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로마 로마
‘비잔티움의 역사’는 수년 전부터 기대했던 도서였다. 더숲이란 출판사에서 ‘바빌론의 역사’ 후속작으로 비잔티움을 다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몹시 설렜다. 혹시 출간되지 않았나 검색해보고 아직 아니라고 실망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비잔티움은 그만큼 뭇사람들의 낭만을 건드리는 매력이 있다.
내가 로마를 처음 접한 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통해서였다. 가치 있는 역사서이지만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로는 오류투성이에 특히 동로마제국 파트는 의도적인 평가절하까지 담겨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읽은 책이지만 어렴풋이 내게 나약한 동로마제국, 그저 명맥만 이은 제국이란 인상을 줬던 기억이 난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현대 역사가들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매체에서 다루는 비잔티움 제국도 긍정적인 묘사가 많아졌다. 하지만 크게 대중적 호응은 받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며 작가가 예시로 든 작품들이 에코의 ‘바우돌리노’였다. ‘바우돌리노’를 무척 재밌게 읽었기에 반가웠다. 대중적 호응은 못 받아도 나같이 빠지는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익히 알던 나약한 모습의 비잔티움제국은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의 모습이다. 실제로 제국은 후반기까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 영향력이 있었다. 제국이 건재할 때는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 세계를 주도하여 세계 공의회 때도 교황이 그저 편지로 의견을 개진할 정도였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입장에서 본 신성로마제국의 출현도 퍽 흥미로웠다. 그동안은 단순히 교황과 프랑크왕국 둘 사이의 관계만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때까지 비잔티움 제국이 이탈리아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 교황청에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다. 교황이 카롤루스 대제를 끌어들인 것은 로마 내의 비잔티움 황제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비잔티움 제국과 프랑크 왕국 사이의 동맹이 논의되었다는 점도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는 놓치던 부분이었다.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잔티움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멸망할 때까지 그들은 로마제국이었다. 실제로 국체가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국의 영토가 그리스와 소아시아로 축소되면서 그리스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에서도 비잔티움 황제를 그리스 황제라고 칭하는 부분이 나온다. 신성로마제국의 출현 이후 서유럽인들은 비잔티움 제국을 그리스 제국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도 라틴어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나타났고 황제도 그런 의견을 낼 정도였다. 그러자 당시 교황이 황제께서는 로마인의 황제를 칭하시면서 라틴어를 야만스럽다고 하냐면서 비꼬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제국 측에서는 로마 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고 응수했다는데 재미난 일화였다.
전체적으로 재밌고 유익한 역사서였다. 정치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도 꼭 언급하고 넘어갔다. 비잔티움 제국사의 최신동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로마사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비잔티움 제국은 삼국지의 제갈량 사후 파트처럼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 불만족스러웠는데 ‘비잔티움의 역사’를 통해 갈증을 해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