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의 유일한 희망이던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저는 예전 마음이 아픈 문제가 생겨 휴직을 하고 복귀한 뒤 한동안 괜찮았다가 점진적으로 회사 스트레스가 생겨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올해 초부터는 상담 및 약 복용도 하고 있습니다.

계속 회사에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이 높았지만 유일한 낙은 남자친구와의 연애였는데 최근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서로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불안 및 우울이 증폭되었습니다. 회사도 못나갔고 계속 울었습니다. 일이 하나도 재미없고 억지로 열심히 하다 보니 일에 대한 의미는 사라졌고 지금 남자친구와 오래 잘 지내다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유일한 의미라고 생각하고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각이 없고 경제적인 이유로 당장 내년 내후년까지도 결혼이 어려울 것 같으며 결혼 상대자로 저는 강인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서로 생각하는 시기를 갖고 있습니다.

(중략)

갑작스러운 이별도 충격이고 힘들고 회사도 나가기 싫고 일도 많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일은 더 많아지고 바쁠 예정이라 사소한 일도 저에게 너무 버겁게 느껴집니다. 삶의 의미도 재미도 잃어버렸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지만 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헤어짐을 통보 받은 후 상담도 받고 병원 가서 약도 받고 친한 지인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더 이상 계속 울지는 않지만 일어나면 슬픔이 밀려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버티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퇴사하고 싶지만 이직도 자신 없고 백수가 될 것 같아 그만두지도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약을 먹어도 불안이 마법처럼 확 사라지지도 않더라고요. 로또가 되서 퇴사하고 쉬고 싶다는 헛된 생각만 듭니다. 명상을 하던 중이었는데 명상도 하기 싫고 절에 가서 가끔 기도도 하지만 근본적인 불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일을 하나도 안했지만 하루 종일 불안만 느끼면서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아요. 모든 걸 초월하고 싶고 회사도 그만두고 싶고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네요. 막막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막막함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마음에 제가 조금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아닌 지 고민되지만, 아무쪼록 조금이나마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기 힘든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봅니다.

글을 읽으며 제게는 어쩐지 사연자분께서 ‘지금의 힘든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원’ 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이직이든, 결혼이든, 혹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든, 어쨌든 지금의 이 힘든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극적인 계기를 기다리시고 있고, 그 계기가 올 때 까지 지금의 삶의 고통과 슬픔, 불안을 견디고 버텨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한 번 뿐이고, 또 누구나 처음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에 구원, 무조건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부부가 결혼 전 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기대하며 혼인 신고를 하지만, 결혼 생활은 새로운 삶의 단계가 열리는 것일 뿐, 지금까지의 불행이 종결되고 새로운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삶의 국면, 어떤 시기에도 무조건적인 구원, 행복만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슬픔과 기쁨은 늘 혼재되어 있으며, 삶의 행복이란 어떤 순간이 오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프고 힘든 속에서도 소중함을 찾고 느끼는 것에 가깝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의 순간을 고대할수록, 그와 대비되는 오늘의 마음의 슬픔은 더욱 짙게 느껴지고, 그렇게 기다렸던 삶의 순간이 기대했던 구원과 행복을 안겨주지 않을 때, 마음은 한 번 더 좌절하게 됩니다.

사연자분이 지금 현재를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이유 중 하나가 불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은 우리 마음 속 위험 신호이고, 이 신호가 발생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지금 처한 환경으로부터 도피하거나 그 환경을 개선해야 할 것만 같다는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맹점은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마음은, 지금 현실이 실은 그렇게 위험하거나 두려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과거와 지금의 현실과의 연결점’ 때문에 심한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연결점은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고, 이성적 수준에서는 잘 모르는 무의식 수준에서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즉, 나의 삶, 과거의 경험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심한 불안에 사로잡힐 수 있고, 그 때문에 현재 처한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욕구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향은 ‘이렇게만 되면 행복해 질 것이라 가정하는 순간’이 현실이 되더라도, 또다시 예측하지 못했던 불안을 마주하며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연자분께서 우선, 결혼이든, 이직이든 지금의 불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구원과 같은 미래의 순간’ 만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마음이 있진 않은 지 되짚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현재의 삶을 어떻게든 벗어나 미래의 상상속의 행복만을 그리는 대신, ‘지금, 여기’ 의 삶을 사랑하고 지금의 내 자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찾으시면 좋겠고, 그 방법으로 이를 가로막고 있는 불안의 근원을 먼저 거슬러 올라보고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분께서 지금의 삶을 견딜 수 없는 이유, 어떻게든 지금의 삶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형성되어온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그러한 마음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되짚어 보고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은 결코 편안하거나 쉬운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잊었던 슬픔을 헤집는 아픔이 밀려오는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마도 혼자서는 너무 험난한 길일 지도 모르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약으로 일어나는 불안을 잠재우는 것을 넘어 지금의 내 마음이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지,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지 찬찬히 되짚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홀로 너무 버겁고 막막하시다면 주치의 선생님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습니다. 만약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하루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버텨내는 것이 아닌, 그 미래를 향하는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를 통해, 어떻게든 지금 현재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오늘, 지금, 여기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는 마음으로 이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연자분의 마음에 미래에 다가올 구원에 대한 갈망 대신, 지금 여기에서 스미는 작은 평안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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