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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Nov 06. 2023

'힘들지만은 않기'가 가장 힘든 것

'불행한 나의 행복'을 피워내 보기를 권유하는 정신과 의사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저는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힘들지 않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러한 말의 아래에는 행복이란 바라기 힘든 욕심인 반면 '힘들지 않는 것'은 그보다는 더 쉽고 덜 무리한 소망이란 전제가 있다. 


이 전제에서 행복은 비일상적이고 특별한 기쁨으로 간주된다. 이를 테면 사업에 성공하거나,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게 되거나, 건물을 소유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무런 걱정 없이 살 때 주어질 수 있는 사치품이다.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먹고 살 걱정은 없거나, 가족 관계는 원만하거나, 형편이 주위 사람보다는 더 나은 등 일정 이상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동경하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은 꿈 같은 느낌이다.


이에 비해 힘들지 않은 것은 행복에 비해서는 일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힘들다는 것은  반대로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고민이 있거나, 취업에 반복적으로 실패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등 일상에서 벗어난 일들로 인하여 주어진 비정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에 따르면 힘들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것은 단지 일상적이고 '평범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힘들지는 않다는 것은 행복이라는 '특별한 좋은 상태' 을 바라는 것에 비해서는 소박하고 검소한 바램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을 공부하고 진료경험을 쌓아가며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행복하기' 보다 '힘들지만은 않기' 가 훨씬 더 어렵고 또 무리한 소망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뉴스를 열면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밀실에서 마약을 한 기사가 나오고, 건강과 부를 거머쥔 스포츠 스타가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다 추문에 휘말려 있다. 죽을 때 까지 먹고 살 걱정이 없을 유명 전문가, 사업가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아귀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금술이 좋기로 소문났던 유명인이 헌신적이고 현명한 배우자를 뒤로 한 채 외도를 하다 파국을 맞기도 한다. 


꼭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예가 아니라도 좋다. 정오의 번화가를 오고가는 수 많은 사람들, 깔끔한 셔츠을 차려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웃으며 지나치는 그들이 겉으로 번듯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미래에 대한 막막함, 대인관계의 고민, 과거의 아픔 과 같은 마음의 고됨이 티끌 하나 만큼도 없는 사람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학대의 상처, 사별, 트라우마 는 물론이거니와 건강의 악화, 노후에 대한 부담, 가족간의 불화, 생계의 어려움 ... 마음의 평온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을 대자면 책 한 권을 가득 채워도 모자랄 정도다. 직장 동료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서, 가족 간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심지어 급작스레 스산해진 날씨 때문에 와 같이 좀 더 사소한 이유들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독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납득하기 힘든 미미한 이유들 만으로도 우리는 쉬이 외롭고 공허하며 불안해진다. 


따로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조물주가 존재한다면 '굳이 태어나기를 선택한 적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를 왜 이토록 불행이 허덕이게 두십니까?' 라 항변하고 싶은 억울함이 들기도 한다. 이 생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시점에는 깨닫게 된다. 불완전한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리하여 심적인 고통이란 얼마나 만연하고 또 흔한 것인지를, 그리고 '어느 정도의 불행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것' 이 삶의 본질임을. 




한 편의 에세이로 쓸 만큼의 특별한 스토리는 아니었으되 내게도 '딱 흔한' 만큼의 고된 마음의 굴레가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정의 지속을 위협할 것이란 두려움, 오래된 관계가 파국으로 끝났을 때의 절망감, 공부든, 맡은 일이든 잘 해내지 못하면 삶의 토대가 망가져버릴 것이란 불안 같은 것들이다. 


이들이 주는 괴로움의 굴레로부터 온전히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정신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인턴을 마치고 과를 택할 때의 마음을 돌아보면, 정신과 수련을 하면 모든 생의 고통에 대해 통달하여 평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었다. 마치 니체가 이야기하는 초인이라도 된 듯, 불편한 생각과 감정들로부터 비로소 해방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었다.  


그러나 삶과 마음에 대해 공부하며 깨달은 것은 불행을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이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이 왜 문제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불편한 것들이 내가 잘못되었다거나 앞으로의 삶이 잘못될 것이란 신호가 아니라 단지 모든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상적인 일임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일부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추구할 수 있는 나름의 행복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원리를 이해하며 나는 힘든 것들의 소멸 보다는 조금 더 쉬운 것들을 하나씩, 그 때의 최선으로 행해가기로 했다. '힘들지만은 않는 것'이란 가장 어려운 것을 추구하는 대신, '불편하고 버거운 것이 가득한 삶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들, 나를 조금 더 나은 나로 인도하는 것들' 을 찾고 또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예컨대 열이 올라 칭얼거리는 아이를 밤새 돌본 후의 출근길이 졸리고 고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첫 환자분을 뵙기 전에는 거울을 보고 미소를 괜히 지어본다. 개원 초 때 보다 2.5배 이상 급등한 이자, 그리고 세금 지불 시기가 겹쳤을 때 어떻게 슬기롭게 통장의 위기를 극복할지 고민하는 날일 지라도, 동시에 일요일 모처럼의 가을 나들이를 가창 카페의 은행나무를 보러 갈 지, 첨성대에 만개한 핑크뮬리를 보러갈 지도 함께 떠올려 본다.


