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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Apr 14. 2021

지인의 에세이

지난 3월의 어느 날 직장동료의 결혼식에서 아주 오랜만에 퇴사한 (구)매니저님을 만났다. 퇴사 후에도 한두 번 따로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날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2020년에 1월에 입사해 매니저님과는 4월 말 정도까지 고작 4개월 정도 일주일에 두세 번 함께 근무한 게 전부였는데 그 4개월 동안 아주 진하게 정이 들었다. 같은 나이인 것은 한참 뒤에 알았지만 내가 지니고 싶은 태도와 마음 그리고 취향까지 모두 본받을게 많은 사람이었다. 어느 상황에서든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 특히 고객을 대할 때 세련된 매너와 본인의 심지가 굳어보이는 점이 좋았다. 내게 없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서 짧은 4개월이었지만 배울 점이 참 많았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주고받던 중 퇴사 후 그동안 책을 두권이나 써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놀라움과 부러움 그리고 역시 이 사람이라면 뭐든 해낼 줄 알았다 싶은 생각들이 뒤섞였다. 항상 글을 쓰고 책을 낼 거라고 입으로만 내뱉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는 와중에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다니 내가 좀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좋아하던 사람의 책이라니 어찌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식이 끝나고 이주 정도 뒤 내가 근무하지 않았던 날 그녀는 숍에 들려 나의 몫까지 책을 전해주고 갔다. 며칠 뒤 내가 출근하는 날 책을 전달받아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아니 그런데 지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 이렇게나 낯간지러운 일이라니.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허락 없이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고 고작 몇 달을 직장에서 마주한 게 다였지만 그동안 내가 그녀를 생각한 그대로 이 책 또한 그녀를 무척이나 닮아 따뜻하고 근사한 책이었다. 자꾸만 귓가에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보고 싶어 지는 건 덤이었고.ㅎㅎ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충전돼 나도 다시 한번 한발 내딛을 기운이 났다. 언제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늦은 밤 노트북을 켜 글을 써내려 본다. 


그녀는 두권의 책 출판 뿐 아니라 출판사의 대표가 되었다. 어찌보면 내가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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