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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Dec 13. 2023

'꼭 필요한 불안만 만나는 시간'을 정하기

끝없이 걱정이 이어지는 당신을 위한 '한 시간의 법칙'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당연한 이야기를 대단한 진리인 양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있다. '취업은 해야지, 사람 만나는 것도 다 때가 있다, 젊어서부터 노후 대비가 중요하다...' 마치 네가 어려서, 미성숙해서 아직은 모르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 한, 혹은 다그치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들어보면 대개 뻔한 말들이기도 하다. 일을 하기 싫어 애써 취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랑을 나 혼자 마음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서 빈곤해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정도는 다 안다. 당연하지만 어려울 뿐이다. 


기성세대의 조언들이 '라떼는~, ~ 이 말이야' 라는 수식어로 폄하되고 희화화되는 이유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된다는 당위적인 메시지만이 전부여서가 아닐까 한다. '나는 성공했으니 너희도 나처럼 열심히만 하면 된다' 라는 과시 혹은 '내 인생은 이렇게 어렵고 비참하게 되었으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 라는 부담 이외에, 시대가 다르고 상황도 다른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유의미한 통찰은 결여된 것이다. 





이러한 '조언 무용론'을 보며, 삶이 어려운 이유는 어떻게 살아갈 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지는 알겠는데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라서'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방향이 최선인지는 떠올릴 수 있으나, '그렇게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라는 확신을 구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수험생에게 오늘 당장의 최선은 눈앞의 시험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다. 방법은 뻔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이 합격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차라리 떨어질 것이라 예정되어 있으면 포기하고 다른 길이라도 갈 텐데 그마저도 미리 알 수는 없다. 


비슷하게, 자식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겠으나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나쳐 억압과 통제, 강요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모든 자영업자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최선을 다해서 가게를 꾸려가지만 그것이 대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면접을 앞둔 취준생, 프로젝트를 따내려는 직장인, 승진 심사를 앞둔 공무원..  성별, 나이, 빈부지위고하를 막론하여 모든 인간군상들에게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한 불안이 만연해 있다.


삶은 어느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의문에 완벽한 확신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지금 당면한 일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불확실성이라는 벽에 부딪쳐 왜곡되고 증폭된다. 안도하기 위해 걱정을 거듭할 수록, 안도할 수 없는 부정적인 예측이 자꾸만 떠올라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 답답하고도 안타까운 굴레다. 불확실성을 모두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간은 어쩌면 죽을 때 까지 단 한 번도 '온전한 평안' 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불안은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정서적 반응이다. 오래도록 불안에 시달린 이들은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을 부정적으로 할까' 라 스스로의 성향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무조건 잘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면 굳이 걱정을 할 이유가 오히려 없다. 일이 어떻게 엉킬 수 있을 지를 미리 떠올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이 유달리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위기를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도록 진화된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사고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결과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일단은 이렇게 시도해보자.' 라는 현제 시제이다. 그러나 불안이 종료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하면 잘 될 것이다.' 라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시제에 대한 확신이라는 불가능하고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불안도 소멸된다.


바로 이 지점이 '실효적인 불안' 과 '비실효적인 불안'의 분계점이자 함정이다. 분석과 고민을 통해 지금 현재 나름의 최선인 대비책, 대응책은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미래의 결과가 무조건 긍정적일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어 두려움이 지속되는 지점이다. 


안타깝게도 불안은 이 정도 지점에서는 쉽게 물러나주지 않는다. 이미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의 대응책을 떠올렸음에도 '정말 그러면 잘 풀릴까? 괜찮을까?' 라며, 불안은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여,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명쾌한 결론을 요구한다. 그렇게 걱정은 밤이 새도록 이어진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삶을 다루는 과정인 정신과 진료를 하다보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제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지금 하고 있는 소송의 결과가 잘 될까요?' '사업이 위기에 처했는데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 상처를 딛고도 제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나는 함부로 '무조건 좋아질 겁니다, 잘 될 겁니다.' 라 무책임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가 마냥 잘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이다. 


대신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용기'를 제안한다. 그 용기는 알 수 없는 미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예측하느라 소진되는 귀한 시간과 마음의 여력을 지금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시도할 수 있는 것들, 지금의 최선인 것들을 떠올리고 실행하는 데 쓰이도록 해 준다.


예컨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회 초년생이 미래가 두려운 마음에 걱정을 거듭한다고 하여 앞으로 취직이 가능할 지, 어떤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될 지, 어떻게 승진을 하고 언제 은퇴를 하여 어떻게 노후를 대비할 지 까지를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에는 너무도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조건을 고려하여 어떤 회사에 지원해 볼 지를 모색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할 지를 구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 비록 그렇게만 하면 무조건 합격할 것이란 확신 주어질 수는 없으며 이로 인한 불안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어떠한 삶의 순간에서도, 그 불안 그대로, 그 순간만의 '지금 그대로의 최선' 이 있다. 완벽한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지금의 최선이기 때문에 시도하는 것이다. 


그 최선은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은 꾸준히 진료를 받는 것일 수도 있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파산의 행정 절차와 자격 요건을 점검하는 것이기도 하며,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연락을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의 역할 역시  '무조건 잘 될 것' 이란 불가능한 확신과 이를 통한 인위적인 안심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지금 우리의 최선이 무엇일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 그리고 이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힘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다. 약도, 면담도 이를 위한 도구이다. 




