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까?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강박증 관련해서 그냥 요즘 너무 힘들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사고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도 제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가장 심했던 건 군대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물자 관리에 대한 강박적인 걱정) 이런 강박사고가 나타나면, 저의 강박행동은 하나씩 서치를 해보는 거였는데 군수품 관련 해외 사이트, 화생방 신발 관련 논문을 찾아보기도 하고 이 신발이 부틸고무 재질인데, 부틸고무의 성질에 대한 서치도 하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벼운 문임을 직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뭐 결국 이런 행동들이 강박사고를 더 부추겨서 거의 일 년을 괴롭게 살았지만 전역하기 전에 상관에게 해당 고민들을 다 말하고 나니 괜찮았습니다. 약간 그 책임을 내가 아닌 이제 다른 사람이 진다는 사실이 저를 편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전역해서 괜찮아지는 병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전역 후 약 5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사소한 강박들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요즘 제게 큰 화두가 되는 것은 코로나입니다.
5월 초에 열이 나고 약간의 흉통이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날 1~2일에 밤을 새고 피곤해 몸살이라 생각하였고 병원에서도 약을 먹고 낫지 않는 경우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약을 먹고 바로 증상이 호전되어서 하루만 일을 나가지 않았고, 그 다음 날 부터는 일 하는 곳에 바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있다가 현재 6월초까지 흘렀는데 문득 불안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열이 나기 3~4일전에 동성애자인 친구랑 밥도 먹고 술을 마셨었는데, 혹시 그 친구한테 내가 감염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이었습니다. 5월 초 이태원 동성애자 클럽 발 코로나 감염이 이슈였기 때문에 문득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 친구가 이태원 클럽에 직접 방문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평소에 모르는 동성애자 사람들 다수와 술을 자주 먹는 친구였습니다.
물론 그 친구가 저랑 있을 때 코로나 증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혹시 이태원 클럽에 방문한 사람이, 친구랑 술을 마셨고, 리고 그 친구는 무증상 감염이었으며 나한테 코로나를 옮겼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척 불안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스스로의 감염이 불안한 것보다는 나 때문에 일터에서의 사람들이나 모르는 타인에게 내가 코로나를 전염시킨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제일 불안했습니다. 지금 한 달 동안 근처에 코로나 환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혹시 그들이 무증상으로 감염이 되어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거고, 나중에 폐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불안합니다.
요즘 해야 할 일도 정말 많은데 이러한 걱정과 불안이 항상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습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어떻게 사고하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이 그립습니다. 요즘에는 그래서 이런 가치판단을 전문가에게 외주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제게 와서 '그럴 확률은 없어! 걱정하지 마!'라고 하면 긴장이 완화되지만 친구들과 같은 비전문가의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발 전문의가 내게 이런 말을 해달라는 심정으로 지식인에 비슷한 글을 올렸지만 답변이 달리지 않아 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도 어쨌든 예과/본과/인턴/레지 전부 하신분이고 의학에 대한 지식이 저보다 훨씬 많으시기 때문에 선생님께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는 어떤 조치를 취하면 좋을까요? 이제 헷갈리는 것이, 사실은 이게 감염위험이 실제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지금 내가 근처의 사람들을 붙잡고 '나 그 때 혹시 코로나 였을 수도 있으니까, 코로나 검사 꼭 받아보고 지인들한테도 그렇게 전해.'라고 말해야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 주위는 너무 평화롭고 미친놈 취급할까봐 괴롭습니다.
유투브에 북극곰 예시를 들며 생각에 가치판단을 하지 말라는 동영상을 보고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넘어간 생각이 사실은 타당한 생각들이었고 그 생각 때문에 내가 남을 해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전문가 집단에 가치판단을 맡기고 그냥 저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익명 댓글에 나눠야할 고민의 성격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그저 머리가 아파서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서 댓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살짝 기미가 있었는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 이런 사고들이 제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 너무 괴롭네요. 좋은 글, 좋은 영상 항상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료상담이 아닌 고민상담을 나누는 장소인데 이런 댓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적어주신 사연에 원치 않는 생각들이 과도하게 떠오르는 강박 사고와, 이러한 생각과 그로 인한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한 행동들인 강박 행동들이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나 양상을 들여다보면 혹 불안장애의 양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이 둘 모두 생물학적인 원인과 치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질환 군이니 정확한 진료와,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를 받아 보시기를 말씀에 앞서 우선 권해드립니다.
