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오만사이
최근에 니체의 저작을 다시 읽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의 원전들이 상당히 아포리즘의 형식을 가지기 때문에 예열 차원에서 아포리즘 부류의 책을 읽어보고자 하였고 나름의 명성이 있는 파스칼의 “팡세”를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은 파스칼이 책으로 낸 것이 아니라 파스칼이 “기독교 호교론”이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남긴 여러 단문을 사후에 재구성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리고 앞에 언급했듯이 아포리즘의 형식이라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읽기가 어려울 거 같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대단한 저작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전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깔끔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읽기에 퍽 불편하였다. 물론 전체적인 구성이나 논리 방향은 읽을 만 했던 거 같다. 파스칼이 더 오래 살아서 본인이 책을 냈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살면서 익숙히 들어왔던 명언들이 “팡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나 인간 본성에 대해서 날카롭게 분석하여 압축한 거 같아서 그런 부류의 잠언을 읽을 때면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의 비참함을 너무 할 정도로 논박하는데 인간의 비참에서 인간의 위대가 나온다는 역설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종종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아예 모르고 사는 것이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참의 필요성과 비참을 알아야 비참을 극복할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이 구절이 “팡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인 거 같다. 인생에서도 신과 비참, 오만과 절망 그 둘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파스칼을 단순히 수학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 같다. 이 책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책은 아닌 거 같지만 인간 파스칼의 치열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