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별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고 저도 남편도 너무 젊어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아이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되니 괜찮은 척 하지만 아이가 없으면 아무 생각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죽는건 쉬운 데 사는 건 어렵네요. 아이 생각, 제 생각 막 뒤엉켜서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그런다 정말 괜찮기도 하다가, 막 눈물이 났다가, 먼저간 그 사람이 밉기도 하다가, 불쌍하기도 하다가
밥먹고 있는 내가 경멸스럽기도 하고.. 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가 정해주면 좋겠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어떤 말로 사연자분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막막함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은 억지로 이제는 잘 지내야지, 괜찮아져야지 라고 해서 괜찮아 질 만한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사연자 분에게 억지로 괜찮기 위해 노력하기에 앞서, 괜찮지 않은 시간도 필요할 지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사별을 경험한 마음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압도적인 슬픔과 막막함 같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부터 그 죽음이 내 탓만 같고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같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음들 까지, 겪어본 이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으로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그러한 마음에 대해 세상은 상식적이고 합당한 조언을 하곤 합니다. ‘언제까지고 슬픔에 빠져있으면 안 된다.’ ‘아픈 마음은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이를 봐서라도 힘을 내라.’
생각과 감정 어느 하나 정리할 수 없었던 마음에게 어떻게, 어떻게든 살아갈 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버거운 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만을 생각하며 노력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앞서 외면하고 싶기만 한 마음의 아픔과 충분히 만나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사연자분에게는 잘못이 없고, 누구의 탓이 아닌 슬픔도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당연함조차 마음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지로 괜찮기에 앞서, 충분히 괜찮지 않게 지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남몰래 마음 닿는 한 우셔도 좋고, 애써 모른 척 하던 그 분에 대한 생각과 마주해 보셔도 좋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지금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오늘을 어떻게 보낼 지 만을 애써 고민하시기 전에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단순히 매일 매일을 눈물로 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시간만 흘려보내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커다란 충격과 아픔이 삶의 순간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시간이라기보다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일로 인한 아픔을 충분히 쏟아낼 시간일 지도 모릅니다. 먼저 자리를 옮기신 그 분에 대한 그리움도 충분히 느끼고, 외면하고만 싶었던 그 일이 어떤 일이었고 그로부터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마음이 충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시간일 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꼭 해야 하느냐면,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냐 물으신다면,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살아오셨던 대로, 아이와 함께 살아가시기 위해 필요한 일상을 이어나가시길 바라고, 가끔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 나는 행복하지 못할지도 몰라, 나 혼자 밥 먹고 살아가도 되는 걸까' 와 같은 생각이 찾아오는 순간들에 대해서 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찾아올 땐 있는 그대로의 그 문장에 빠져들거나 이러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 하기 보다, '그만큼 지금 내 마음이 힘든가 보다, 그만큼 그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이에 몰입하는 대신 이러한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직장일, 집안일, 혹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러 가는 시간과 같은, '생각속이 아닌 현실속의 삶' 을 살아가시길 권해드립니다.
홀로는 외면하던 감정을 마주하기가 지나치게 어렵고 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크시다면 정신과 진료를 비롯하여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셔도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구해서라기보다, 경험하시는 혼란함, 막막함,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시면 좋겠습니다.
내리는 빗속에서 해를 상상하긴 힘들지만 그 순간에도 구름 뒤에 해는 빛나고 있습니다. 충분히 아파하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또 안아주다 보면, 잊고 있었던 삶이라는 해가 아주 조금씩, 스스로 빛을 발해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괜찮을 수 없는 지금, 그 괜찮지 않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안아주시다 보면 억지웃음이 아닌 진심어린 괜찮음과 만나는 순간이 다가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다 문득 지금의 나날들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일상이 사연자분에게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P.S.
저 역시 한 명의 부모로서, 나의 아픔에 앞서 아이를 생각하시는 그 마음이 너무도 와 닿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감정을 보여주시려는 그 마음도 응원 드리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노파심이 되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드리려 합니다.
사연자분만큼이나 소중한 아이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 만큼이나, 어쩌면 어른들 이상으로 당황했고 또 버거워하고 있을 지도 모르고, 어린 마음이지만 힘겨워하는 엄마를 보며 충분히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
요즘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슬픔은 예민함, 짜증과 같은 불안정한 기분, 식욕이나 수면의 변화 같은 생리적 변화 등으로 곧잘 표현이 됩니다. 놀이 패턴이나 친구 관계 양상에서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혹 그러한 양상이 있다면 아이와 사연자분이 함께 전문적인 진료를 받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사연자분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리시기도 어려운 이 시간들에 나 자신보다도 아이를 먼저 생각하시는 그 마음은, 분명 아이에게 차곡차곡 쌓여, 아이의 평안과 행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