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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본다는 것, 진정으로 ‘지키고’ ‘보아준다’는 것.

힘든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사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생님이 떠올라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해줘야 나쁜 생각을 갖지 않고 좀 더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제 친구는 표면적으로 보면 강해 보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에서 자라 아무 걱정없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가 생각보다 마음이 정말 여린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자신의 속 얘기를 하지 못하고, 해봤자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라는 말을 들어서 이제는 아예 얘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아요.


다행히도 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입니다. 정확히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가 말할 때 눈빛, 말투, 표정을 보면 지금 정말 힘든 상태라는 게 느껴져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안쓰럽고, 항상 옆에 있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저도 너무 슬프고 힘들어요.


저는 그 친구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항상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그 친구의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멋지다'라는 말을 자주 해줍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바라는 건 특히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이기 때문에 저의 이런 말과 행동은 그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저에게 '너무 힘들다',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 이런 말을 했는데, 진심인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매일 아침 잘 잤냐는 문자를 보내요.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대화를 나누고요. 이제는 그 친구에게 '힘내'라는 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잔인하고 더 힘들게 하는 말인 것 같아 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쉬엄쉬엄해~'라는 말로 대체해 말해요.


며칠 전에는 공황장애가 오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가정의학과를 가보라고, 혼자 가기 힘들면 같이 가주겠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그런 상태인 걸 인정하기 싫어서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심해지면 가겠다고 하면서요. 엄청 가까이 살고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주중에 할 수 있는 건 이런 연락뿐이고, 시간이 되면 주말에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친구에게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줘야 하나요?


선생님,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절주절 말씀 드리다보니 두서없이 말씀 드린 것 같아 죄송해요. 친구에게 아무것도 안 해주자니 불안하고, 무슨 말을 하자니 조심스럽고 제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친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과 원장 이두형입니다. 적어주신 글에서 친구를 생각하시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 전해집니다.


사연자분께서 생각하시는 도움이란 아마 이런 것 같습니다. 친구 분께서 겪으신 과거의 아픔을 모두 치유할 수 있고, 혼란하고 슬퍼하는 그 마음을 종결시켜 줄 수 있고, 겪고 있는 증상이나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저는 그런 도움을 사연자분께서 드릴 수는 아마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삶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것으로, 타인이 어찌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특히나 가족, 어린 시절의 상처,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마음속의 아픔을 타인이 ‘없앨’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라는 반문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가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과정,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그의 곁을 ‘지켜’준다는 것, ‘보아’준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누군가를 위한 가장 진솔하고 소중한 도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하는 이의 아픔에 공명하기 때문에, 그의 힘겨움이 나의 힘겨움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따뜻한 말로, 특별한 해결책으로 그의 슬픔을 없애주려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고, 그 앞에서 답답하고 불편해지는 나를 보며 상대방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가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픔이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관점입니다. 그의 아픔은 몇 주, 몇 달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 평생에 걸친 깊고도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마음이 힘들 수 있고, 누구나 잘 살아가다가도 불현듯 오래된 상처가 떠올라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보듬어주는 것은, 그를 ‘좋게’ 바꾸려는 시도보다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가 힘들어 할 때도 행복해 할 때도 일관되게 그의 곁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위로의 말이나 행동보다도 깊은 진심으로 그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도 더욱 힘들지만 가치있는 위로입니다.


다만 친구 분께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지나치게 사연자분께 기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사연자분께서 그러한 마음에 부응하고자 지나치게 그 분의 마음을 치유하려 하시는 건 아닌 지 기우가 듭니다. 나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에 경계가 정확할 때, 그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되 동감, 즉 똑같은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때 그에게 가장 깊고 진심어린 관계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 너무 친구분의 마음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 한 번만 돌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친구분께서는 힘들 때 사연자분을 찾으시고, 가족에게도 하기 힘든 깊은 이야기를 사연자분께 나누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연자분이 친구분에게 그만큼 소중한 관계이며 큰 힘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러한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친구분은 깊이 위로를 받고 계실 것입니다.


친구분께서 모쪼록 평안과 행복을 찾아가시기를 바라고, 두 분의 관계가 서로의 행복을 향해가는 큰 힘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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