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운영한 카페를 도망치듯 그만두고 그다음 스텝은 생각해두지 않았기에 조금은 막막해졌다. 앞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커피 내리는 것뿐이었는데 다시 카페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수타이틀을 얻고 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성격 탓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할 줄 아는 것이 커피 내리는 일뿐이라 해도 다시 카페를 오픈하는 것은 당시 나의 상황에 맞지 않았다. 다시 내가 사장이 되어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부담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두어 달 쉬었을까 지인을 통해 서울의 한 카페 알바자리를 소개받아 아르바이트생이란 타이틀로 부담 없이 몇 개월간 근무를 했고 여러 사정으로 나답지 않게 짧게 일을 하고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둔 후 그해는 오로지 나를 돌보는 일에 매진하였다. 사 년을 아니 카페 오픈 전 일 년 동안 다른 카페에서 일을 한 것까지 치자면 자그마치 오 년을 쉼 없이 커피만 뽑았다. 카페를 그만두자 긴장이 풀린 건지 몸 여기저기가 아팠고 이 상태로는 다른 일을 하기는커녕 집에 누워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또 몸뿐 아니라 그간 너덜너덜해진 마음도 챙겨야만 했다. 아무리 내 성격이 계속해서 일을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해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시간은 잘도 흘러 몇 개월이 지나 다시 겨울, 어느 날 친구가 보내준 편집숍 채용 공고를 보고 옳다구나 싶어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고 덜컥 합격을 하였다. 여전히 주 5일을 근무하는 정직원 자리는 부담스러워 주 2,3회 근무하는 숍스텝으로 지원하였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다 보니 내가 온전한 이곳의 소속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고 누구보다 소속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알게 모르게 나 혼자 마음고생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직원으로 일 할 마음은 없으니 그저 내가 다 감내해야 할 것들이었다.
주 2,3회만 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남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는 게 아까워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런 내 주변에는 코바늘 뜨개를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예전에는 그 친구에게 완제품을 팔아달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코바늘에 관심이 가 지인찬스로 기본 뜨개 기법들을 배울 수 있는 원데이클래스를 들었다. 친구가 준비해 준 원데이 클래스는 일명 아미뜨기.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고객의 취향에 딱 맞춰 보라색실들로 파우치 한 개를 완성하는 수업이었다. 친구는 굉장히 쉽다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나를 다독였지만 짧은 뜨기, 한길 긴뜨기 등 생소한 용어들과 난생처음 잡아보는 코바늘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한줄한줄 내 손으로 직접 완성해 나가는데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선생님이 미리 만든 샘플과 차이가 좀 나지만 그래도 제법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옆에서 잘한다고 계속 당근을 쥐어주는 선생님이 있으니 정말 내가 뜨개질에 제법 소질이 있나 싶기도 했다. 수업을 듣고 남은 것들은 숙제로 받았다. 원데이 클래스는 선생님 바늘로 수업을 들었지만 앞으로 계속 뜨개질을 하려면 바늘이 필요하다는 말에 조금 고민하다 선생님이 추천해 준 크로바 바늘 세트도 구매했다. 가격대가 제법 나가지만 열개 세트에 또 그립감도 좋고 무엇보다 예쁘니 괜찮았다. 이렇게 장비까지 갖추고나니 어쩐지 평생의 취미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기본기를 탄탄히 배우고 나니 유튜브만 봐도 이것저것 뜰 수 있어 재미있어진다. 또 친구가 완제품으로 뜰 수 있는 키트를 판매하기도 했는데 늘 완제품을 그냥 나한테 팔라고 말했던 완제품 무새였던 내가 이제는 키트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뜨개질을 하고 있자면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점이 가장 좋다. 대바늘보다 내가 작업하는 코바늘이 아무래도 만드는 제품이 작고 그렇다 보니 작업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다. 제품을 완성할 때마다 현재 이렇다 할 성과를 내보이는 일이 없는 내게 조금만 공과 시간을 들이면 성취감까지 주니 이보다 더 좋은 취미가 있을까. 지금은 처음보다 일취월장 한 뜨개실력으로 친구의 뜨개작업을 도와 작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친구 브랜드의 제품 중 내가 돕는 제품은 딱 한 가지인데 어느 날은 그 제품을 직접 쓰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쳐 괜스레 신기하고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루프러프(브랜드이름)? 하며 알은 체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꾹 참았다.
현재 일 년 넘게 진행 중인 취미생활인 뜨개를 앞으로도 지속하고 싶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했던가. 뜨개질을 쉬는 순간은 있어도 완전히 바늘을 놓는 날은 없길 바란다. 내가 앞으로 뭘 해 먹고살지는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작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보험을 들어놓은 것처럼 든든하다.
뜨개질은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 틀리면 실을 푸르면 된다. 그리고 다시 하면 된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뜨개질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 잡생각이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물론 코수에 무척이나 예민한 원형뜨개는 예외이다.)
뜨개뿐 아니라 세상의 다른 일도 이렇게 생각하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틀렸어? 그럼 다시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