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부터인가 냉장고에 떨어지지 않는 품목 중 하나가 요거트가 되었다. 워낙 유제품류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릭요거트의 맛에 눈뜨면서부터는 각종 새벽 배송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그릭요거트를 냉장고에 비는 날 없이 채워 넣었다. 일반 마트에서 파는 그릭요거트는 그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묽은 제형의 제품이 주로 판매되고 있었고 새벽 배송 사이트에서나 그릭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내가 원하는 단단한 제형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어 다소 비싸더라도 원하는 제품을 먹기 위해 새벽 배송 사이트에서 부지런히 사다 채웠다.
몇 달간을 그렇게 사 먹던 중 유튜브에서 우연히 밥솥으로 그릭요거트를 만드는 영상을 접했다. 보통의 그릭요거트는 100g에 3-4,000원, 500g에 12,000원 정도 하기에 좋아해서 사 먹기는 하지만 가격적인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때마침 적절한 영상이 눈에 띈 것이다. 마치 동영상 강의를 듣듯이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을 때 준비물인 우유와 마시는 요거트를 준비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에 영상에 나온 만드는 순서를 종이에 옮겨적고 그대로 따라 했다. 사실 별다른 것 없이 밥솥에 넣고 시간 체크만 잘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에 쓸데없이 더 비장해졌다.
이미 전부터 밥솥으로 그릭요거트를 만들어먹던 동생이 있어 동생에게도 자문을 구하고 드디어 첫 그릭요거트를 만들었다. 다음날 요거트가 잘 만들어졌을지 떨리는 마음으로 밥솥을 열었는데 앵? 영상에서 보던 그 질감이 아니었다. 밥솥을 열자마자 아 이건 망한 거구나 싶은 생각이 몰려왔다. 당황하지 않고 모두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다시 새롭게 요거트 만들기에 들어갔다. 이럴 줄 알고(?) 사실 우유와 요거트를 두 개씩 사두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비장하게 요거트를 제조했다.(제조했다고 하기엔 밥솥에 우유와 요거트를 부어놓고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다시 한번 떨리는 마음으로 밥솥을 열었는데 와! 이번에는 영상에서 보던 그대로 탱탱한 질감의 요구르트가 나를 반겼다.
드디어 성공이라는 생각에 너무 기뻐 내적 댄스를 추며 요거트를 그릭요거트로 변화시켜 줄 면포와 체를 준비했다. (밥솥에서 꺼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작업이 필요했다. 그릭요거트를 만나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묽은 질감인 요거트의 유청을 걸러 단단한 질감의 그릭요거트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깨끗이 빨아둔 면포에 요거트를 붓고 유청이 빠지는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 말로 쓰니 장황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내가 손댈 것은 별로 없고 모두 시간이 만들어준다. 내가 할 일은 시간 체크와 기다리는 일뿐이다. 원하는 질감에 따라 10시간에서 많게는 24시간까지 기다리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릭요거트를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우유와 요거트 값인 3천 원 정도를 투자하면 3-400그람 정도의 그릭요거트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사실 어젯밤 아주 오랜만에 요거트를 망쳤다. 밥솥을 여는 순간 이게 실패인지 성공인지 여부는 눈으로 알 수 있고 어제는 밥솥을 열자마자 아.. 망했다.. 싶었다. 냉장고에 있던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를 사용했는데 평소 요거트를 만들던 우유와 다른 제품이었다. 실패 요인을 알아내고 싶어 평소 만들던 우유와 비교해보니 저지방 우유는 아니었지만 지방이 적게 함유된 제품이었다. 처음 요거트를 만들 때 저지방, 무지방 우유는 사용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실패 요인을 알았으니 다시 일반 우유로 제조를 시작한다. 부디 이번에는 실패 없이 완벽한 그릭요거트가 되기를 바라며 밥솥에 우유와 요거트를 부어본다.
어렵지 않은 밥솥으로 그릭요거트를 만드는 방법
1. 우유와 마시는 플레인 요거트를 준비한다. (무지방, 저지방 우유는 피한다.)
2. 밥솥에 우유와 요거트를 붓고 (우유 900ml 당 요거트 130ml 정도) 한번 저어준 뒤
뚜껑을 닫고 보온으로 설정한 뒤 1시간 기다린다. (상황에 따라 10, 20분 더 기다린다)
3. 시간이 되면 밥솥 뚜껑을 열지 말고(중요!) 취소 버튼을 누른 뒤 10-11시간 대기한다
(코드를 뽑아놓아도 된다.)
4. 시간이 지난 뒤 뚜껑을 열었을 때 푸딩처럼 탱탱한 질감이면 성공!
준비해둔 면포에 요거트를 붓고 유청을 빼준다.
5. 원하는 질감에 따라 유청은 반나절에서 하루정도 빼준다.
6. 원하는 질감으로 완성되었다면 그래놀라와 꿀, 각종 제철 과일을 이용해 맛있게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