나는 나 자신의 불안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으로 대한다. 미래에 대한 완전한 확신에 도달함으로써 두려운 마음에서 해방되기를 애초에 바라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상주하는 삶에서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오늘의 두려움에 대한 내일의 실효적인 대응을 고민한다. 지금 당면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 '오늘, 지금 이 순간 부터 무엇을 할 지' 를 고민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 '합격이 보장되진 않겠지만 열심히 공부해보자.' '내일은 오래 고민하던 그 말을 해보자.' '사업이 언제 궤도에 오를 진 모르겠지만 계획대로 최선을 다해 보자.'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확신하여 불안이 소멸되어야 한다' 라는 부담만 아니라면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 지금의 최선을 떠올리는 것은 조금은 더 쉬운 일이다. 이러한 통찰을 이어가다 문득 떠올린 불안의 법칙이 있다. '한 시간의 법칙'이다.  




이는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 대응하는 실효적인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는 데에는 대개 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법칙이다. 달리 말해 그 정도 시간의 차분한 고민으로도 마땅히 떠오르는 답이 없다면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을 붙잡고 고민해도 더 뾰족한 답을 찾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 법칙에 따라 나는 걱정에 한 시간의 제한을 둔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밤 10시반 부터 11시반 까지만' 과 같이 구체적인 리미트를 건다. 그 시간동안 만큼은 나는 마음껏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단 그 두려움이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지' 로 흐르지 않고 '지금의 내게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는 방향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어떻게 나빠질 수 있을 지를 걱정하는 대신 좋아지게 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직접적이고 실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민의 종결을 결정하는 기준 역시 답답하고, 두렵고, 막막하고, 초조한 느낌이 얼마나 해소되었는 지로 정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완벽히 후련해지는 것' 대신, '지금의 내가 예측하고 대응할 지점을 충분히 검토하였는지' 를 기준으로 한다. 비록 확신이 들지 않아 답답하면 불편하더라도, 나아갈 수 있는 방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 보인다면 좋은 고민이었다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한 시간 정도의 불안을 통해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라면, 완벽히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그럭저럭의 최선을 떠올리는 수준까지는 생각이 도달해 있다. 걱정이 사라지고 편안해지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내일 하루는 그 생각대로 살아보자 라 다짐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제한을 건 시간이 지나면 '이 정도면 오늘 만큼의 불안은 할 만큼 했어.' 라 툭툭 털듯 선언한다. 그 뒤로는 하루동안 쌓인 만큼의 상념들을 글로 풀거나, 이불을 싸매고 창가에 누워 얼굴은 차게, 몸은 따뜻하게 한 후 밀린 책이며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해둔 유튜브 영상을 본다. 그 불안에 압도되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토록 원했던 온전히 나를 위하는 시간들이다. 




오늘도 오늘 만큼 열심히 살았고, 그럼에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 하지 못한 숙제처럼 노트북 가방속에 구겨서 들고 왔다. 저녁을 먹고, 잠을 거부하는 아이와 씨름하다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어 이른 새벽에 깼다. 밀린 일을 처리하며 문제되는 일들에 대한 걱정을 시작했다. 


매일 매월 매년, 삶의 맥락이 변화하며 걱정의 내용도 달라진다. 오늘은 아직은 알 수 없는 작업물들에 대한 결과, 수 천만원의 돈을 떼인 일에 대한 소송에 관련된 (꼭 이에 대한 경험도 한 편의 글로 남길 것이다.) 고민들을 이어가 본다. '이렇게 하면 무조건 잘 풀리겠다!' 는 결론에는 언제나처럼 도달하지 못했으나 '일단은 이 정도로 한 번 해볼까?' 라는 어중간한 타협점을 찾아냈다.


한 시간이 지났다. 불안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만하면, 소중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는 충분히 고민했다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여전히 마음 곁을 서성이는 불안에게 '오늘도 이만하면 충분히 같이 있었네, 내일도 우리는 만날 거니까 남은 시간은 홀로 조용히 보내도 될까?' 라 나직이 부탁해 본다. 


고민을 통해 당장 해결된 일은 없지만, 내일 하루에는 어떤 시도를 해 볼지에 대한 생각 정도는 정리되었다.  카페인이 적은 티백 하나로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린다. 요즘 푹 빠져 있는, 겨울에 어울리는 느린 재즈를 틀고 블로그 저장글을 연다. 이리 저리 단어를 조합하며, 불안에 잠식되어 잊고 있던 살아가는 재미도 소소히 느껴본다. 


그러며 다짐한다. 내일, 오늘 고민한 만큼의 최선의 하루를 또 살아보자고. 그리고 내일 밤의 한 시간 동안은 내일 만큼의 고민을 하자고.





당신에게도 '한 시간' 을 고민했다면 맥주 한 캔, 음악 한 곡, 그리운 이 와의 통화 한 통 정도의 여유 정도는 스스로에게 선물해 보기를 제안해 본다. 미래를 모두 미리 예측하여 안전하고 괜찮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불가능한 강박은 조금만 내려두고서.  


이를 통해,  불확실성이라는 삶의 본질 때문에 아무리 고민하여도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불안을 위로하고 다독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유가 다시금 내일 하루 만큼의 삶과 고민을 이어갈 힘으로 당신에게 깃들기를 기도한다.




P.S

불안이 편해질 수 있는 방법론 이상으로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불안이 당신의 삶에 오류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당신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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