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림 Nov 23. 2023

우울 말고 우웅

 예전부터 나의 장점을 말하거나 쓰는 경우가 있다면 '낙천적,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라고 작성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내가 밝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저 밝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따금 갑자기 밀려오는 우울을 어쩌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고 그럴 때면 내 우울의 끝이 짧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대로 잘 넘기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우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전 직장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료가 내게 '우리는 다 좀 기본적으로 우울이 있는 사람이라...'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내가 그런가? 아닌데 나 밝은 사람인데?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자꾸 그 말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내 나의 기저에 우울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이따금 찾아오는 그 우울이 보통의 사람들에겐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게 또 우울이 찾아와도 별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받아들이니 오히려 조금은 편해지기도했다.


얼마 전 별안간 밀려오는 우울을 어쩌지 못한 채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믿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가만히 앉아 뜨개를 하기도 하고 책을 몇 장 들추기도 하다가 그래도 계속되는 우울감에 노트북을 켜 내 블로그에 무의미한 배설을 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블로그에 불특정 다수를 향해 떠들어대니 우울이 씻겨내려 것 같으니 나에게 우울은 기록성(?)이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 이유 없는 우울은 없지만 이유를 가타부타 늘어놓기는 늘 싫다. 우울의 이유를 나열하다 보면 어쩌지 더 우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우울감이 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나의 우울은 짧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한 번씩 이렇게 세게 올 때면 이 빈도수가 잦아질까 지레 겁이 나기도 한다. 우울할 때마다 블로그를 찾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배설하듯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다. 그러고 나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찾은 내 스스로의 정화법인듯하다. 나에게 정말로 우울은 기록성인가 보다.


어디선가 우울 말고 우웅이라고 하라는 짤을 본 게 기억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에게 '우울 말고 우웅해!'라고 한다면 장난하나 싶어 이마빡을 한 대 딱 때리고 싶겠지만 혼자 생각하며 스스로를 환기시키기엔 썩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탓을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이 또 땅굴을 파고파고 파고 들어가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으니 그만 우울 말고 우웅하자.



우리 모두 우웅합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날씨 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