전 차단을 한 것이다. 수험생 때는 워낙 예민하게 굴어 양모 군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점심도 나는 친구들이 교내 독서실에서 모여서 먹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먹었다. 친구들과 먹으면 자연스레 이미 친 과목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러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교실을 벗어나는 거 자체가 흐름이 깨지는 것 같아 교실에서 혼자 먹었다. 어떤 장수생이 내게 초콜릿을 건넸는데 받고 몰래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철저했던 거 같다. 영어를 치는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거 같다. 우리 때 영어가 6모 9모 전부 1컷이 100이어서 실수하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허무하게도 영어가 퍽 어렵게 나와서 1컷이 90점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탐은 편하게 시험을 쳤던 거 같다. 나는 혹시 몰라서 아랍어도 신청했기에 좀 더 늦게까지 시험장에 있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랍어를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아랍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잘 없기에 찍어도 2,3등급은 나온다는 말을 듣고 한 번 응시했다. 아랍어 시험 시간 동안 생각에 빠질 수 있었는데 이만하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었다. 이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난 최선을 다했다. 


시험을 다 치르고 나오니 엄마가 마중 나와 있었다. 가는 길에 폰을 빌려 추위에 떨면서 가채점을 했다.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그날은 내가 정말 기분 좋았던 몇 날 중 하나였던 거 같다. 다만 한국사는 정말 자신하던 과목이었고 좋아하는 과목이었는데 하필 너무 쉽게 나왔다. 거기다가 하나 실수를 해서 그게 좀 뼈 아팠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갑신정변 순서 묻는 문제였는데 내가 그걸 왜 착각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뭐 다른 과목에서 실수 안 했으니 어차피 할 실수였다면 제일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수능 치고 나서는 정말 밤에도 잠을 못 이룬 거 같다. 앞으로의 밝은 나날을 생각했으려나 그리 밝지만은 않을 거란 걸 6년 전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수고했다. 마음껏 행복해해라! 


사실 더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았던 거 같은데 6년 전이라 다 뽑아내지는 못한 거 같다. 많은 수험생들이 내일 수능날이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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