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의 관점으로 보는, 화를 낸다의 진짜 의미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화를 내면 싸움만 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면 선생님도 화가 날 때가 있으세요? 어떻게 하세요?'
'그럼요. 저도 화를 엄청 내죠. 단지 화를 내는 기준이나 방법은 조금 달리 해요.'
격정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과정을 우리는 '화를 낸다' 라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화는 이성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되기보다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으로 분출된다. 예컨대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을 험한 단어를 내뱉거나 폭력을 행사할 것 처럼 위협적인 신체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외부로부터 위해가 가해질 때, 생명의 위협을 벗어날 때' 유용한 대응이다. 위기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 사고를 거쳐 행동하는 것은 '느려서' 위험하다. 사자가 나를 잡아먹으려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데 '저놈이 시속 몇 km로 어떤 방향으로부터 달려오니 어떤 각도로 피하면 살아남을 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 대번에 잡아먹혀버릴 것이다. 생각할 틈이 없다. 반사적으로 도망치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
화를 표출할 때와 위기에 대응할 때의 반응이 비슷한 이유는 같은 신경과 호르몬 반응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 상황은 심리적으로는 대응해야 할 위기로 인식되어 종종 불안과 두려움의 홍수를 동반한다. 참을 수가 없어서, 관계의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이 말은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혹은 그러한 의식적인 과정이 끼어들 틈 조차 없이 격렬하게 '심리적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이 화를 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눈 앞의 상대를 제압하거나 서둘러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할 것 같은 강박, 두려움이 그 아래에 내재되어 있다. 그 찰나를 살펴보면 지나고 나면 후회될 감정이나 발언, 행동을 '무엇엔가 홀린 듯이' 뱉어내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맹목적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가할때 처럼 몇 몇 상황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유효한 효과를 낼 때도 있다. 끓어오르는대로 지르고 나면 해야만 하는 말을 했다, 참지 않고 감정을 전달했다는 일시적인 후련함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을 때나 친구와 엉킨 오해를 풀어갈 때, 배우자와 가치관 차이를 경험할 때나 예민하고 불합리한 상사 혹은 고객을 대할 때와 같은 일상적인 화의 순간들마다, 본능이 이끄는대로 육체적이고 격정적인 대응을 한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사소한 시비로 분을 참지 못해 폭력을 휘둘러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거나, 손님의 비난에 충동적으로 달았던 답글로 인해 생업과 생계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오해로 시작된 말싸움이 폭언으로 번지며 돌이킬 수 없이 부부간 갈등이 격화되기도 하고, 경솔한 언행으로 주위로부터의 평판이 저해될 지도 모른다.
화를 느끼는 상황에 대해 이러한 직관적인 반응들은 이득 보다 손해가 될 때가 더 많다. 달리 말하면 격렬한 육체적, 감정적 반응 보다는 침착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대응을 요한다. 이러한 본능과 현실의 괴리로 인하여 화를 내는 행위는 종종 오히려 역효과, '화가 내어지지 않고 더 쌓이는 결과' 로 이어진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충동의 조율이 어려워 진료실을 내원한 이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화에 대해 충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단지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조가 클 뿐이다.
그 악영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기에 차선책으로 사람들은 화를 무작정 참기도 한다. 끓어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이 용인되지 않고 부적절한 것을 모르진 않기에 참고 삭히며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렇게 견디어진 화들이,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너무도 많다. 충분히 해소되거나 다루어지지 않은 마음들은 고스란히 깊이 남아 감정의 응어리로 쌓이고 고인다. 이로 인해 이유 없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거나, 과도한 긴장과 예민함, 불안의 근원이 되거나, 사소한 계기로도 화산이 터지듯 분출되기도 한다.