저는 사연자님께, 사연자님 께서 하시는 걱정이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합니다. 그 생각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글쓴이님께는 그 생각들이 공고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생각 관해 우리가 현재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친구분께서 어떤 코로나 진단력이나 증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사연자분께서도 잠깐의 감기기운 이외에 약 한 달 이상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사연자분께서는 '100% 완벽하게 괜찮은 지'를 반복하여 확인하시는 중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반복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확인되어야지만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실 것입니다.
저는 그 방법이 옳다,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를 따져보진 않을 것입니다. 단지 그 방법이 '실제로 사연자분께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지'를 논해보고자 합니다.
사연자분께서는 불안을 없애는 방법으로 완전히 괜찮은지를 분석하시는 방법을 사용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불안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잘못은 아니고,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는 완벽히 생각이 괜찮은 방향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생각에 빠져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단지 저는 그 방법이 현실에서 잘 통하지 않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100% 완벽하게 괜찮은 순간이나 상황을 잘 선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집에 가는 길에 급작스레 기침이 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기침은 일시적인 재채기일 수도 있고, 알러지 때문일 수도 있고, 가벼운 감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고 100% 완전히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루를 보내며, 혹은 근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직장에서, 길 위에서,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명의 확진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코로나 뿐 아니라, 급작스레 다른 큰 병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보다 더 높은 확률로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결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삶은 늘 불확실의 연속이기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끝없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여 괜찮은 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잘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의 패턴이 틀렸다거나 문제이니 고쳐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디 기대했던 불안의 완화라는 효과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생각은 틀렸어 라거나 그러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억지로 생각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한다면 마음은 반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이렇게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불안이 없어지는 것이라 굳게 믿어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그만해야 해 라고 강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마음은 더욱 더 그러한 생각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북극곰 실험은 누르면 누를수록 더 떠오르는 우리 마음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실험에 대해서는 https://blog.naver.com/dhmd0913/221603057176
를 참고해 주세요.) 그렇기에 저는 마음에 드는 생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몰입하는 대신, 그러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그저 알아차리는 방법을 제안 드립니다. 어떤 생각에 대해서 맞고 틀린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와 같은 생각을 덧붙이며 그 생각들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대신 '아, 지금 코로나에 대한 생각이 나는 구나, 불안한 감정이 찾아왔구나. ' 라고, 담담히 마음을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알아차려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 두면 서서히 흐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크게 화가 나 싸울까 망설이다가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러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조금 사그라들었던 경험이 있으실까요?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나 감정을 붙잡고, 분석하고, 원인을 찾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생각이 더 떠오르도록 하고 불안을 증폭시키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떠오르시는 생각들에 대해 완벽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시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저 바라보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를 알아차려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말씀하신 그 생각들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은 내 생각이 맞아서 혹은 틀려서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생각들이 반드시 결론지어져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다가옵니다.
틀린 마음,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각들이 반드시 결론지어지는 것은 아니고, 꼭 그래야할 이유나 필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를 땐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마음에 들어온 그 생각과 감정이 천천히 흐려질 수 있는 시간을 주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서두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생각이 떠오르는 정도나 불안감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고려해 보시기를 함께 권해드립니다. 비록 떠오르는 의문에 완벽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을 지라도, 그 의문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소소한 행복이 함께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s://blog.naver.com/dhmd0913/221344630586
https://blog.naver.com/dhmd0913/221898054885
고민 댓글)
https://blog.naver.com/dhmd0913/221723887847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