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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ul 13. 2023

날씨 탓


오늘 해야 할 일, 마무리할 일이 제법 있었는데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하필이면 이런 날씨에 시작한 생리의 영향으로 하루종일 잠만 쿨쿨 잤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아침부터 눈뜨기가 괴롭고 몸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예약해 둔 필라테스는 당일취소가 되지 않기에 꾸역꾸역 집을 나섰다. 가는 중에도 오늘은 유산소 하지 말고 필라테스만 해야지 생각했다. 늘 억지로 하는 유산소는 맞지만 오늘은 도저히 억지로라도 뛸 컨디션이 아니었다. 오십 분 수업을 마치고 센터에 마련되어 있는 건식 반신욕기에 20분 정도 몸을 맡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느낌이 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리가 시작되었다. 이 날씨에..? 진짜 눈치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집에 돌아와 제습모드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나와 알약을 하나 털어 넣었다. 워낙에 생리통이 심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에는 실신한 적도 있고 가게를 할 때에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거나 늘 아픈 허리를 쥐어짜고 견디는 게 부지기수였다. 이토록 생리통이 심한 나여서 생리가 시작되는 날은 그냥 하루를 날리는 날이나 다름없다.

마침 오늘은 비도 그냥 내리는 게 아니라 아주 세차게 퍼붓는다. 오전부터 어둑한 날씨가 계속되어 낮잠 자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못 이기는 척 침대에 잠시 누웠는데 눈을 뜨니 이 시간이다. 날씨 탓, 호르몬 탓으로 오늘하루 제대로 날렸다 싶다.


눈을 떠 핸드폰을 보니 나의 다정한 복숭아 알리미가 알려주어 오월달에 예약해 둔 복숭아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현관 앞에 놓인 복숭아를 집으로 가져온다. 상자를 열어보니 노오란 그물망에 쌓인 분홍빛 복숭아가 얼굴을 내민다. 겉면을 살짝 만져만 보아도 내가 좋아하는 물렁 복숭아 그 자체여서 먹기도 전에 흡족하다. 생각보다 작은 알 하나를 꺼내어 흐르는 물에 씻고 껍질을 벗기고 조각을 내 접시에 옮겨 담아 한 조각 맛을 본다. 장마가 일찍 시작해 맛이 그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세상에 이거 너무 맛있는데? 달콤하고 향긋한 복숭아가 입에 들어가니 하루를 날렸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다. 내일로 미뤄둔 일들 중 다만 조금이라도 해낼 마음이 생긴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안에서 보는 비는 좋아한다. 그치만 이렇게 무섭게 쏟아지는 날에는 그 어디에도 비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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