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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an 16. 2023

아무튼 강원도

강원도 당일치기

남편과의 강원도 당일치기는 계획하에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떠나기 며칠 전 '이번주에 바람이나 쐬고 올까?' 하는 말로 시작하기 일쑤였다. 서울에서 출발해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넉넉잡고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강원도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그저 어딘가 자꾸만 마음이 쓰이고 끌리는 곳이었다.


지난해 블로그에 작성한 연말 결산  2022 최고의 음식으로 꼽은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식당의 황태국밥집을  때만 해도 떠나기 며칠전도 아닌 바로 전날 저녁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작스러운 남편의 제안에서 시작했다. 사실 말이  시간 반이지 왕복 다섯 시간을 당일로 다녀온다는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처음이 어려울  이미 두어  다녀왔던 터라 쉽게 남편의 제안을 수락했다. 일곱 시에 오픈하는 식당을 일곱  무렵 도착했음에도 대기번호를 받아야 했고 그마저도 7:40 분쯤에는 대기번호도 마감되어 받을 수가 없었다. 대기번호를 받은  4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는 홀에 앉아 황태국밥을 기다렸다. 함께 나오는 간소하지만 정갈한 반찬들과 기본찬으로 주는 생선 또한 맛있어서 황태국밥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조금  기다리니 드디어 황태국밥이 나왔다. 사실 황태국밥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  거기서 거기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뜨거운 뚝배기 안에 담겨 보글보글 끓는 국밥을 후후 불어 한입 넣었는데 ... ... 국물이 어쩜 그리 ~하고 꼬소~한지(여기서는 절대 진하고, 고소하고가 아니다.   발음으로 쓰고 읽어야만 한다) 단박에 죽기 전에 먹을  있는  가지 음식을 고른다면 바로 이거다! 싶은 생각이었다. 특별한 입맛이나 예민한 혀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 그동안  먹어도 정말 비리거나 몹쓸 맛이 아니라면  적당히 괜찮았고 맛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네가 죽기 전에  가지를 먹을  있다면  고르겠어?라는 말에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어  얼버무리곤 했는데 드디어 짝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죽기 전에 먹고 싶다고 말할 음식이 생기다니! 뜨거운 황태국밥을 연신 불어가며 먹는 와중에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이토록 진한 감동을 준 황태국밥을 우리는 지난여름 이후 종종 말하곤 했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우리 황태국밥 먹으러 갔다 올까?라고 말 할 정도였으니. 그치만 그때 이후 어쩐 일인지 시간이 잘 나지 않아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23년이 되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이 분명한 새해 일출을 보러 강원도에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조용히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지내던 중 또 나에게 툭 던지는 남편의 한마디 '이번주에 황태국밥 먹고 올까?' 잔잔한 마음이 툭 던진 돌에 일렁인다. 왕복 다섯 시간의 수고로움은 벌써 잊은 지 오래이다. 당연히 힘들 것은 알지만 말 나온 김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새해 첫 강원도행이 정해졌다.


