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전쟁을 했을까

(『전쟁 충동』리뷰)

by 영진


"평화롭게 살고 싶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려고 하던 차에 이란을 폭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관련 내용을 첨언할까 하다가 '상황도 잘 모르는데 뭔 말을 하나'싶어 그냥 올렸다. 역시 전쟁은 부수적인 피해를 가져온다고 했지만, 그게 부수적인지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오폭(?) 함으로써 이번 전쟁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어쩌면 크게 기대를 안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내 동네 아니라고 할 소리는 또 아니지 않겠는가.


『전쟁 충동』, (지은이) 리처드 오버리, (옮긴이) 이재황, arte, 2026-03-12.


암튼 저 글을 쓰고, 전쟁에 관련된 책을 좀 찾아보던 중에 관련 신간이 『전쟁 충동』이 나왔길래, 주문해 두었다가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책의 결론에 나와 있는 마지막 세 문장을 인용해 보겠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잠재적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 지상의 중무장한 적들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서방이 벌이는 대리전 또는 잦은 핵무기 상승작용 위협을 관찰하는 사람은 그 다양한 형태의 전투행위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이지만, 미래에도 전쟁은 존재한다."(355) 그렇단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1장 생물학, 2장 심리학, 3장 인류학, 4장 생태학으로, 2부는 5장 자원, 6장 신념, 7장 권력, 8장 안보로 구성되었다. 크게 나눈다면 1부를 인간이라는 생물적 종의 단위에서 살펴본 것이고, 2부는 소위 역사가 쓰인 의식적 시간상에서 이것저것 주제를 나눠 장을 구성한 것 같다. 간단히 줄여본다면, 1부는 인간은 전쟁이라는 행위를 이전부터 해왔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을 근거로 내세우며 인간의 생물학적 기제도 있다는 것이다. 폭력이 친족을 지키고 개체의 유전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부는 각 장의 제목이 전쟁의 이유가 되지만, 결코 저 하나의 주제로만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요한 이유들이 있을 수는 있다.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은 전쟁이 일어나기에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역사의 시간에서 신앙이나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추상적 이미지로도 전쟁이 작동하게 할 수 있다. 인간 종의 개체 수가 늘어나고 공동체의 규모도 커지고 공동체의 질적 차이가 발생하면서, 그만큼의 질적 차이가 조율되지 않는다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2부를 구성하는 저 장들은 그런 구성요소들 중 일부일 것이다.


단순한 개체 간의 폭력 행위를 전쟁으로 다루진 않는다. 전쟁은 집단 간의 폭력행위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거칠게 이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쓰는 개념이 시간이 갈수록 촘촘해져서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의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전쟁(war)과 전투행위(warfare)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그러한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시간이라는 축을 길게 늘려서 생각해 보면 전쟁이라는 것을 뭐라고 할지 애매한 부분도 많이 나온다. 일단 우리는 종 단위 안에서 폭력의 집단 행위를 전쟁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과거 구석기 시대에서 같은 종의 두 집단 간의 폭력행위가 있었다면 그럴 수 있다고 칠 텐데,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물리적 충돌은 전쟁인지 사냥인지 그냥 물리적 충돌로 해야 하는지는 고민이 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대략 10만 년 전부터 나오는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당시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네안데르탈인은 만들지 못한) 석기와 투창의 흔적을 보면, 이들의 충돌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건 역사 이전 시기니 그렇다고 치자.


시간상에서 끝과 끝을 달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미·이스라엘 전쟁을 보자. 미국에선 이게 국회 승인도 없으니 전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주로 작전명(에픽 퓨리)이라거나 캠페인이라고 한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이 아니라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했다. 홍길동의 사정이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모두 그렇게 부를 리 없다. 집단 간의 무력충돌이고, 게다가 정확히 국가 단위의 폭력이 다른 국가 단위를 향해 서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전쟁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아무튼 사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이러한 측면을 이해하면, 집단 간의 폭력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들을 연결한 것으로 이 책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쟁사에 굉장한 결과물들을 많이 남기신 분 같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다발적 측면과 다양한 측면 때문에 이러한 저작을 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많은 이유들 때문에 발생한 전쟁을 연구했기에, 그것을 멈추기가 매우 어렵다고 표현했었을 것을 책의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힘주어 이야기한 듯하다.


사실 어떤 사건이나 사태를 정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지시적 성격을 가지는 언어는 이해하거나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어떤 물체 혹은 개체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이나 사건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인간은 지구에 있는 생명체 중 추상적 사고를 가장 잘 활용하는 종이다. 그리고 우리는 추상력의 작동 방식을 아직 정확히 모른다. 하나하나의 어떤 것들을 뇌에서 어떤 대응을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현상적으로 어떨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패턴을 중심으로 연구하되, 미시적 과학이 조금씩 성과를 낼수록 그 일부만 알 수 있다. 하물며 집단 간의 충돌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주 어려운 문제다. 다만 지금 우리는 인간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추상력으로, 어떤 생물학적 감정 상태에 이르러, 어떤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러한 성향들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하는 상태인 것이다. 앞 문장에 제시된 것들만 해도 과제가 많고, 이것들만 어찌어찌해도 집단 간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조건들을 찾아낼 수 있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개념의 극단 상태들이다. 0과 ∞이라는 양 극단 중 하나만 있다는 상태가 하나만 있거나 없거나 하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래에도 전쟁은 존재한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겠다. 나는 "우리는 어떤 개념적 상황에 이르는 과정에 존재한다"라는 정도로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받아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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