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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Jun 29. 2023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와 선배를 추억하며

출근하려 집을 나서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본격적인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다. 사무실 출근하니 직원들이 본격적인 여름휴가 계획으로 옹기종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정겨운 모습이다. 이미 베트남 3박 4일 여행을 다녀와서 여름휴가를 갈지 말지 고민이다. 그래도 여름휴가인데... 기분은 내야 하지 않을까?


매일 같은 루틴인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과 SNS를 확인한다. 갑자기 초등학교 밴드에 눈이 간다. 초등학교 동창의 생일 알림 메시지인데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수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이다. 5-6년 전 동창모임에서 한번 만났는데 미인이고 성격도 밝아 유난히 기억나는 친구이다. 이후에도 밴드에서 일상을 공유하며 연락하던 친구인데, 세상을 떠난 그 친구 생일이 오늘이라고 밴드가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다. 


페이스북, 카톡 등 SNS를 하다 보면 친구의 생일과 과거의 오늘을 알려주는 서비스 기능이 있다. 나처럼 기억력이 부족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이다. 덕분에 지인 기념일 꼼꼼히 챙기는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상황은 당황스럽다. 평상시 같으면 이쁜 이모티콘과 진정성 담긴 생일축하 메시지로 댓글 달아줄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핸드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 친구와 짧은 추억을 소환한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유난히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수원의 명문 수성고등학교 4년 선배이자, 경기도청 직장선배인 고 송준성 사무관이다. 2001년 12월 의왕시에서 경기도(인재개발원)로 전입하여 처음 임용받은 부서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공무원이라기보다 좋게 말하면 연예인, 다르게 말하면 클럽 지배인 이미지였다. 생활해 보니 내 평가가 정확했다. 업무보다는 술과 음악, 사람을 좋아했고 특히, 그의 색소폰 연주는 Kenny-G보다 훨씬 감미로웠다.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박상민의 '비원'을 유튜브 보며 혼자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열창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자주 들으니 익숙해졌고 나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거꾸리와 장다리처럼 외모는 반대였지만 동문, 유머코드, 음악, 엉뚱함이 많은 공감대를 이루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지금도 공직생활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경기도청 색소폰 동호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일하면서 색소폰의 대중화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으로 많은 직원들이 동호회에 가입했다. 나를 만날 때면 "진욱아! 너는 회비 안 받을 테니 색소폰만 준비해서 들어와라!" 하며 동호회 가입을 적극 권유하기도 하였다. 주말에는 떡과 과일을 준비하여 경로당, 요양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신명나는 트롯트 공연으로 환우들에게 힘을 불어넣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그의 선행을 취재하며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매년 4월 수원 팔달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경기도청 벚꽃축제가 열리는 잔디광장에는 항상 그의 연주가 빠지지 않았다. 그의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서 아메리카노 한잔 들고 벚꽃을 감상하는 기분이란 황홀함, 신비함, 몽환적 분위기 그 자체였다.

좌) 경기도청 색소폰동호회  우)사회복지시설 위문공연


2011년 아버지 칠순을 준비하던 때 그가 갑자기 나에게 오더니 "진욱아 아버지 칠순 축의금은 못하고 색소폰 공연으로 퉁칠게" 하더니 아버지 칠순잔치를 미스터트롯 공연장으로 만들었던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특히, 내 애창곡 함중아의 '안갯속의 두 그림자'를 멋진 음악으로 연주해 주던 그 고마움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러나 그의 열정적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공무원 정년을 3-4년 정도 앞두고 투병 중인 암으로 천국으로 떠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부고에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그의 영정사진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색소폰으로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정체성과 특유의 유쾌함을 조문객들에게 온전히 전하고픈 진실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장례식이 더욱 슬프게 기억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가끔 페이스북을 보면 그의 과거 일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가 권유한 색소폰 동호회에 가입하지 못했고, 꽃 한 송이 들고 묘소를 찾아 소주 한잔 올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지금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나이가 되었다. 나는 지금 잘 살아가는 것일까? 인생의 덧없음이 사무쳐온다. 만일, 내가 색소폰을 배워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이 된다면 꼭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다. 대학가요제 출신 휘버스(열기들)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곡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멋드러지게 연주하고 싶다. 송준성 선배가 아버지 칠순에서 멋진 공연을 한 것처럼.


수지야 생일 축하한다. 준성이 형! 천국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분위기 휘어잡으며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까맣케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과의 멋진 추억을 선물해 준 SNS 고마워요. 쌩유! 


그룹 휘버스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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