목표는 오직 하나. 황태국밥 오픈런이다. 평소 줄 서서 먹는 거라면 끔찍해하는데 황태국밥이라면 오픈런쯤이야. 아는 맛이 이렇게나 더 무섭다. 7시 오픈인 식당을 가기 위해 전날 새벽 세시 반에 알람을 맞추었다. 적어도 네시에는 집에서 출발하기 위해서이다. 아직도 깜깜한 밤 알람이 울린다. 알람소리에 놀라 눈은 떠졌지만 정신이 차려지진 않았다. 침대에 누워 다음 주에 갈까?라고 두어 번 서로 눈치싸움만 하다가 갔다 오자!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났다. 대충 고양이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현관문을 나선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이 시간에 국밥을 먹겠다고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우리가 꽤나 웃기다. 캄캄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양양에 도착한 시각은 6시 50분쯤이었다. 차에 내려 혹시 대기표를 줄까 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추운데 안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내 뒤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오픈런도 모자라 일등으로 가게에 들어오다니. 식탁에 앉아 주문받기를 기다리는데 그냥 이 상황이 모두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주문을 하고 좀 더 기다리니 드디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태국밥이 나왔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전에 느낀 꼬소하고 찐한맛을 기대하며 후 불어 한입 크게 넣었다. 호들갑 떨 준비를 했는데 이게 웬걸? 그때의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남편 또한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의 그 감동을 느끼기 위해 200km를 그 새벽에 달려왔는데... 물론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기대한 그 맛이 나지 않았을 뿐. 뚝배기를 기울여 끝까지 싹싹 먹고 가게를 나서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는 이곳만을 위해 새벽부터 올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밥을 먹고 나왔음에도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황태국밥이었으므로 다른 일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다시 차에 올라 속초 쪽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바다가 보인다. 해변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쭉 빼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니 해가 뜨고 있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해변을 향해 나갔다. 이것이 나의 생애 첫 바다에서 바라보는 일출이었다. 구름이 낀 하늘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해를 보니 어쩐지 일렁이는 마음. 떠오르는 해가 주는 힘이 어떤 것인지 처음 느낀 나는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새해 첫 해를 보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은 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 해를 보는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또 바다에 비친 빛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순간이지만 내년 새해에는 해를 보러 강원도에 올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밥을 먹고 해를 보고 바다를 보고 사진을 찍어도 이제 고작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뭘 할까 하다가 속초 중앙시장으로 가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술빵을 사기로 했다. 이곳도 매번 줄이 어마어마해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는 곳이지만 오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오늘 우리는 부지런한 시간 부자, 시간 빌게이츠들이니까. 가진 게 시간밖에 없는 우리는 오늘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생각했고 검색을 해보니 9:30에 오픈을 한다고 나와있어 남는 시간은 강원도까지 와서 스타벅스에 들려 시간을 보냈다. 9시가 조금 넘어 슬슬 중앙시장 쪽으로 움직였다. 수월하게 주차를 하고 술빵가게를 찾아가니 이미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 뒤에 우리도 바짝 줄을 섰다. 점점 술빵과 가까워졌고 그곳에는 오픈시간이 주말 무려 8:30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대체 우리는 뭘 찾아본 거지?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 없이 바로 시장으로 왔어도 구매할 수 있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바로 평정심을 찾았다. 괜찮아 우리 오늘 시간부 자니까. 금방 빠질 줄 알았던 줄은 20여분은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되었고 뜨거운 김을 펄펄 내뿜는 술빵을 두 개 받아 들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닭강정도 사들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타자마자 술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단맛이 강했고 쫀득보다는 보드랍고 폭신한 맛이었다. 바로 꺼내어 먹으니 뭔들 맛이 없겠냐만은 슴슴해서 자꾸만 입에 들어가고 생각나는 맛이다.


이후 일정은 또 되는대로 흘러갔다. 가보고 싶었던 서점도 들르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원두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빵도 샀다. 이동 중 바다가 나오면 차를 세워 해변으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겹겹이 쌓여왔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많은 위안을 받은 하루였다.


 강원도에 올 때마다 특별히 특별난 일은 없음에도 우리는 강원도를 사랑한다. 왕복 다섯 시간을 견디면 그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우리는 돌아오는 여름 작년보다 더 많이 강원도를 찾기로 약속했다. 그때에도 당일치기가 될지 일박을 할지 아무것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또 우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날 나의 동선을 공유해 본다.

철저히 계산된 여행이 아니라 동선이 조금 뒤죽박죽 일 수는 있지만 혹여나 강원도 당일치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사진으로 일정을 공유해 본다.

라이픈 커피에서 원두를 사고 루루흐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으나 루루흐 오픈은 12시이고 원두를 산 시간은 11시여서 루루흐에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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