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5월의 주말 풍경
5월의 어느 주말, 파리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럽다. 희뿌연 구름이 뒤덮인 어스름한 새벽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창 밖에선 경쾌한 새소리가 들린다. 분주한 비둘기의 구구 소리도 가끔 들린다. 아침 식사를 하고, 채비를 하여 집 밖에 나서면, 구름 한 점 없는 짙은 파랑이 하늘 높이 가만 놓여 있다. 상쾌한 바람이 분다. 바람은 곧 하얀 뭉게구름을 밀어 온다. 좁은 골목길, 굴뚝이 제각각 솟아 있는 지붕들 사이로 크고 작은 흰 구름이 지나며 매분마다 새로운 작품이 전시된다. 하늘 위로 저 멀리 비행기가 하얀 길을 만든다. 우연히 골목길과도 같은 방향이라, 동행을 하는 듯한 착각도 든다.
동네 공원에는 사람이 많다. 특히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초록초록한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거나, 뛰어다니거나, 비눗방울을 분다. 높고 큰 활엽수가 많아 잔디 곳곳에 시원한 그늘이 많다. 현지인들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가 앉거나 때론 누워 대화를 나눈다. 반면 나와 같은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가 앉는다. 나무의 그림자가 옮겨갈수록, 그들은 햇볕을 찾아, 우리는 그늘을 찾아 조금씩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책 읽는 사람들, 핸드폰 만지작 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은 공원의 생기를 담아 동네의 골목골목으로 퍼트려준다. 활기차면서도 느긋한, 초록빛의 평범한 주말 오후의 풍경이다.
멀리 새카만 구름이 성큼 다가온다.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소낙비를 만난다. 집에 들어오자 곧 천둥소리가 나고, 번개가 친다. 변덕스러운 날씨도 이미 익숙하다. 세찬 빗방울을 바라본다. 군데군데 개똥들로 더럽혀진 골목길을 깨끗이 씻어낸다.
다시 갠 하늘,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느지막한 오후, 아홉 시가 넘어서도 밖은 여전히 어둡지 않다. 하루를 천천히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조금 더 지나면 주황빛 가로등이 골목을 밝힐 시간이다. 열 시 정각에는 에펠탑의 불빛도 하얗게 반짝이겠지.
이방인으로서 경험하는 파리의 생활이 이곳 날씨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좋다가도 문득 불안해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하는 이곳에서의 생활과 심리상태는 다채로운 무지개 빛이다. 여러 빛 가운데 꼭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공원에서 본 활기찬 초록빛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