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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ul 06. 2020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환상입니다.

완벽할 수 없는 삶, 완벽할 수 없는 관계, 그리고 미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잘못되거나 미숙한 것일까,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할까, 좋은 관계란 모두가 추구해야 할 절대선 일까.




  북토크 후 한 독자님으로부터 미움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혐오가 화두인 시대, 심리학적, 철학적으로 미움에 대한 현학적인 논리를 펼치는 글은 이미 세상에 차고 넘친다. 북토크를 와주실 정도로 독서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라면 수없이 그에 대한 글을 접하셨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러한 말씀을 주신 것은 조금 더 사람냄새 나는 미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을 거쳐 갔던 미움들을 먼저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종류의 미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발견할 때’ 발생하는 미움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혐오하고, 외면하려 한다. 그러한 부분이 타인에게서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 분노하고 그를 미워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신에게 가혹하다. 사랑하는 연인, 친한 친구에게는 쉽게 건넬 수 있는 “네 잘못이 아니었어.” 란 따뜻한 위로를 나 자신에게는 건네지 못한다. 곧잘 머리로는 억지로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지만, 깊은 속마음으로 그 위로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세상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 보다 가혹한 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자기 자신을 다그쳐 이를 고치거나 교정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우리는 자신을 안아주기보다는 자책하고 몰아세우는 데 익숙하다.


  우울, 불안, 나태, 꼼꼼하지 못함,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 의지의 부족 ... 우리는 ‘이것만 아니면 내 삶이 이렇게 형편없진 않을 텐데, 이런 것들은 내 마음속에 존재하면 안 돼, 이런 것들이 있는 한 나는 비정상인,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라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마음을 몰아세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소중하다.’ 라는 아름답지만 공허한 메시지가 범람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싫어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에게 곧잘 화가 난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는 명제는 너무도 당연하고 흔하지만, 이렇게 흔한 문장조차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에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아까 도대체 내가 왜 그랬지? 왜 바보같이 그런 실수를 했지?, 그 말은 했으면 안됐고,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됐었는데.’ 두루뭉술하게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도 막상 완벽하지 못한 자신이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무엇에 대해 자책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와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자신의 마음과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완벽하지 못한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 내가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타인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에 갈등이란 완전무결하게 옳은 한 사람과 처음부터 끝까지 틀려먹은 다른 이가 만나서 발생하는 100퍼센트 한쪽 과실의 사고가 아니라, 나의 미숙함과 그의 불완전함이 공명하는 것임을.


  그러나 우리는 각자 자신의 관점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기에, 갈등의 상황에서 나의 입장은 너무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면 상대는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미숙하게 보인다. 나의 세계를 이루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가 나를 대할 때. 그로 인해 나의 삶에 예측할 수 없던 균열이 발생한다. 균열은 통제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져 불쾌감을 유발한다. 조심조심 쌓아올리던 모래성 같은 나의 삶을 무심코 짓밟아 허무는 누군가가 어찌 밉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나의 갈등의 순간에서 나의 불완전함을 망각한 채 상대의 흠결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 흠이 내가 싫어하는 나의 일부를 닮았다면, 혐오는 배가된다. 이러한 미움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란 사실 그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야속한 그 사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이란 거대한 슬픔의 조그만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떡하자는 것일까. 원래 관계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그러한 속성을 받아들이고 힘든 마음도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그렇게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미움을 억누르기 보다는, 미움으로 인한 분노가 끓어오를 때 마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도록 권하고 싶다. 우리가 정말 미운 것이 그 사람 자체인지, 아니면 관계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인지, 담담히 짚어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마음은 미래, 혹은 관계와 같이 내게 온전히 달리지 않은 것들을 온전히 통제하기 위해 매번 안간힘을 쓰고 또 좌절하곤 한다. 관계의 아픔으로 눈물짓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일임을 알려주면 어떨까. 갈등이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라거나 무언가가 잘못된 결과가 아닐 지도 모른다고 조곤조곤 알려주면, 미움도 조금은 옅어지진 않을 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으로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그로인해 힘든 마음 까지도 자연스런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를 자문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힘든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틀렸다거나 내 삶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지, 내 삶과 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싫은 누군가를 무리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다. 외려, ‘어떻게든 이러한 마음을 매만지고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혹은 나의 필요에 따라 담담히 관계를 이어가면 어떨까. 그를 분석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이라 규정하려 들거나, 억지로 관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나 자신을 잃는 대신 그저  함께 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해 낼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 지에 대해 마음의 시선을 두면 어떨까.  미움을 어찌할 바 몰라 혼란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거나, 그 시간이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 직장에서의 관계나 사업 상 만남과 같은 후자의 관계를 시작하는 데 취향과 가치관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잘 맞지 않는 이를 만났을 때 종종 미움이 싹트곤 한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과 상관 없이 자연스레 그럴 수 있다. 어그러진 관계는 완벽해야 할 내 삶이 무너져 내리는 신호가 아니라, 단순히 그와 내가 잘 맞지 않음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또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상상 속의 좋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은 내려놓자. 단지 미워하는 나, 미움 받는 그, 우리 모두는 서로 더 나을 것 없는 그저 그런 사람임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그러고도 미우면, 차라리 실컷 미워하자. 질리도록 미워하다 보면 미움도 질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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