이렇듯 터트릴 수도 없고, 마냥 참을 수도 없는 화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딜레마에 대해 나는 수용전념치료와 맥락행동과학의 근간이 되는 '실효성'이라는 단어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다. 나는 화를 참지 않고 열심히 낸다. 단 내가 정의하는 '화를 낸다'의 의미는, 그 불편함을 표출하는 본능적인 행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나는 화를 느낄 땐 차를 몰고 벚꽃과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룬 드라이브 길을 찾아 나선다. 자정께 집을 나서서 일탈처럼 24시간 국밥집의 국밥을 한그릇 비우기도 한다. 잠든 딸의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아이의 머리를 쓸기도 하고, 밝은 통찰을 얻었던 책을 새삼스레 다시 펼쳐보기도 한다. 무의미한 생각이 반복된다 여겨질 땐 그냥 자버리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고 심장이 두근거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면 드러누워 눈만 감은 채 좋아하는 재즈 한 곡을 무한 반복으로 틀어두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을 이성적으로 정리하여 최대한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 역시 화를 내는 것에 포함된다. 경제적, 사법적, 사회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가장 합리적인 대처를 찾기 위해 동료들과 상의를 하거나, 법조인 지인의 자문을 구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
종종 명상도 한다. 나의 명상은 거창하지 않다. 진료실, 침실, 공원 벤치, 차 안, 카페 안 어디에서든 그저 생각날 때, 필요할 때 마다 가능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호흡이 드나듦을 느낄 뿐이다. 격정적인 감정과 그에 따르는 생각도, 그저 바라보며 충분히 이해될 때 까지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밀려오는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와는 별개로 그 상황에서 시도할만한 최선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화는 오르지만 이에 대해 특별히 내가 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의 기준에서 화를 낸다는 것은 순간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정서가 '실제로' 내면에서 밖으로 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갈등의 해결, 상황의 종결, 관계의 개선, 마음의 평온 과 같이 원하는 결과가 '실효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방식들, '화가 내어지는' 기능들을 훌륭히 수행하는 방법들이 내가 화를 내는 방식이다.
극심하게 끓어 올라 성깔이든 폭력이든 저질러버려야 할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에 비해 이러한 접근은 지극히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맞다. 내게는 불편한 상황에 대하여 내가 선택할 반응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실효성' 이 기준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의 그 반응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지이다.
나는 나의 화로부터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충동적인 짜증과 예민함으로 인하여 우리 아이의 섬세한 마음을 상처입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이성적이지 못한 발언으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견디기 힘든 화에 곧잘 휩싸일 수 밖에 없는 비루한 나를 또한 위로도 해주고 싶다.
내가 화를 내는 과정은 이러한 나의 바램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지 않아도 좋다. '익숙하지만 나를 다치게 하는 방법' 대신 '익숙하진 않지만 나를 위하는 방법' 들을 꾸준히 떠올리고 또 행할 뿐이다.
이는 참는 것과는 다르다. 참는다는 것은 어떻게든 상황만을 넘길 수 있기를, 혹은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를 내는 과정은 불편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기에, 참고 견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화의 터널을 지나서 되돌아보면, 오히려 그 때 마음에 떠올랐던 말과 행동들을 그대로 저질렀을때 얼마나 치명적인 상황이 돌아왔을 지를 생각하며 섬짓할 때가 자주 있다. 그 때 그 말을 했다면 정말 큰일 났었겠다, 그러한 행동이 일어났다면 큰일날 뻔 했다.. 하나 하나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커나, 너와 가족의 삶의 토대를 위협할 만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감정과 발언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보다 오해나 무리 없이 전달하거나 풀어가기에 더 좋은 방법을 택하는 것을 참는 것이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합리적으로 가장 내게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과정이므로, 터져나오는 격한 반응을 '억지로 참는 고통'은 그리 심하지 않다. 내게는 '일시적인 후련함' 보다 소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 나서 폭언이나 욕설을 수 있는 권리도 내게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택한다면 그로 인한 원치 않는 결과를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도 따른다. 나의 기준으로는 그보다 더 좋은 화를 내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인 나의 모습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급박하고 불쾌한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이 나를 홍수처럼 덮쳐 오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자유' 가 내게 있다는 것 역시 잊지 않으려 한다.
화가 났을 때 당신이 선택했던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 기준이 순간적인 화의 감정에 얼마나 어울리는 지 보다는, 당신이 가장 당신 스스로를 소중히 할 수 있는 방향이기를 바란다. 당신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다 줄 자동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이 아닌, 익숙치 않고 불편하지만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이를 통해 화의 순간들 속에서도, 당신이 당신의 최선인 모습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 역시 글을 쓰며, 화가 주어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 순간들에서 택할 수 있는 반응을 결정할 권리는 내게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켜 본다. 마음대로만 될 수 없는 삶에서 화를 느끼지 않을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자연스럽거나 편안하진 못하더라도, 어색하고 어렵더라도, 그 화를 '어떠한 나의 모습으로 어떻게 대할지의 권리' 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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