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SNS 광고가 참 많다. 특히 이용자의 호오를 따져 맞춤형 광고를 해주는데 클릭을 참지 못할 때가 있다. 해커스에서 전생 한국사 인물 테스트도 그러헀다. 대단히 조잡한 테스트였지만 흥미를 끌었다. 결과를 보고 퍽 불쾌해졌다. 무척이나 싫어하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조잡한 테스트인 만큼 큰 의미는 없겠지만 갑자기 광해군에 대한 상념에 빠지게 되었다.
광해군! 이토록 대중매체에 의해 온갖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여진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광해군 재평가의 시도는 기억하기로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가 시도하였다. 중립 외교, 실리외교 운운하며 이런 인물을 폐위시켰으니 조선은 희망이 없었다. 이런 논조를 밝힌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광해군의 공과를 여기서 다 논하기에는 무척 피곤해질 것이니 그것은 차치하자, 대중매체에서 광해군을 많이 다루는 것은 워낙 파란만장한 삶이기 때문이다. 전시에 얼떨결에 세자로 책봉되어 어린 나이에 분조를 이끌며 전쟁을 이끌었다. 아비의 견제를 이겨내고 기어코 왕위에 올랐으나 반정으로 폐위당해서 긴 유배 생활을 한다. 사실 MSG 안 뿌리고 그냥 실록의 사실만 나열해도 꽤 괜찮은 드라마가 나올 거 같다. 거기에 대해 각종 정치 세력들이 광해군을 자기 진영의 입장에 맞게 포장하여 선전하니 한동안 광해군의 인기는 식지 않을 거 같다.
최근 사학계를 필두로 광해군의 실정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많아서 고무적이기는 하다. 나도 그런 시도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나, 내가 전문 사학자도 아니고, 광해군의 실정을 조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상념에 그토록 잠긴 것은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망쳤나이다.
세자 시절의 광해군은 정말로 영웅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생의 나이에 그토록 자기 역할을 완벽히 해내다니, 신하들과 백성의 칭송을 받았고 세자 시절의 광해군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워낙 잘한 것이 독이 되었나, 부왕의 질투를 받게 된다. 그것은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왔다. 광해군은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절제했겠으나 그 속에 얼마나 설움이 쌓였겠는가
그 고생 끝에 결국 왕위에 올랐다. 큰 인물이었다면 설움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대업을 향하여 우직하게 걸어갔겠으나, 광해군은 그러지 못했다. 아주 강한 보상심리가 발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복형을 죽일 때는 작정하고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이복동생을 죽일 때는 냉혹했으며 어미를 유폐하는 일에는 집착을 보이기까지 했다. ‘너희들이 나를 그토록 못살게 굴었지? 이건 당연한 거야, 이 정도 복수는 당연한 거라고!’ 몇번을 속에서 외치지 않았나 싶다. 복수를 끝냈다면, 다시 왕의 길을 가야 했었다. 하지만 복수 끝에 뭐가 남겠는가? 공허할 뿐이다. 공허함 때문인지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았는지 그의 재위 기간 내내 옥사를 벌였고, 고변한 것이 거짓이어도 죄를 묻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복수와 의심 끝에는 공허함만이 맴돌았고 그는 궁궐 짓기에 몰입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세자 시절에 얼마나 설움을 당했는데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해’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지 않았을까
명과 후금 사이의 외교에서 보여주는 감각이나 세자 시절의 뛰어난 자질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부왕이 그의 영웅 됨을 시기 질투하여 박대하였으나, 그는 부왕에게도 한참 모자라는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재위 후반기 이이첨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쏠린 것과 선조의 인재 운용을 비교해본다면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이첨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쏠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이제 무언가를 바꿔보아야겠다고 생각하여 평소 같으면 대대적으로 옥사를 벌였을 고변을 그냥 넘겨버리고 마니, 그렇게 그는 옥좌에서 내려온다.
보상심리… 심리학적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상당히 오염된 단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많이들 사용한다. 나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 같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설움을 당했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되갚아 줘야지, 이 정도는 누려야지… 그런 생각이 나를 잡아먹으려 할 때도 많이 있었던 거 같다. 내가 광해군을 그리 싫어하는 이유도 단순히 주류 대중매체에 대한 반감보다도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