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각김밥

나의 사적인 낱말들

by 아는 정신과 의사


초등학생 때 한국에 처음 삼각김밥이 출시되었다. 티비 광고를 했는데 컵라면에는 공깃밥이 아닌 삼각김밥이 최고라고 했었다. 근 30여 년 전인데도 가격은 지금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700원이었다. 천 원에 붕어빵을 대여섯 개 줄 때니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가였다. 처음 삼각김밥을 사준 사람은 친척 형님이었는데, 비슷한 나이의 친척 친구와 함께 떼를 써서 겨우 2천 원을 얻어냈다.


평소에 들리던 슈퍼와는 다른 편의점이라는 세련된 공간에서, 특이한 모양과 포장을 한 김밥을 사는 과정 자체가 신났다. 간장과 고추장 불고기 맛 정도, 지금에 비해서는 종류도 몇 가지 없었던. 그래도 고심 끝에 겨우 골라서는 뛸 듯이 집으로 돌아와 자랑스레 봉지에서 꺼내 들었다. 인생 첫 삼각김밥 두 개를 세 명의 친척 형 동생들이 모여 나 한 입, 너 한 입 나눠 먹었다.


안타깝게도 맛은 기대 이하였다. 밥의 질감이며 김의 바삭함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조악했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고추장 소고기 맛인데 고기는커녕 고추장도 거의 없었다. (여담으로 기억하실지, 전주비빔 맛이 처음 나왔을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저것 때문이다. 삼각김밥에 맨밥이 없다니.. 충격적인 맛이자 이득이었다.) 각자 세 입 겨우 먹으니 없어질 만큼 양도 적어 베어물 때 크기에 눈치가 보였다. 세 입 중 소스가 함께 배어 나오는 건 겨우 딱 한 입뿐이었다.


그러나 형님 앞에서 우리는 표정관리를 했다. 이거 먹을 바에 분식집 김밥을 먹지, 이거 하나 돈이면 과자가 두 봉진데, 용돈이 사라진 분노를 구박으로 쏟아내는 앞에서 맛없음을 순순히 수긍할 수는 없었다. 맛있음을 주장하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어쩐지 맨밥에 김만 배어 나오는 삼각김밥 마냥 맥이 빠져 웃어버렸다. 맛이 음식에 수반되는 기쁜 감각이라면 첫 삼각김밥은 충분히 맛있었다.



새 책 인터뷰 일정이 아이 겨울방학과 겹쳤다. 시골 쥐 아들 서울 구경도 시켜줄 요량으로 마주 보는 KTX 자리를 예약했다. 아이는 기차를 좋아한다.


기차가 들어오기 5분 전인데 갑자기 과자를 먹고 싶단다. 늦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역사 내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아이를 기다리는 중에 눈에 띈 삼각김밥. 그제야 조금의 허기가 비로소 느껴졌다. 두어 가지 맛을 급히 고르고 기다리는데 아이가 너무 여유 있게 과자를 고른다.


기차가 들어오기 전에는 미리 타야 하는 장소 앞에 있어야 해, 아이를 채근하게 된다. 예약한 자리는 2호차인데 가게는 11호차쯤의 위치이다. 서두르느라 계산을 하고 조금 뛰었는데, 패딩 모자에 달린 곰돌이 귀가 흔들리는 아이의 뒷모습이 그 와중에 귀엽다.


기차가 들어올 때보다는 늦었지만, 승객이 타고 내리는 과정 동안에는 충분히 도착했다. 늦었으나 전혀 늦지 않은 걸 보란 듯이 “늦지 않았지?” 하는 아이. 여유 넘치는 천진함과 귀여움에 공연했던 채근이 미안해진다.


한참 크려는 지 식탐이 생긴 아이는 새우깡을 앉은자리서 한 봉을 다 비울 기세다. 그 모습을 보며 삼각김밥을 베어 문다. 밥의 질감이며 김의 바삭한 수준이 썩 만족스럽다. 윤기가 흐르고 차진 쌀의 식감에, 한 입에도 바로 베어 물어 나오는 참치의 충분한 양과 맛.


갑자기 인생 처음으로 만났던 빈약하고 조악하며 그리운 삼각김밥이 떠올랐다.


삼각김밥이 맛있어진 만큼 나는 삶에 감사하고 있을까. 그렇게 감사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까. 늦지 않았는데도 서두르느라 삼각김밥을 집어들 허기조차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좋아하는 과자를 충분히 고르는 아이의 여유가 왜 내겐 없었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P.S.


그리고 다시 눈앞에서 새우깡을 총총 물고 있는, 앙 물어버리고 싶은 볼을 가진 너의 모습. 저 녀석 덕분에 되새긴, 어쩌면 다시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추억.


너는 어느새 자라서 너의 취향이 생기고, 그 고집을 바탕으로 내게 추억을 만들어줄 나이가 되었구나.