걱정되는 환자에 대한 고민을 애써 무시하는 대신 연구 집담회 증례토의에 참석한다. 저출산, 무출산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될 때는 기부든, 저작이든 강연이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이어가 본다. 주식이며 부동산으로 부모로부터 평생 먹고 살 걱정 없는 시스템을 물려받은 아이들 기사를 접하며, 고된 삶을 마냥 시작하게 것만 같은 원초적인 미안함이 아이들에게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어떻게 소소하고 소중한 행복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 삶인지를 놀이공원에서 느끼게 해주려 한다. 




나와 진료를 이어가는 환자들의 변화 역시 그런 것이다. 지난한 이혼의 과정에 있는 이가 결혼 전의 추억이 가득했던 카페에 결혼 후 처음으로 들러 홀로 된 소박한 평온을 느껴 보기도 하고, 때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도 예정대로 차분히 준비하여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를 찾는다. 수십여 번의 면접 결과가 시원치 않아도 오늘은 또 그 다음의 면접을 준비하는 이도 있다. 


소송이 승소하여서, 바라던 시험에 통과하여서,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그러한 순간들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딴 것들이 뭐가 중요해.' '아무리 노력해봤자 결과는 뻔할 거야.''앞으로 네게는 이러한 불행들이 찾아올 수 밖에 없어.' 라 끊임없이 두렵고 불편한 느낌들이 밀려오더라도, 필요하다면 약의 도움을 받더라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꾸준히 우리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상을 건져낼 것이다. 


그러한 원리를 따라가며, 어떻게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을 지에 대해서만 되새기던 환자가 스스로에게 음악 한 곡 만큼의 여유를 선물할 수 있게 된다. 이혼으로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안겨 주었다는 자책만을 반복하던 환자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공장 견학 방법을 찾아 다녀온 사진을 보여준다. 하나 하나가 불행 속에서 피어난 들꽃 같은 기적이다.




행복 같은 사치는 바라지도 않으니 힘들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그 간절한 기도가 잘 듣지 않았던 이유는, 실은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는 것이야 말로 사치요 욕심이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행은 삶의 본질이자 일부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기도의 원리 자체가 잘 작동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고 또 안아주기 시작하면, 어쨌든 '어쩔 수 있는 것'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안이 멈추면 비로소 행복의 여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행이 일상처럼 함께 하더라도, 그래도 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라 느끼게 해주는 작은 의미들을 모으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행복의 원리였다. 


지금 버겁고, 슬프고, 지친 당신에게도 꼭 그러한 순간이 깃들기를 바란다. 불편하고 힘든 것을 어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무리한 부담과 강박은 당신의 마음에서 덜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여유만큼만 당신이 사랑하는 풍경을 찾아 나서거나, 늘 미루어 왔던 그 일을 다시 시작해 보거나, 흔들렸던 시간들 내내 당신을 지켜봐 주었던 소중한 이에게 새삼스레 고맙다는 말을 전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권한다. 불안한 그대로 나름대로의 소중한 순간들. '불행한 나의 행복'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창 밖에는 쓰는 몰입을 깨트리지 않을 정도로만의 비가 내리고 있다. 늦은 가을이라 습하지 않게 빗줄기의 질감이 전해진다. 어울리는 음악을 이 순간에 꼭 덧입혀주고파 고민하다 유튜브에 '비 내리는 날 어울리는 재즈 음악' 을 검색해 본다. 이름 모를 타인의 취향이 충분히 귀에 달다. 이토록 사소한 기쁨과 설렘, 행복도 가능한 것이 삶이다. 


이를 느끼며 새삼스레 완벽하게 괜찮은 순간, '행복할 필요까지는 없으니 불행하지는 않은 순간' 따위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차피 살아왔던 내내 그랬던 것처럼, 불행할 테면 불행해 보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내게는 재즈 한 곡, 무던히 비가 내려앉는 늦가을 밤의 선선함, 한 줄 한 줄 쌓여가는 글의 운치 따위도 늘 함께할 것이니.






P.S.

글을 쓰다 보니 '왜 이렇게 불행이 허덕이도록 우리의 삶을 설계하였습니까?' 라 항변하던 내게 어쩐지 조물주가 '그러한 불행이 없었다면 네가 그런 사소한 행복의 순간을 알아볼 수 있었겠느냐.' 라 답하는 것만 같다. 




https://blog.naver.com/dhmd0913/223179745248

https://blog.naver.com/dhmd0913/222929008059

https://blog.naver.com/dhmd0913/2215022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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