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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게 Mar 22. 2016

누군가 쫓아오던 나의 첫 순례길

아침 6시 조용히 눈을 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관문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산을 넘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에 큰 부담 없이 출발하였다. 

올라가다 보니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을 보면 피할 만도 한데 피하지도 않고 제 할 일들을 하고 있다.

2~3시간쯤 올라갔을까 멋진 자연풍경 앞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짐을 풀고 준비했던 간식을 먹는다.

옆에 스페인 친구 두 명이 따라 앉는다. 나는 멋쩍은 듯이 Hola~ 하고 인사를 하고 스페인 친구들은 작은 동양인이 여기까지 와서 산티아고 순례기를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지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너무나 멋진 자연경관 아래 여유 있게 쉬고 싶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얼마 쉬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나는 '피레네 산맥쯤이야 강원도 인제에서 수도 없이 산을 넘던 것에 비하면야 가뿐하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빠르게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7시간 30분 만에 도착하였다.

너무 빨리 도착했을까 아직 알베르게도 문을 열지 않았고 너무 목이 마른 나는 슈퍼마켓을 찾았으나 이 작은 마을에는 슈퍼마켓도 없었다. 그 와중에 한 마을 주민이 저쪽에 가면 벤딩머신이 있다고 하여 가보니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고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순례길은 순례길 인가 보다.

론세스 바예스 알베르게는 옛날 수도원을 개조해 만들어서 굉장히 고풍스러운 느낌이 난다. 

그리고 눈에 띄는 한 곳을 발견한다. 


물품보관소


생장에서부터 들고 와 피레네를 넘으며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물품의 순번을 매겨 이곳에 버리고 가는 곳이다. 이곳에는 옷부터 양말, 책, 스틱, 신발 기타 여행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놓여 있다. 새 제품도 상당히 많다. 

집에서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것들만 가져왔을 법도 한데 아직도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이 상당히 있다.

저녁에는 옆에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진행된다고 하여 미사에 참여하였다. 

순례자들이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시는 모습에 힘이 더 나는 듯했다. 

그렇게 첫날은 피곤함에 지쳐 고풍스러운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피곤하고 몸이 쑤셔서 못 일어날 만도 한데 다들 일어나서 준비하니 덩달아 나도 일어나서 준비하게 된다.

어제 피레네를 넘고 오늘은 Zubiri 까지 무난한 코스이다. 

오늘은 쉬엄쉬엄 걷자 마음을 먹고 또 길을 나선다.

주위 자연경관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순례자 일행 몇 명이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아침에 봤던 순례자이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내가 여유를 부리는 사이 어느새 나를 지나쳐 간다.

무언가 쓸데없는 오기가 생긴다. 내가 뒤쳐질 수 없지. 

나는 여유를 다시 접고 걸음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한참을 갔을까 잠시 쉬고 있는데 또 다른 일행이 나를 지나쳐 간다. 서로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걸어간다. 

나는 또다시 배낭을 메고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걷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여기 혼자 걸으러 온 것인가 마라톤 경주를 하러 온 것인가?


우리는 서로 같은 길을 걸을 뿐이지 경쟁을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허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나를 지나쳐가면 무엇인가 쫓기듯 다시 그들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우리도 모르게 경쟁사회에서 살아간다.

시험을 봐서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고 군사훈련을 받으며 서열을 매겨 병과를 선택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또다시 시험을 봐서 취업을 하고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항상 경쟁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여유를 가지면 무엇인가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든다.

지금 카페 알베르게를 하는 이 시간조차 가끔씩은 불안한 미래에 두렵기도 하고 잠을 못 이루는 날들도 있다.

나는 매일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에 흐름에서 보면 내 전 직장동료들이 진급을 하고 친구들은 좋은 차를 사고 훌륭한 연봉을 받고 있을 때는 잠시 뒤쳐짐을 느낄 때도 있다. 

허나 그들은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는 중이고, 나는 내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내서 열심히 하루를 걸어본다.  


다들 오늘하루 자신만의 길을 걸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부엔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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